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아이들은 즐겁다>-작은 기쁨으로 큰 슬픔과 맞서는 아이들

<아이들은 즐겁다>는 형편이 다른 여러 아이들의 사실적인 일상이 있다. 가난한 아이도, 부자 아이도 있다. 부모님이 계신 아이도 있고, 안 계신 아이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진 세상에 노출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어린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만화는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많다. 그런데 그 만화의 주인공들은 어린이들이지만, 어린이가 아니다. 로봇 ‘철인 28호’를 조종하는 반바지 소년 카네다 쇼타로는 10세의 소년탐정이다. 10세,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에 불과한 어린이가 거대한 로봇을 조종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으로 활약한다. <땡땡의 모험>의 땡땡도 쇼타로보다는 나이를 먹었지만, 소년 기자의 신분이다. 나이가 많아봐야 10대 소년이다. 그런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험을 한다. 명랑만화의 수많은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스포츠 만화의 주인공들도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모험을 하고, 뛰어난 스포츠 실력을 보여준다.

작가 허5파6의 만화 <아이들은 즐겁다>. | 네이버 웹툰

귀엽게 포장하지 않은 어린이들의 일상
어린이 만화의 어린 주인공들은 설정만 어린이일 뿐, 능력은 어린이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뛰어난 능력으로 그들은 일상이 아닌 어린이들이 꿈꾸는 환상을 보여준다. 독자인 어린이들이 자신의 일상보다는 꿈꾸는 환상을 보여주기 원하니까. 그래서인지 어린이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만화는 많지 않다.

네이버에 연재되고, 비아북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가 허5파6의 <아이들은 즐겁다>는 어린이들, 그것도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만화다. 제목만 보면 순진무구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만화를 기대하게 되지만, 틀렸다. <아이들은 즐겁다>는 TV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처럼 어린이들의 삶을 예쁘고 귀엽게 보여주지 않는다. 어떠한 포장도 하지 않고 스산한 일상을 즐겁게 살아내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이 만화는 어린이용이 아니라 어른들이 봐야 된다.

시대 배경은 90년대로 짐작된다. 전자오락실이 나오고, 게임보이 같은 오락기계가 나온다. 공간은 아파트와 달동네, 평범한 주택단지가 혼합된 지역이다. 공간은 아이들의 환경을 규정한다. 달동네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와 단 둘이 어렵게 사는 아이가 있고, 새로 입주한 고급 아파트에서 과외를 받으며 사는 아이가 있다. 이런 아이들이 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화자인 다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살갑지 않은 작은어머니와 함께 입학식에 온 다이. 입학식이 끝나자 작은엄마는 차로 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데려다준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다이. 아빠는 자고 있고 혼자 책가방을 싼다. 다이의 엄마는 병원에서 투병 중이고, 아빠는 일용직 노동자다. 다이는 책 읽는 걸 좋아해 혼자 글을 깨우쳤고, 시간만 나면 책을 읽는다. 주인집 형이 버린 책을 몰래 가져와 읽고, 친구 집에 놀러가도 책만 읽는다. 하지만 엄마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고단한 노동에 나선 다이 아빠는 다이와 살가운 대화를 한 번 나누지 못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다이는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모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민호가 먼저 다가와 둘은 절친이 된다. 민호는 항상 밝고 긍정적이지만, 아빠는 항상 술에 취해 있고, 고등학생 형은 일진이다. 민호 엄마가 돈을 벌고 있다. 다이의 또 다른 절친인 유진은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 다이보다 더 어려운 아이인데,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 반장 안경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로, 아침부터 밤까지 학원에 다닌다. 안경의 형은 미국에 공부를 하러 갔는데, 공부에 방해가 되는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반장 시아 역시 아파트에 살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다. 아리는 다이처럼 책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다. 그런데 부모님은 오빠들만 좋아하고 아리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첫 시간에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물어본다. 안경과 다이만 손을 들자 속으로 ‘학교가 작아서 그런가? 귀찮게 됐군…’이라고 생각한다. 임시 반장, 부반장이었던 안경과 시아를 슬쩍 정식 반장과 부반장으로 임명한다. 학교에 다녀온 아리에게 엄마가 묻는다. “오늘 반장 선거 했어?” 아리가 “아니, 안경이랑 시아가 계속하는 거래”라고 대답하자, 엄마가 짜증을 낸다. “이거 보나마나 뭔가가 있어. 안경이 엄마 으스대는 꼴을 계속 봐야 한다니… 어휴!!” 그리고 바로 안경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어머, 안경이 엄마~ 축하해요~ 호호호~ 안경이는 어쩜….”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르다. 조금씩 형편이 다르지만, 아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시아는 생일파티에 와서 책을 읽고 있는 다이를 좋아하게 된다. 시아는 다이가 아리하고만 친한 게 속상하지만, 아리가 위험에 빠졌을 때 기지를 발휘해 아리를 구해주기도 한다. 운동회 날 민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유진이에게 자기가 받은 사인펜을 주고 먼저 뛰어간다.

환경은 다르지만 이해해 가는 아이들
<아이들은 즐겁다>에는 형편이 다른 여러 아이들의 사실적인 일상이 있다. 가난한 아이도, 부자 아이도 있다. 부모님이 계신 아이도 있고, 안 계신 아이도 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친구를 잘 사귀는 아이, 자기 마음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 여러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진 세상에 노출되어 있다. 성범죄자가 마을에 나타나기도 하고, 가정폭력에 노출되기도 하고, 양육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즐겁게 논다. 상황은 슬프고 어려운데, 아이들은 작은 기쁨을 찾는다. 작은 기쁨으로 커다란 슬픔에 맞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어른들은 잃어버린 어린아이들의 힘이다. 어려운 상황에 빠지기보다는 바로 지금 친구들과 뛰어놀고, 재미있는 만화책을 보고, 작은 아지트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만화로 본 세상

이야기는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다이 엄마, 아빠의 이야기도 함께 보여준다. 두 어른들의 사정을 보여주고, 다이의 아빠가 다이와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 만화는 마치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그린 것처럼, 간단한 선으로만 완성되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만화의 정교한 선과 화려한 색을 빼버렸다. 그만큼 독자들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다. 간혹 초등학교 1학년 다이가 그린 만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은 즐겁다>는 오늘, 슬픔과 외로움으로 괴로운 이에게 보내는 어린이들의 소박한 응원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