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번개탄은 생각도 하지 마

입대 첫날 훈련소에서 전투복을 지급했다. 조교들은 전투복을 나눠주자마자 야전상의(야상)에서 허리끈을 빼 압수했다. 자살 방지 목적이었다. 순간 훈련병들은 ‘자살’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혔다. 미처 자살을 생각하기도 전에 자살을 금지당한 것이다. 간부를 제외한 모든 병사가 야상 끈이 없어 펑퍼짐한 옷을 입고 뛰어다녔다. 허리춤에 한겨울 칼바람이 솔솔 들어왔지만, 국방부의 관심사는 병사들의 방한보다는 자살 방지에 있었다. 훈련소 퇴소 날까지 자살이라는 단어는 주된 관심사가 됐다. 옆 부대 훈련병이 수류탄 교정에서 자살했다더라, 전투화 끈으로 목을 맸다더라 하는 확인되지 않는 괴담이 흉흉하게 들려왔다. 야상 끈 압수가 자살로부터 얼마나 우리를 보호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국방부의 ‘자살은 생각도 하지 마’ 방침이 모두에게 자살을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2월 13일 복지부가 ‘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며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 생산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데 번개탄을 많이 사용하니 번개탄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만 1만335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충동자 주변에서 손쉬운 자살 수단을 제거하겠다는 발상은 일견 타당하다. 한편으로 이 조치는 구조적 문제에 눈감고 수단을 규제하는 윤석열 정부의 임기응변적 습관을 떠올리게 한다. 이 정부는 파업이 벌어지면 파업을 금지하고 자살률이 높아지면 번개탄을 금지한다.

올해 윤석열 정부는 돌봄 분야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초등돌봄교실 예산은 전년 대비 100% 삭감됐다. 공공노인요양시설 예산은 20%,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19.3%, 어린이집 기능 보강 사업은 10%, 장애아동 시설개선사업 예산은 10% 줄었다. 돌봄 예산을 삭감하고 번개탄을 금지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폭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야상 끈을 압수하던 그 시절 군대의 모습을 닮았다.

야상 끈 압수 방침은 병사들에게 두 가지 진실을 알려주었다. 대한민국 군대라는 곳이 쉽게 목숨을 포기할 만큼 참혹한 곳이라는 것과 군인들은 주로 끈으로 목을 매 자살한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번개탄 금지 방침은 한국이 하루에 36명씩 목숨을 끊는 세계 제일의 자살공화국이라는 사실과 많은 사람이 번개탄을 이용해 목숨을 끊는다는 정보를 상기시킨다. 에밀 뒤르켐은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에서 “만약 삶이 애써 살 가치가 없다면, 모든 일이 자살하기 위한 구실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애써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야상 끈도 번개탄도 죽음의 수단이 된다. 지난 1월 성남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두 모녀가 목숨을 끊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월세를 걱정했던 모녀는 ‘폐를 끼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가난한 이들의 연쇄적인 죽음 앞에서 번개탄에 책임을 돌리는 정부의 대책이 허망하기까지 하다.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오늘을 생각한다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