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꿈의 포로 아크파크>-유머와 웃음, 그리고 풍자를 사수하라!

<꿈의 포로 아크파크>의 ‘유머부’처럼 국가에 의해 웃음이 통제된다는 상상만 해도 그 자체로 공포가 된다. 유머가 유머로 안 읽히고 공포로 느껴지는 게 현재 한국 사회인 것이다.

연세 지긋한 영감이 한 아이를 만나서 물었다. “쥐방울만한 녀석, 어딜 가냐?”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대꾸했다. “할아버지는 소방울이에요?”

이 내용은 개그일까? 농담일까? 아마도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다루는 만화가 있다. 프랑스의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작가 작품인 <꿈의 포로 아크파크>라는 만화책이다. 이 작품은 5권짜리 시리즈로 미래인지 아닌지 모를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여 만화가 아니면 표현이 안 되는 상상력을 담았다. 주인공 아크파크가 생각하고 느끼는 상상의 세계는 대단히 철학적인 질문도 동반하기 때문에 자칫 웃음을 위주로 만화를 보는 독자에겐 불편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전복적인 상상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만화 <꿈의 포로 아크파크 1>에는 시중의 시답잖은 농담들 가운데 유머읹 아닌지를 진지하게 판결하는 위원회가 열린다.

유머부 산하 개그위원회·농담위원회
<꿈의 포로 아크파크>는 1권 첫 페이지에 “유머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들을 아나니”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모든 말도 안 되는 상상은 유머를 기반으로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1권 2장에 있는 ‘유머부’ 에피소드를 보며 충격을 느꼈다. 국가에서 유머부 청사를 만들어 방대한 농담과 신소리 사전을 편찬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아크파크는 유머부 청사에 근무하는 직원이다. 매일 <폭소뉴스> 신문을 보면서 출근하고, 개그위원회와 농담위원회 등 각 위원회에서 상정한 안건을 의결하는 회의를 하며, 유머에 대한 분석과 학술연구를 한다. 회의실 입구에는 ‘유머’, ‘해학’이라는 글자가 슬로건으로 써 있고, 회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하다. 그러나 안건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바로 첫 줄에 언급한 내용처럼 시답잖은 내용들이 과연 유머냐 아니냐를 논의한다.

<꿈의 포로 아크파크>는 만화의 주요소인 유머를 통해 만화만 할 수 있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한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래서 으레 그러하듯이 만화 속의 기가 막힌 상상력 정도로 감탄하면서 한판 웃으면 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설정이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유머, 농담, 웃음, 재미 등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상상이 현실로 받아들여져서이다. 만화라서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저 웃거나 감탄하며 지나치기가 힘들다. 현재 한국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이 어쩌면 이렇게 나의 웃음조차 통제하려고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 전횡을 가능케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다.

대략 DJ 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진보-보수 진영논리는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이 되어 이제는 정치에 염증을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MB 정권 이후에는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불쾌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까지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정치에 관심이 없이 산다는 것은 ‘나’를 놓고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와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은 정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거나 내가 가진 그 무언가를 부당하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최근 몇 년간 언론에 보도된 내용보다 더 많은 의혹들이 생긴다는 사실은 마음을 어지럽힐 뿐 아니라 사람을 몹시 긴장하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그 모든 것들이 더욱 강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급하게 결론내고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려고 하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힘이 자꾸 더 크게 느껴진다. 거듭되는 비상식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불안감은 슬픔을 지나서 일상적 우울감에 빠지게 만들었고, 어떤 즐거움도 나에게 에너지로 전환되지 않게 되기에 이르렀다.

내가 만화와 관련된 글쓰기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간 쓴 글의 기조들은 만화가 갖고 있는 다양한 의미와 역할을 소개하고 만화 속의 성찰적 내용을 해석해가며, 만화에서 웃음과 재미의 색보다는 인간과 사회의 이면을 꺼내 올리는 만화 역할에 더 방점을 찍었었다. 아이들이나 보는, 다소 천박한 뒷골목 문화로만 여겨지던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만화의 재미와 웃음이 인간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더 크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작년 4월 16일 이후 다시 2015년 새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불안감과 우울함, 그리고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뭐가 문제인지 더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애써 재미있는 것을 찾아서 마음을 돌리고 싶었고, 자그마한 일에도 훨씬 과장된 웃음을 지어봤고, 그저 일에만 매진하며 무아지경이 되려고 해봤지만 그 모든 것이 부질없다.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치는 웃음
우리에게 익숙했던 상식의 선이 무너지고 있고, 우리가 갖는 가치와 신뢰도 무너지고 있다. 이처럼 반복되는 좌절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한다. 이 두려움은 <꿈의 포로 아크파크>의 ‘유머부’처럼 국가에 의해 웃음이 통제된다는 상상만 해도 그 자체로 공포가 된다. 유머가 유머로 안 읽히고 공포로 느껴지는 게 현재 한국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내가 느껴야 하고 내가 해야 하는 유머와 농담과 웃음과 재미와 풍자를 절대 빼앗겨선 안 된다.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는 것은 웃음이다. 유머, 웃음, 재미, 그리고 풍자를 사수하라!

이 글을 쓰는 중인 1월 8일에 프랑스의 풍자시사 주간지 <샤를리 엡도>가 테러 공격을 받는 참사가 일어났다. 테러에 희생당한 스테판 샤르보니에(Stephane Charbonnier), 카뷔(Cabu), 울린스키(Wolinski), 티그누스(Tignous) 4명의 시사만화가들과 다른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만화로 본 세상

<백정숙 만화평론가>

만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세상이 행복해지기 위해 만화를 택했고, 만화가 행복해지기 위해 만화 관련 일 가운데 그리는 것을 빼고 다 하게 되었으며, 나의 행복한 상상을 향유하기 위해 평론과 기획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