[내 인생의 노래]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드 더 퓨리어스 파이브

질풍노도 시절, 흑인음악 갈증 해소

It‘s like a jungle sometimes
It makes me wonder
how I keep from goin’ under
Rats in the front room,
roaches in the back
Junkie‘s in the alley with a baseball bat
I tried to get away, but I couldn’t get far
‘Cause a man with a tow-truck repossessed my car

믿거나 말거나 난 어린 시절 감수성 충만한 아이였다. ‘깡촌’에서 서울로 상경하면서 내성적으로 성격도 바뀌었다. 아마도 세련된 서울 아이들을 보며 주눅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 시절 음악은 내게 거침없이 뚫고 나오는 성장판과도 같았다. 까불이 본능의 흥을 돋우던 ‘리듬앤블루스(R&B)’나 힙합 장르를 자연스레 좋아했다.

TV만 틀면 나오던 주한미군방송(AFKN)의 <소울트레인>이란 음악 프로를 즐겨 봤다. 국내에서 보기 힘들던 흑인 가수들의 펑키하고 사이키델릭한 라이브 음악과 자유로운 의상을 입은 남녀 무희들의 혼성 몸짓은 그야말로 내게 충격이었다. 요새 힙합 깨나 하는 친구들 말로, 난 1세대 ‘올드스쿨’ 레전드급 음악을 들으며 컸던 셈이다. 정통 힙합 음악을 국내 라디오나 방송에서 듣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내가 주로 흑인음악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찾던 곳은 청계천 세운상가였다. 음란 비디오를 파는 야바위 아저씨들을 무사히 통과하면 당시 심의에 걸렸던 해외 ‘빽판(LP 복사본)’을 쌓아두고 파는 곳에 당도했다.

그 다음으로 찾았던 곳은 이태원 ‘곱사등이 아저씨’의 서너평 안팎의 레코드 가게였다. 지금은 물론 없다. 아저씨는 ‘원판’을 구해다 힙합 LP를 복제해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 팔았다. 당시 한 힙합 그룹의 음악이 내게 큰 여운을 남겼는데,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드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가 그들이다.

음악 전문가들은 이들 1세대 힙합 그룹을 음악사에 길이 남을 전설로 기록한다. 래퍼 멜리 멜 등 퓨리어스 파이브의 인종주의 미국 사회 비판을 담은 <더 메시지> 싱글은 오늘날 후대 래퍼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곡이기도 하다.

“때론 그건 정글 같아 /내가 그리로 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지 /앞방에 쥐들이, 뒷방에 바퀴벌레 돌아다니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약에 쩔은 녀석이 골목에 있지 /도망치려 했지만 난 멀리 가지는 못했어 /견인차를 모는 녀석이 내 차를 가져갔거든.”

하지만 어린 나이에 내가 무슨 가사 내용까지 알았겠는가. 그저 랩이 즐거웠고, 그랜드마스터 플래시라는 디제이(DJ)의 LP ‘스크래칭’ 사운드에 흥이 겨웠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가 턴테이블의 바늘을 앞뒤로 움직여 소리를 내고 여러 개의 LP를 교체하며 벌이는 속칭 ‘매시업’ 손기술은 어린 내겐 흐뭇한 영웅의 모습이었다. 내 힙합의 개인사는 후에 자연스레 브레이크댄스 춤사위로까지 이어졌다. 요즘 같으면 ‘고등래퍼’에라도 지원했을 텐데 말이다.

어릴 적 취향 덕에 정보 공유운동이나 리믹스 문화에 뻐져 책을 쓰고 가르치고 있다. 그 시절 흑인음악의 정서가 사회 비판의 감수성으로 재생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의 노래

나이가 먹으면서 질풍노도의 그 시절이 종종 떠오른다. 요즘 내가 옛노래를 소환하는 방법은 유튜브 ‘자동재생’ 알고리즘에 의지해 그랜드마스터 플래시류의 올드스쿨 힙합을 듣고 보는 일이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