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수표 같은 희망, 그래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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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기자

이효상 기자

“새만금 사업을 시작할 때가 50대 때였는데, 우리 시방 나이가 팔십이 돼가지고. 새만금 사업하는 하청업체에 사람이 없다고 일하러 갔는데, 예순아홉 살 먹었을 때여. ‘이 나이 먹고 일하고 싶냐’고 얼마나 면박을 주는가, 고담부터 지원도 안 했어.”

새만금 사업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1991년 사업을 시작해 3년 만에 완성하겠다고 했지만, 올해로 33년째 사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절반 좀 넘게 했다니 갈 길도 멉니다. 낙후된 전북지역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김제시에서 만난 어르신의 말처럼 지역민들에게는 대단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새만금 지역인 군산·김제시, 부안군의 인구는 모두 줄었고, 지난 10년간 국내총생산에서 전북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습니다.

그런 새만금 지역을 두고 군산·김제 두 도시가 혈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공개 비난이 난무하고, 관할권의 향방이 걸린 고군산군도를 두고는 삼국시대를 소환하는 역사전쟁이 벌어집니다. 새만금 사업이 속 빈 강정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지역 주민들도 이 싸움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부도수표일지라도 희망을 걸어 볼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잃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황금어장을 잃고, 갯벌을 잃었습니다. 이제는 발언권도 잃고 있습니다.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30여 년간 투입됐다는 새만금 사업 앞에 갈수록 힘을 잃고 있습니다. 지난해 잼버리 사태는 결정타였습니다. 중앙 정부는 책임을 묻기라도 하듯 새만금 사업 예산을 깎았습니다.

새만금 사업을 보면 정책 판단의 가벼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업은 전북지역의 소외감을 한 번에 만회해보겠다는 정치적 의도로, 구체적인 구상 없이 서둘러 추진됐습니다. 역대 정부에서처럼 이번 정부 들어서도 새만금 기본계획이 전면 수정되는 배경입니다. 두 도시의 다툼도 한없이 가볍게 다뤄질 게 우려됩니다. 메가시티가 일단 갈등은 덮어놓고 갈 수 있겠지만, 이 지역을 위한 답이 될 수 있을까요. 쇠락하는 두 도시를 구할 숙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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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