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지옥 같은 이등병 시절의 단비

유난히 땀이 많은 나는 7월이 가장 힘들다. 드라이기로 곱게 말린 머리는 버스정류장도 못가서 젖고, 깨끗이 입은 옷은 땀 모양으로 세계지도를 그린다. 땀은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지, 손수건은 용량이 부족해 수건을 들고 다닌다. 하지만 내 인생의 최악의 여름이라면 ‘1994년 7월’을 빼놓을 수 없다.

이때는 이등병이었다. 눈만 뜨면, 수많은 선임병에게 다양한 사투리로 욕을 먹었다. 해산물을 이용한 욕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홍어, 말미잘, 꼴뚜기까지 욕에 동원되었다. 제일 괴로웠던 것은 주특기 교육 일환으로 실시된 연병장 구보였다. 내 고향 대구만큼은 아니었지만, 근무처였던 인천도 만만치 않았다. 통풍이 안 되는 전투복 덕분에 땀은 전투화를 적실 정도로 흘러내렸다. 설상가상 엉덩이, 배꼽, 사타구니에 건선피부염이 해일처럼 덮쳤다.

너무 가렵고 아팠다. 연고 같은 약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루는 연병장을 뛰다가 가려움과 설움에 구호를 외치면서 울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같은 물이지만 눈물은 땀보다 훨씬 뜨겁다는 것을. 그런데 그날 갑자기 훈련이 중단되었고 내무반으로 집합명령이 떨어졌다.

포대장이 갑자기 TV를 켰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바로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괴성을 지르듯 울고 있었다. 포대장은 전쟁이 발발할 수 있으니, 각 포반 담당자들마다 교육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전쟁에 참전해 죽는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왜 좋아했던 첫사랑에게 고백도 못하고 왔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부대원 전체가 공황상태였다.

그날 저녁, 점호를 마치고 살벌하고 무거운 침묵이 내무반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말년 선임병이 <칵테일 사랑>이라는 노래를 무한 반복듣기로 틀었다. 당시 내무반에 카스테레오를 응용해 만든 음악시설이 있었다. 첫 소절 가사부터 내 마음을 때렸다. ‘마음 울적한 날에 거리를 걸어보고’로 시작하는 노랫말과 청량한 여성보컬의 음색을 잊을 수 없다. 황홀했다. 바짝 말라 갈라져 있던 내 젊음에 단비를 뿌려주는 듯했다.

그날 반복해서 음악을 들으며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이 가보고 싶어졌고,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칵테일을 마시고 싶었다. 멀쩡한 몸으로 대구에 있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다행히 그해 여름에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귀뚜라미가 울던 9월에 정기휴가를 갈 수 있었다. 난생 처음 성지를 방문하듯 마로니에 공원을 가보았다. 그곳은 자유와 젊음이 가득한 곳이었다.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공원에 있던 청년들은 왜 그리 멋지고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고향에서는 밤새 칵테일과 맥주를 섞어가며 마셨다. 가는 곳마다 사장님들에게 <칵테일 사랑>을 요청했다. 부작용도 있었다. 칵테일과 다른 술을 섞으면 숙취라는 혹독한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래 한 곡 때문에 몸에도 맞지 않는 칵테일을 많이도 마셨다. 매년 7월이 되면, 그 시절 힘들었던 순간이 생각나고 이 노래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했지만, 원곡의 소울을 흉내낼 수 없다.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디게 해주었던 이 노래가 너무 고맙다.

내 인생의 노래

마음 울쩍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한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지 쓰고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그 음악을 내 귓가에 속삭여주며
아침 햇살 눈부시게 나를 깨워 줄
그런 연인이 내게 있으면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