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정당 싱크탱크]당 지도부에 휘둘리는 민주정책연구원

독립성 약하고 중앙당과 예속관계 강해… ‘원내·연구원’ 이원화 정책기능 큰 문제

지난해 6월 민주정책연구원의 박순성 원장은 2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6월 민주당 지도부가 선출된 이후, 일종의 ‘당직 분배’ 과정에서 박 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내 권력지도에서 연구원장은 사무총장, 정책위원장처럼 중요한 직책”이라며 “임기가 보장된 연구원장 자리까지 바꾸면 안 되는 거였는데, 결국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 셈”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정책연구원장의 자리를 ‘검찰총장’직에 비유한다.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되어 있지만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자진사퇴하듯, 정책연구원장도 정관상 임기는 보장되어 있지만 당 지도부에 따라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원장직의 임기가 철저하게 보장되지 않고 당대표가 곧 연구원 이사장직을 겸임하게 되는 상황에서 민주정책연구원은 당 지도부에 종속되기 쉽다. 정당 싱크탱크를 연구해온 선거연수원의 신두철 교수는 현 정당 구조상 정당 싱크탱크가 당의 예속기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당대표가 이사장을 맡고 원장직이 의원의 보직이 되면서, 자칫 정책연구원이 연구 기반보다는 당의 예속기구로만 존재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정책연구원. | 이상훈 기자

연구원의 독립성보다는 중앙당과의 상하관계가 강하다보니 당 지도부의 성향이나 정세판단에 따라 민주정책연구원의 보고서 내용도 판이하게 달라지게 된다. 2009년 5월 민주정책연구원은 ‘뉴민주당 플랜’의 초안을 마련했다. 당시 발표된 초안의 골자는 ‘중도개혁노선’이었는데, 당내에서는 사실상 ‘우경화 계획’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은 ‘뉴민주당 플랜’에 대해 “이념과 노선이 한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좌우를 뛰어넘는 민생정치 개념”이라고 설명하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육분야에서 수월성 도입이나 경제분야의 시장 개방 등 우파 가치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개혁진영과 진보진영에서는 “한나라당과 차별화가 안 된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당 지도부 성향 따라 흔들리는 연구방향
하지만 2년이 지난 2011년 민주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는 ‘뉴민주당 플랜’과는 거리가 먼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이철희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이 작성한 ‘2012년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전략적 검토’ 보고서에는 민주당이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기보다는 우선 진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보고서는 무상급식이 주요 이슈였던 2010년 지방선거를 예로 들며 “요즘 유권자들은 과거보다 진보적 정책을 통한 당면 문제의 해결을 원하고 있다.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여론조사에서 분배를 선호하는 여론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미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의 위력이 발휘됐던 것도 좋은 예”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관계자는 “민주정책연구원은 당대표가 이사장이다. 만약 우리가 확고한 당의 강령이 있는 정당이라면 발전시켜 나가는 수준에서 과거와 연속성을 가질 것”이라며 “그러나 확고한 당 강령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장인 당대표와 연구원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정책연구 방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또다른 관계자는 “이는 민주정책연구원의 문제라기보다는 민주당 자체 구조와 시스템 문제와 연동되어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논란이 된 ‘4·11 총선 평가와 과제’ 보고서도 민주정책연구원이 당 지도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방증한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후, 민주정책연구원은 당시 문성근 대표 대행의 지시로 4·11 총선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단일화와 야권연대에 매몰돼 이명박 정권 심판론 이상의 비전 제시 실패, 분열하는 정당 이미지, 좌파·종북·포퓰리즘 등을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열거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당시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공개되지 않고 검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정책연구원이 당 지도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형식적 독립성 외에도 실질적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법적으로 정당은 국고보조금의 30%를 정책연구원에 지급하게 되어 있다. 법적으로 재원 마련이 보장돼 있어 형식적인 독립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재원을 당을 통해서 받다보니 당에서 지출해야 할 비용을 연구원 비용으로 부담하기도 한다. 정당법상 당직자를 100명 이하로 규정하다 보니 당직자가 연구원으로 등록되는 경우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무엇보다 민주당이 정당 싱크탱크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함을 강조했다. 신율 교수는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소와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민주정책연구원은 잘 알려지지 않고 공신력도 낮은 편”이라며 “민주정책연구원은 이름도 많이 바뀌었고, 여의도연구소보다 규모도 작다. 민주당이 정당 소속 연구원을 부속기관 정도로만 생각하고 싱크탱크의 필요성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월 17일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박기춘 원내대표와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같은 날 열린 비대위 비공개 회의에서는 지난해 총선 패배 직후 민주정책연구원이 작성한 평가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은 것에 대해 논란이 제기됐다. | 정지윤 기자

당대표가 이사장을 겸임하고 인사권을 갖다보니 연구원 본연의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소는 당대표가 아닌 외부인이 이사장을 맡고 공간도 당사와 떨어져 있어 그나마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연구원이 끊임없이 정책을 개발하면서 당을 비판할 수도 있는 조직이어야 하는데, 민주당은 아직도 민주정책연구원을 당의 하부조직으로만 인식하고 함부로 보는 경향이 심하다”며 “일단은 당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은 모두 9명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인력이 부족해 지난해 9명 증원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당내 상황이 바뀌면서 결국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에서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는 상태라 연구위원들이 다른 곳에 자리가 나면 옮겨가는 경우도 있다.

“보고서 올려도 활용되는 경우 별로 없어”
구조와 제도의 문제 외에도 한국 정치문화의 특수성 또한 정당 싱크탱크를 왜소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민주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 대선에서 이곳이 소외됐음을 지적했다. 대선 정책라인이 당 내부 라인이 아닌 외부의 자문 교수단을 중심으로 꾸려졌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당 내부의 정책라인보다는 캠프에서 활동한 외부 자문교수단이 대선 기간 중 정책을 주도하게 됐다.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내는 정책들은 거의 반영되지 않아서 연구위원들 중 소외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연구원 쪽에서도 보고서를 올렸지만 채택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정책연구원이 당의 공식 정책역량이지만, 대선 기간 중 이것이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새누리당의 경우도 여의도연구소보다는 박근혜 후보의 외곽조직인 국가미래연구원에서 정책을 주도했다. 대통령 선거가 정당보다는 후보 중심으로 치러지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장기적인 방향이나 정책을 준비하는 정책연구원이 그날 그날의 이슈에 따라 단기적으로 움직이는 한국 정치문화에서는 부각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정당의 정책기능은 정책위원회와 정책연구원으로 이원화해 있다. 원내에 있는 정책위원회는 정치현안이나 의원들의 입법 등의 단기적 현안을 다루고 정책연구원에서는 그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를 한다. 예를 들어 한·일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정책위원회에서는 한·일간 교과서 문제나 외교부 장관의 대응수준을 따진다. 반면 정책연구원은 왜 한·일간 교과서 문제나 독도 영유권 분쟁이 발생하는지 과거부터 추이를 분석하는 식의 중장기적인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신두철 교수는 “정책위원회와 정책연구원이 역할 분담과 협업이 잘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게 잘 작동하지 않는다”며 “대부분의 고급자료는 정책위가 선점하고 있다. 정책위의 영향력이 세지면서 정책위에서는 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평가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정치가 현안 중심, 원내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정책위원회의 힘이 커지고 상대적으로 정책연구원의 위상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정책연구원의 관계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정당의 상황에서 정책연구원의 위상은 낮을 수밖에 없다. 정당이 제도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토론해야 하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정당 싱크탱크의 위상도 높아질 수 있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