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정당 싱크탱크]17년 내공 무시할 수 없는 여의도연구소

데이터 전문성으로 정책 마련… 연구원들 “입법 실현 상당한 보람”

이번 대선 전, 기자를 만난 새누리당 전 핵심 당직자는 이런 ‘충고’를 했다. “여러 자료가 들어오겠지만 여연(여의도연구소)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주목해서 보라. 상당히 신뢰할 만한 데이터다. 정당 연구소이니 팔이 안쪽으로 굽지 않을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불리한 데이터도 객관적으로 내놓고 있는 자료다.” 기자가 만난 이 전직 당직자는 선거 경험이 풍부한 인사다. 특히 지난 2007년 대선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 전 당직자의 설명에 따르면 여의도연구소가 구축한 데이터는 여느 여론조사기관을 추월한다. “도시로 치면 구 단위까지 자료가 축적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특정 구 단위 자치단체까지 우리 후보와 상대 후보의 지지율 조사가 가능하다. 오더만 나오면 다음날 아침까지 보고서를 생산해내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대외비다. 지난 2007년 대선의 경우, 선거 때 핵심 인사 5~6명에게만 올라가는 정밀한 보고서가 1일 단위로 만들어졌다.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곳이 여의도연구소다.”

새누리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는 이번 대선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에 자리잡은 여의도연구소. | 이상운 기자

이번 대선에서 여의도연구소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선거 막판인 12월 16일, 김광림 여의도연구소 소장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 “일부에서는 여의도연구소 조사 결과 문재인 후보가 판세를 뒤집었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리 기관의 권위를 빌린 흑색선전이다. 박근혜 후보는 일관되게 리드해 왔으며, 선거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이후 격차는 더 벌어졌다.” 여의도연구소 조사 결과로는 박 당선인이 대선 선거운동 기간 내내 문 후보에게 밀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신동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지난해 9 월부터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누구로 단일화하든 박근혜가 이긴다”고 공언해 왔다. 선거 막판까지 민주당이 투표율 제고에 사활을 걸었던 것과 관련, 10월 8일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이 마련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과의 대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총선 때 나타난 현상이 있다. 출구조사에서는 (새누리당이) 수도권에서 대패했다는 건데, 틀렸다. 젊은이들이 투표 마감시간에 몰려갔다고 하듯, 우리 지지자 측에서도 ‘(기다렸다가) 막판에 가자’,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 저녁에 야당 지지층이 몰린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게 리액션이 생긴 상태라는 것이다. 투표율 폭발은 이쪽(보수)에서도 일어날 가능성도 저쪽(진보)만큼 만만치 않다.” 사후적인 평가가 되겠지만 신 부소장의 예측은 맞았다. 그는 박근혜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새누리당으로서 더 상대하기 힘든 상대로 안철수 후보를 꼽았다. 이유는? “안철수를 모르기 때문이다. 안철수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

데이터에 근거한 선거전략. 이번 대선 후 자주 나오는 평가다. 민주당은 하지 못했고, 새누리당은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다.

“데이터 근거 선거전략, 새누리당은 했다”
“선거가 끝나고 결과를 복기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각 권역별로 FGI(포커스그룹인터뷰:특정한 연령, 계층, 세대를 대상으로 특정한 주제를 갖고 면대면 접촉을 통해 의견을 청취하는 여론조사 방식의 하나)를 세 차례 이상했다. 심지어 후보 동선을 정하는 데도 FGI를 통해 나온 결과를 근거로 했다. 특히 충남과 전북의 경우, FGI를 하면서 중부권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전략을 내 왔다. 새누리당 쪽은 FGI를 통해서 ‘충청지역의 경우 전략적으로 상당히 격차를 벌릴 수 있구나’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한 정치컨설턴트의 말이다.

이어 그는 말했다. “민주당 쪽 전략가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위와 감에 의존한 추상적인 이야기만 듣고 있을 때, 새누리당은 데이터 전문가들을 대거 동원해 전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번 대선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은 현대적 정당으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데 비해, 민주당은 여전히 과거 경험에 의존한 낡은 정당정치를 하고 있었다.”

여의도연구소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95년 2월. ‘현안과 중장기 청사진 구축’이 출범 당시 목표였다. 초기 여의도연구소의 기능은 당 총재나 대통령 후보를 보좌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여의도연구소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그게 바로 여의도연구소의 자산이다. 어찌 됐든 여의도연구소는 지난 17년간 쌓인 노하우와 데이터가 있다. 그게 바로 여연의 힘이다.” 앞의 전 새누리당 당직자의 말이다.

2004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서 여의도연구소도 중앙당 산하의 별도 법인으로 존재하는 정책연구소가 되었다. 법 개정으로 각 정당은 국고보조금 총액의 30%를 의무적으로 정책연구소에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여의도연구소로서는 본격적인 ‘싱크탱크’로 도약하게 된 계기였다. 여의도연구소의 1년 예산은 약 70억원.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집행되는 구조는 야당인 민주통합당과 비슷하다. 여론조사실과 정책조사분석실, 정책개발실 이외에 정책지원실 산하에 6개 정조실이 있다. 당 정책위원회의 일을 하는 부서다. 실제 여의도 기계산업진흥회 빌딩에 자리잡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상근인력은 15~16명 정도. 현재 이 중 3명이 인수위에 파견돼 있다. 지난 대선에서 신동철 부소장은 ‘선대위 여론조사 단장’ 등의 직함으로 언론에 소개되었지만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직책을 제외하고 맡은 공식 직함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영진 상근부소장도 대선기획단 기획위원을 맡아 대선에 참여했다. 조인근 여의도연구소 기획조정실장은 대선 때 메시지팀장을 맡았다 인수위에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으로 들어갔다. 신 부소장의 경우 ‘대선에서 숨은 전략가’로서 활약이 높게 평가돼 청와대에 입성할 측근으로 거론되지만, 정작 현재까지 인수위에 합류하고 있지는 않다. 여의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지난 대선에서 캠프에 파견된 인사들도 상당수였고, 공약 작성과정에도 많은 관여를 했지만 연구소 내부에서 인수위나 청와대 참여에 관심을 가진 인사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소장 역임 김현철씨, 문재인 지지 배경은
이번 대선에서 또 하나 특이한 부분은 과거 여의도연구소 소장, 부소장을 역임했던 인사들의 월경(越境), 다시 말해 ‘야권인사 지지선언’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맡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지난 2000년(4대)과 2003년(6대) 역임했다. MB정권의 ‘실세’였던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의장은 안철수를 거쳐 최종적으로 문재인 지지선언을 했다. 김덕룡 의장은 여의도연구소의 초대 이사장이었다.

지난해 중반까지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던 YS의 차남 김현철씨도 문재인 후보 지지 대열에 대선 막판 합류했다. 김씨는 그 전부터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비판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특히 김씨의 문재인 지지 선언 배경이 무엇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MB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김씨의 문 후보 지지선언 직후 기자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히 김현철의 경우 과거 YS정권 시절에는 독자적인 비선을 관리했던 사람이고, 또 여론조사기관 소장(중앙여론조사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여의도연구소의 부소장을 하면서도 사회 곳곳에 정보채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가 문재인을 지지했다는 것은 이미 판세가 어디로 기울었다는 것을 읽었다는 뜻 아니겠느냐.”

결과적으로 그 ‘판세 예측’은 틀렸다. 여의도연구소 쪽의 설명은 달랐다. 기자를 만난 연구소 관계자는 “사실 그 사람들은 이미 떠난 지 오래된 사람들”이라며 “김현철 부소장의 경우 일종의 배려 차원에서 임명된 것이었지, 어떤 독자적인 정보망을 갖출 힘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물론 우리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증권가 찌라시성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런 자료를 믿고 함부로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번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 나온 네거티브들은 사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낭설에 불과한 것이었다.”

김광림 여의도연구소 소장은 2011년 12월 30일 취임했다. 2008년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한 뒤, 한나라당에 입당한 재선의원이다. 또 다른 여의도 연구소 관계자는 “영남대 출신으로 최외출 라인이 아니냐는 하마평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우리가 알기로는 친박과 무관한 인물”이라며 “친박이 당권을 사실상 장악한 지난해 총선 전 임명된 인사인데, 계속 소장을 맡고 있는 것을 보면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이 일단 믿으면 계속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의 중심이 ‘친박’으로 넘어오면서 밀려난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위 이재오계로 분류되던 정태윤 상근 부소장은 2012년 4월 비례대표 후보 신청 후 7월 물러났다. 연구소 내부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개인적으로 보면 훌륭한 분이다. 오히려 새누리당이나 보수 쪽보다 진보 쪽에 널리 알려진 운동권 출신 인사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 노동운동을 했던 것으로 유명한 분이다. 의욕적으로 일하던 분인데, 현재 딱히 자리를 못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직안정성, 여의도연구소의 강점
여의도연구소의 홈페이지 연혁을 보면 주목할 만한 것은 대선을 앞두고 오히려 여의도연구소의 대외적인 활동이 줄어들었다는 것. 앞의 여의도연구소 관계자는 “아무래도 두 번의 선거가 있었고, 여의도연구소 사람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대외적으로 눈에 띄는 일상적인 활동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여론조사와 같은 업무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쪽 인사들이 ‘여의도연구소’의 기능 중 가장 활성화한 것으로 꼽는 것은 역시 여론조사다.

2012년 8월 여의도연구소는 자체 여론조사에 휴대폰과 070 번호 표본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실제 자체적으로 여론조사를 돌릴 뿐 아니라 분석작업 역시 독자적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여의도연구소 관계자는 “총선이나 대선시기에는 우리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외부 기관에 조사를 의뢰하기도 한다”며 “의뢰한 결과를 자체 여론조사와 종합해 비교분석하는 것은 당연한 우리의 임무”라고 덧붙였다.

특히 민주당과 비교했을 때 여의도연구소의 ‘강점’으로 꼽히는 것은 ‘조직 안정성’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여의도연구소의 상근직원이라고 했을 때 당 의원보좌관보다 존중받는 분위기가 민주당이 갖고 있지 못한 결정적 강점”이라고 말했다. 앞의 관계자는 “당내 서열을 따지고 보면 연구소 부소장이 당의 본부장급 대우를 받는다”고 말했다. 여의도연구소의 연구위원 연봉은 개인의 경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6000만원에서 7000만원 사이. 대학 정교수에는 못미치지만 전임교수 수준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KDI와 같은 국책 연구기관에서 진행하는 연구와 다른 점은 정책이 실제 구현되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필요하면 의원실과 공동작업을 통해 당 정책으로 생산해낸다는 것인데, 입법이 이뤄지고 실현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