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마당 씨의 식탁>-리얼리티가 돋보이는 부부의 전원생활

<마당 씨의 식탁>은 개인의 삶에 끊임없이 작용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그 가족이 풍성한 텃밭일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폐농약이 쌓여있던 자리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제목과 표지(무언가를 요리하다 맛을 보는 부부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를 보면 요즘 잘 나가는 ‘요리하는 남자’가 주인공인 ‘요리만화’가 아닐까 싶었다. <불편하고 행복하게>를 그린 홍연식 작가의 신작이니 지상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한 대결은 없을 터이고, 요리하는 남자의 일상을 다룬 만화라고 생각했다. 만화는 2009년 겨울, 6개월 된 아이와 마당씨 부부가 휴전선과 가까운 파주에 터를 잡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승용차 지붕에 집을 가득 싣고, 창고와 공장과 축사가 떠다니는 하늘길을 날아 안착하는 5쪽에 걸친 오프닝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환상적이다. 발품을 많이 판 마당씨 가족이 빌린 집은 아담한 단독에 텃밭이 인상적인 “봄이 오면 바뀌게 될 마당의 풍경”을 기대하게 하는 집이다. 그런데 마당씨네 가족보다 먼저 터를 잡은 쥐가 나타나고, 마당씨는 눈길을 걸어 읍내에 나가 쥐를 잡는 끈끈이와 어묵을 사가지고 돌아온다. 눈사람이 되어 돌아온 마당씨는 아내와 함께 밥을 지어 먹는다. 마당씨는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 먹는 따뜻한 음식이 있어 겨울밤이 행복하다”고.

홍연식 작가의 만화 <마당 씨의 식탁>. / 우리나비 제공

파주로 이사한 삼시세끼풍 프롤로그
프롤로그만 보면 마치 ‘삼시세끼’처럼 조용한 전원에서 근처의 푸성귀로 요리를 해 먹는 남자의 이야기로 보인다. 티비가 보여주는 삼시세끼는 모든 갈등과 고통을 지운 일상이다. 하지만 마당씨의 ‘식탁’은 요리한 음식이 차려지는 식탁이 아니라 가족의 삶이 함께 하는 곳이다.

파주로 이사한 삼시세끼풍 프롤로그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1화의 소제목은 ‘외래진료’다. 마당씨의 부모님은 서울에 있는 반지하에 살고 있다. 마당씨는 아버지를 불편해 한다. 건설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술로 고된 노동을 달랬고, 술에 취해 돌아오면 늘 큰소리가 났다. 노동과 술로 육체는 망가졌고, 지금은 술에 의지해 산다. 마당씨는 어머니를 연민한다. 젊고 예뻤던 어머니는 가난과 폭력이 뒤섞인 삶을 힘겹게 꾸리다가 심장병을 얻고 지금은 약에 의지해 산다.

마당씨의 부모님은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가난은 가족의 따뜻함도, 건강한 내일도, 함께 둘러앉을 식탁도 빼앗아 갔다. 마당씨와 동생 마루씨 모두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철이 들자마자 집을 나와 독립했다. 마당씨의 아내가 건강이 나빠진 두 분을 지하방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우리가 모시면 되잖아요?”라고 말하지만, 마당씨는 단호하게 “그것은 내가 그토록 떠나려 했던 세계와 내가 지키고 가꾸는 세계와의 충돌”이라며 반대한다. 아버지가 통치하던 권위와 폭력적인 세계에서 탈출해 자신의 세계를 꾸린 마당씨는 이제 권위도, 폭력도, 건강도 남지 않은 부모님의 세계를 지켜본다.

만화는 주로 마당씨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보통 만화에서 해설은 그림과 독립되어 별도의 네모 칸 안에 들어 있지만, <마당 씨의 식탁>은 해설이 꽤 많은데도 불구하고 별도의 칸이 없다. <마당 씨의 식탁>에 나오는 해설은 모두 마당씨의 1인칭 독백이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은 마당씨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 같다. 게다가 만화에 나오는 모든 문자는 활자체가 아니라 작가의 손글씨고, 인물들은 사람 얼굴이 아니라 고양이(처럼 보이는) 인형의 얼굴을 하고 있다. 홍연식 작가의 작화는 간략화된 작화인데, 여기에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을 고양이처럼 바꾸어 동질감을 강화한다. 마당씨의 내레이션을 듣고, 친근한 캐릭터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당씨의 상황을 자꾸 내 모습과 비추어 보게 된다.

정신없이 달려왔던 지난 시절, 평범한 한국의 아버지들은 가족과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 시절을 지나 늙고 병든 육체만 남은 아버지들은 혼자 남아 가족의 겉을 돌아다닐 뿐이다. 아버지의 곁에서 가족을 지키던 어머니들도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을 뿐이다. 마당씨는 스스로에게, 아니 독자들에게 묻는다.

“왜 하필 나의 부모는 이렇게 일찍부터 약에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왜 스스로 당신들의 건강마저 돌볼 기회를 놓친 걸까… 왜?”

홍연식 작가의 만화 <마당 씨의 식탁>. / 우리나비 제공

왜 나의 부모는 약에 의지해 사는가?
마당씨의 어머니는 건강이 악화되어 정밀검사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다. 세월은 겨울에서 봄을 지나간다. 만화는 마당씨의 동선을 따라간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고, 돌아와 텃밭을 가꾸고 만화를 그린다. 마당씨의 텃밭이 더욱 푸르게 변할 때쯤 어머니가 쓰러지신다. 큰 병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옮기고, 응급실에 대기하고, 같은 검사를 하는 지루한 과정이 반복된다. 감당할 수 없는 비용으로 어머니가 다니던 국립의료원으로 옮긴다. 마당씨는 어린 시절 작은 입식 부엌에서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추억한다. “젊고 날씬한 엄마”와 심장병으로 입원한 늙은 엄마가 교차된다. 어머니는 갑자기 집에 가자고 몸에 붙은 의료기를 떼어낸다. 한바탕 실랑이가 이어지는 장면 다음에 한 페이지 가득 마당씨의 텃밭을 보여준다. 오래도록 폐농약이 쌓여 있던 자리에만 유독 아무 풀도 자라지 않는다. <마당 씨의 식탁>은 개인의 삶에 끊임없이 작용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그 가족이 풍성한 텃밭일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폐농약이 쌓여 있던 자리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이 만화는 2012년에 출간된 <불편하고 행복하게> 후속작이다. <불편하고 행복하게>는 작가가 학습만화를 그리던 2005~2006년, 복잡하고 시끄러운 대도시 서울을 떠나 산자락에 붙은 집을 임대해 만화를 그리며 생활하는 자신과 아내의 이야기를 옮긴 자전적 만화다. 작가는 갈등 속에서 작업을 하고, 아내는 그림책 공모전을 준비한다. 두 부부의 전원생활에는 자연과 함께 하는 낭만과 편집자와의 갈등, 풀리지 않는 작업의 고통, 가난한 삶의 힘겨움이 공존한다. 작은 일에 분노하고, 또 작은 일에 기뻐하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는 보편적 공감을 끌어낸다. 시간적으로 <마당 씨의 식탁>은 작가가 <불편하고 행복하게>를 작업할 당시의 이야기다.

만화로 본 세상

전작도 그렇지만 <마당 씨의 식탁>도 꾸미지 않은 리얼리티가 빛난다. 작은 묘사 하나도 세부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텃밭의 식물 하나에도 애정을 주고, 특징을 오롯이 담아낸다. 그 와중에 하늘을 날거나, 인물이 작아지는 등 만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환상적 묘사들이 함께 반짝인다. 이제 첫 권이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갈등과 고통을 그렸다. 앞으로 남은 두 권에서 나올 이야기가 기대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