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눈]국정원의 감시 본능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발신자 표시는 돼 있지만 링크가 포함돼 있는 내용이라 신경이 곤두선다. 이게 국정원이 심는다는 피싱 파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간다. 국정원이 구입했다는 해킹 프로그램의 가공할 위력을 뉴스를 통해 접한 터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과 동작이 휴대폰을 통해 전송돼 감시자가 PC 모니터를 통해 들여다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은 전율 그 자체이다.

이 불안은 18세기 말 벤담이 제안했던 판옵티콘(panopticon)의 독방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바로 나였다는 탄식으로 이어진다. 판옵티콘 중심에 설치된 탑이 해킹 프로그램이 깔린 PC로 바뀌고, 수감자의 독방이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을 뿐, 감시자를 볼 수 없는 수감자가 끊임없이 감시당하게 된 상황은 마찬가지다. 물론 국정원은 국민들 상대로 해킹을 한 적이 없다고 결백을 주장한다. 그러나 국정원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누구의 휴대폰이라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국정원의 마음이 언제 어떠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정보기관의 사람들은 속성상 최대한 많은 것들을 들여다보고 싶은 본능과도 같은 욕구를 갖고 있다. 아예 그 같은 행위가 불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통한 통제를 하는 것이 그래도 나은 방법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통신비밀보호법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은 문제의 RCS(원격조정시스템) 구매 사실을 국회에 보고조차 하지 않아 이를 사문화시켜 버렸다. 그러고서는 자신들을 믿어달라는 말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국정원 댓글사건 때 ‘양치기 소년’이었음을 고백했던 것이 국정원 아니었던가.

판옵티콘이 위력적인 것은 탑 위에서 수감자 전원을 감시하는 동시에 개별자를 한 사람씩 감시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더구나 감시자는 역광선의 효과로 수감자를 선명하게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음은 알면서도 정작 감시자의 존재에 관한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다. 여기서 독방에 갇힌 수감자들이 탑 위의 감시자에게 예속되는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철저한 비대칭적 관계이다. 그래서 감시받는 수감자들은 권력이 부여하는 강제적인 행동규칙을 스스로 내면화한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푸코(Michel Foucault)는 <감시와 처벌>에서 “판옵티콘의 수감자는 스스로를 감시의 객체로 인식함으로써 복종하는 자가 되지만, 동시에 감시자의 시선을 자기 내부에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를 감시하는 주체가 돼버리고 만다”고 말한다.

수감자들은 한 사람씩 독방에 갇혀 개별화된 처지이기에, 단지 권력의 규범에 맞춰 스스로를 감시하고 길들이는 ‘예속된 주체’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같은 사찰 의혹의 피해는 그 대상이 된 일부 사람들에게만 국한될 수 없다. 휴대폰으로 전송된 문자 메시지를 보며 권력기관을 떠올리는 사람들, 죄지은 사람처럼 자신의 말과 행동을 권력의 규범에 알아서 맞추게 되는 사람들, 어차피 내 휴대폰 들여다보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일 것이라고 체념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가 탑 위의 감시자 때문에 인간적 존엄을 상실하게 된 이 나라의 국민들이다.

유창선의 눈

어떻게 할 것인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권력의 시선으로 알아서 자신을 감시하는 존재가 돼버린다면 그 예속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결국 수감자들이 독방의 문을 뜯어내고 밖으로 나와, 우리의 휴대폰에까지 침투해버린 권력의 감시를 거부하는 것 이외의 다른 길은 없다. 우리는 이 판옵티콘 안에 수감돼 있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철저하게 진상을 밝혀내고 판옵티콘의 철거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