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삼성, 웨어러블 혁명의 승자 될 수 있을까

소니나 페블 등 스마트워치 시장에 뛰어든 회사는 많다. 그 가운데 선두업체는 관련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이다. 애플은 출시 소문만 무성할 뿐 아직까지 ‘아이워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삼성은 본격화될 ‘손목 위의 스마트전쟁’에서 선두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까. 진짜 승패는 애플이 아이워치를 언제, 어떻게 내놓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아래 보도자료는 4월 11일(금) 오전 11시 이후에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4월 11일 오전 9시, 삼성전자가 배포한 보도자료다. 제목은 ‘삼성전자, 갤럭시 S5 전 세계 125개국 동시 출시’다. 보도자료의 대부분은 삼성의 스마트폰 갤럭시 S5 출시와 관련된 소식이다. 전 세계 31개국 매장에서 ‘갤럭시 S5’를 구매한 고객 대상으로 삼성을 상징하는 파란색 카펫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등의 ‘S-카펫’ 행사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삼성이 이날 내놓은 제품은 ‘갤럭시 S5’만이 아니다. 삼성이 지난해 9월 내놓은 스마트워치 ‘갤럭시 기어’의 후속작들 역시 판매가 시작됐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보도자료에는 본문에만 이들 제품-삼성 기어2, 기어2 네오, 기어핏-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같은 날 페이스북 ‘스마트워치’ 그룹. 삼성전자가 선보인 기어핏의 심박 기능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었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기어핏 실시간 심박 측정이 안 된다’는 게시글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심박수를 리얼타임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테면 달리다가 멈춰서 기계를 조작해 결과를 봐야 한다면, 무용지물이 아니냐는 논란이다. 논쟁은 현재의 심박 측정기술의 한계인지, 아니면 의료기기 등록 규제로 의료용 센서가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를 두고 벌어졌다. 결론은 글로벌로 출시되는 기어핏에서는 실시간 측정이 되는데, 최근의 의료기기 규제개혁 논의 덕분에 펌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 한국에서도 적용 가능하다는 것으로 정리됐다.

삼성전자 모델들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월 24일부터 3일간 열린‘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4’행사에서 기어2 등 삼성의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삼성전자

선두 주자인 삼성 ‘갤럭시 기어2’ 조용한 출시
혁명.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혁명(革命) [명사] 1.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제도, 경제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2. 이전의 왕통을 뒤집고 다른 왕통이 대신하여 통치하는 일. 3.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

웨어러블(wearable)이라는 말이 등장한 지도 벌써 3~4년이 흘렀다. 여기에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앞의 사전적 정의의 3번에 해당할 것이다. 웨어러블에 대한 소개 논문을 보면 “2013년 또는 2014년이 웨어러블 혁명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런데 지난해가 원년이라는 예측은 틀렸다. 그렇다면 올해는. 과연 올해가 가기 전에 ‘웨어러블 혁명’은 도래할 것인가.

웨어러블과 관련한 논의가 촉발된 것은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후속으로 ‘아이워치’(iwatch)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은 아직까지 ‘아이워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2013년 웨어러블 혁명’이 불발한 주원인이다. 아이워치 대신 웨어러블의 기수(旗手)로 떠오른 것은 구글 글래스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 글래스를 쓰고 지하철을 타거나, 행사장에 참석한 모습이 포착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구글 글래스가 정식으로 발매될 것으로 예상된 것도 처음엔 2013년 하반기였다. 그런데 그 역시 불발이었다(박스 참조). 그리고 2014년. 벌써 1·4분기가 지났다.

앱 연동에 강점가진 페블 ‘복병’으로
2014년 4월 중순까지 웨어러블의 승자는 삼성이다. 삼성전자 측은 지난해 9월 내놓은 갤럭시 기어의 누적판매 집계가 100만대라고 밝혔다. 지난해 연말까지의 수치다. 소니나 페블 등 스마트워치 시장에 뛰어든 회사는 많지만, 현재까지 형성된 시장의 절반가량을 삼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4월 10일 삼성전자 관계자는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공식 집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 사가 주장하는 판매량 기준으로 집계를 할 수밖에 없는데, 각 사의 주장을 다 받아들여도 현재 기어의 판매량이 제일 많다”며 “특정 제품을 거명하면서 어떤 제품보다 우리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현존하는 스마트워치 중에서는 가장 성능이 뛰어나고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 결과는 앞으로도 지속될까.

2013년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킨 스마트워치 페블(왼쪽)과 올해 1월 발매된 후속작 페블스틸. /pebble

분명 스마트워치 시장은 아직 형성 초기 단계다. 삼성이 스마트워치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페블이다. 페블은 지난 2009년 캐나다 워털루대학을 졸업한 청년 창업가 에릭 미기코프스키가 만든 스마트워치 벤처회사가 내놓은 제품이다. 미기코프스키의 페블은 2012년 4월 킥스타터를 통해 목표 모금액인 10만 달러를 크게 뛰어넘는 1030만 달러(약 109억원)의 크라우드펀딩을 받는 데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첫 제품 출시는 2013년 1월에 이뤄졌다. 페블 측이 밝힌 현재까지 전체 누적 판매대수는 40만대다.

“2013년 나온 제품 중 베스트 스마트워치로 뽑힌 것은 페블이었다.” 한상기 소셜컴퓨팅연구소 대표의 말이다. 실제 출시된 스마트워치를 비교하는 외지의 평을 보면 명시적으로 기어보다 페블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페블 테크놀로지가 내놓은 제품을 보면 기어에 비해 기능적 제약이 많다. 기어에 있는 통화기능, 녹음, 음성인식, 다 없다. 게다가 액정도 흑백 e-페이퍼 디스플레이다.

기어와 페블을 다 사용해본 국내 IT 전문가에게 문의했다. IT업계의 유명 인사인 그는 “업계 지인들과의 관계 때문에” 익명을 요청했다. 그는 현재 24시간 페블을 착용하고 생활하고 있다. 생활방수 기능이 있기 때문에 목욕할 때도 그냥 차고 있다. 기어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기어도 차봤어요. 그런데 손목 스트랩(줄) 부분에 스피커가 달려 키보드를 치면 불편했습니다.” 어댑터를 이용해 USB 케이블로 연결하는 방식도 기어를 회피하는 요인이었다. 그는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 기어는 방전된 상태인데, 방치해놓은 게 2주일 됐네요.”

그냥 일반인, 얼리어답터는 어떨까. 곽지환 한국지식산업연구원 이사(45)는 지난 1월 발매된 ‘페블스틸’을 인터넷으로 선주문해서 받아 현재 사용하고 있다. 페블스틸의 외형만 놓고 보면 그냥 평범한 시계처럼 보인다. 곽 이사는 오히려 그것이 매력 포인트라고 말했다. “스틸블랙을 사용하고 있는데, 페블보다 더 비싸지만 오히려 그게 튀지 않아서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 나이라면 디자인적으로 튀는 것을 선호하긴 어렵거든요.”

페블 사용자들이 강조하는 페블의 강점은 페블 생태계다. 페블 대표 에릭 미기코프스키는 4월 5일 한 외지와의 인터뷰에서 페블과 연동되는 앱의 수가 2300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중 실제 페블에 띄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8개가 최대치다. 앞의 IT 전문가는 “스마트폰의 경우도 처음에는 신기해서 이러저러한 앱을 다 설치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카카오톡, 페이스북, 네이버 등 몇 개의 앱으로 사용이 제한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필요하면 그때그때 루팅해서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8개 정도 구동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삼성이 내놨던 갤럭시 기어는 왜 얼리어답터에게 외면받았을까. 곽 이사의 말에 힌트가 있다. “기회가 되면 차보고 싶긴 했는데, 디자인적으로 맞지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삼성 갤럭시 노트3인가에만 연동되는 기기였잖습니까. 그 제품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겐 쓸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죠.” 페블은 아이폰뿐 아니라 안드로이드 기기에도 다 연동해 쓸 수 있는, 말하자면 범용성을 가진 스마트워치인 데 비해 삼성의 기어는 출시 후 연동돼 사용되는 범위가 확장되었지만 여전히 삼성 스마트기기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지난 2월 24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삼성 모바일 언팩 2014’ 행사에서 신종균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스마트워치 갤럭시 기어의 후속 모델 중 하나인‘기어핏’을 소개하고 있다. / 삼성전자

이번에 삼성이 내놓은 갤럭시 기어의 후속작들은 페블 등의 장점을 일부 수용했다. 생활방수 수준을 높이고(IP55→IP67), 기어2 네오는 통화기능 등을 빼 가격을 페블 수준으로 낮췄다. 기어핏은 또 다른 영역인 팔찌형 웨어러블을 경쟁상대로 삼고 있다(별도기사 참조). 하지만 삼성이 내놓은 하드웨어 제품에서만 쓸 수 있는 것은 여전하다. 왜일까. 삼성 관계자는 “전략적인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범용성보다 기능에 치중하다보니 최적화를 염두에 둬 삼성제품에 우선적으로 적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삼성이 내놓은 ‘기어2’ 제품군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기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의 제품명 중 갤럭시가 바로 안드로이드를 적용했을 때 붙는 이름이다. 4월 11일 출시한 스마트폰 갤럭시 S5는 안드로이드 기기다. 반면 ‘삼성기어2’에는 운영체제(OS)로 삼성과 인텔 연합군이 만든 타이젠이 채택되었다. 삼성의 스마트기기로는 처음 적용되는 것이다. 삼성의 입장에서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타이젠 연합군’은 아직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았다. 한상기 대표는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과 이미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페블이 2300개의 앱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밝힌 것에 비해 삼성의 기어 시리즈가 얼마만큼의 앱을 확보했는지 밝혀진 숫자는 없다. 삼성 측은 지난 3월 하순 웨어러블용 타이젠 소프트웨어 개발자 키트(SDK)를 발표하면서 기어2와 기어2 네오용으로 개발된 23가지 타이젠 기반 앱들도 공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몇 개의 앱이 ‘서드파티’(별도의 제3자 개발자 그룹)를 통해서 개발되었는지 집계를 발표하고 있진 않다. 삼성 관계자는 “타이젠용 앱들의 숫자는 지금 현재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별도의 집계는 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토로라ㆍLG 스마트워치 여름쯤 가세
구글이 ‘웨어러블’ 영역에서 대신 손잡은 파트너는 LG와 모토로라다. 모토로라는 구글이 인수했다가 지난 1월 중국의 휴대폰 제조업체 레노버에 매각한 대표적 휴대폰 제조사다. 구글이 웨어러블 전용으로 내놓은 OS인 ‘안드로이드웨어’를 채택한 제품이 모토로라의 ‘모토360’과 LG의 ‘G워치’다. 아직 구체적인 성능이나 제원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올해 여름쯤 출시될 전망이다.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 삼성은 앞으로 본격화될 스마트워치 전쟁에서 현재의 선두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핵심은 애플이 아이워치를 언제, 어떻게 내놓느냐에 달렸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대부분의 IT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올해 3·4분기 또는 연말로 예상되고 있는 아이워치 출시 시기는 아직도 소문만 무성하다. 앞의 IT 전문가는 “일단 내놓는다면 6500만명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치가 있었다”며 “실제 0을 하나 빼 650만개가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시장구도를 완전히 뒤엎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월 24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삼성 모바일 언팩 2014’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삼성이 내놓은 스마트워치‘기어2’를 살펴보고 있다. / 삼성전자

“하드웨어적 측면에서는 다 고만고만하다. 애플이라고 특별히 다른 기능을 넣어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 삼성이 내놓은 것을 보면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기능은 다 탑재했다. 그렇다면 결국 다른 점은 플랫폼이지 않을까.” 서종훈 연세대학교 미디어시스템 연구실 연구원의 예측이다. 계속되는 그의 전망. “삼성이 스마트워치를 내놨을 때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특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웨어러블 서비스에서만 사용 가능한 킬러 서비스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스마트워치를 꼭 사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제품이 되길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글의 안드로이드웨어 스마트워치나 애플이 내놓게 될 아이워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바보 같은 것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삼성의 멀티플랫폼 전략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아이워치의 출시를 예상하면서 시장 선점 효과를 노리고 갤럭시 기어를 출시한 것인데, 아이워치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아직 삼성도 본격적으로 전략을 가동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스마트워치에 관한 한 아직까지는 모색단계이지 않나 싶다.” 맨 앞에 인용한 삼성의 보도자료가 왜 기어2의 출시를 강조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다.

조직 구성면에서도 아직 전초전 단계라는 시각도 있다. 앞의 IT 전문가는 삼성의 스마트워치 개발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NBD(뉴비즈니스 디벨롭먼트)그룹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예로 들었다. “조직 특성상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 아무리 관련 비전이 뛰어나더라도 새로운 사업부문의 하나로 인식되는 이상 담당 실무자에게 힘이 실리기 어렵다.” LG가 개발 중인 G워치의 경우도 LG전자 mc(모바일 커뮤니케이션)사업부의 ‘상품기획그룹’에서 담당하는 것만 알려져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현재 스마트워치의 라인업이 다 갖춰져 있지만 우리는 아직 출시 시기도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조직명이나 책임자를 거론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반면 소문만 무성한 애플 ‘아이워치’의 경우 제품 디자이너만 100명이 넘게 투입되고 있고, 해당 프로젝트를 명품 패션 브랜드 입생로랑의 폴 드네브 전 최고경영자(CEO)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애플 아직은 전초전 단계” 분석도
웨어러블 혁명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윤곽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양상은 이것이다. 웨어러블 혁명을 선도할 것으로 봤던 구글 글래스는 대중적으로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웨어러블 혁명의 전초전은 지금 막 불붙고 있는 스마트워치나 밴드형 기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는 삼성이 내놓은 ‘기어’가 이 새 영역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일어났던 스마트폰-모바일 혁명은 기존 시장을 장악했던 전통적인 강자들을 도태시켰다. 이 과정에서 삼성이 취했던 빠른 추격자(Fast-follower) 전략은 성공했다. 이제 성숙기에 접어든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은 제1의 강자가 되었다. 반면 아이폰의 등장을 과소평가하고, 피처폰에 집중했던 LG전자나 노키아는 근 10년 가깝게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현재 스마트워치 영역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삼성의 판단과 전략은 옳은 것일까. 구글과 손잡은 LG와 모토로라는 이번에는 웨어러블 혁명의 파고에 제대로 올라탄 것일까. 페블의 창업신화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까. 아니면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처럼 애플이 아이워치를 내놓으면서 시장을 재정의하며 웨어러블 혁명을 이끌게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스마트워치 전쟁의 승패에 따라 또다시 기존 질서의 재편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구글 글래스는 왜 웨어러블 혁명 기수가 될 수 없나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한 행사장에서 구글 글래스를 착용하고 있다. / AP연합

“구글 글래스는 대중화에 실패할 것이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IT 전문가들의 결론은 엇비슷했다. 4월 11일, 구글은 4월 15일(현지시간) 오전 9시부터 딱 하루 동안 미국에서 구글 글래스를 1500달러에 한정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구글 글래스는 아직 공식적으로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최근 행보를 살펴보면 구글 측의 ‘개선계획’은 디자인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구글이 “안경분야의 전통 강자인 레이밴과 오클리 선글라스 브랜드를 갖고 있는 룩소티카와 제휴했다”는 것이 가장 최신 소식이다. 한상기 대표는 구글 글래스가 대중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재미있는 사례를 내놓았다. MIT 출신의 스티브 만은 1990년대 초반부터 ‘웨어러블’ 컴퓨팅을 직접 시험해온, 말하자면 이 분야의 선구자다. 지난 2012년 7월 프랑스 파리의 맥도널드 매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관련 업계나 학계에서 유명한 사례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 글래스를 쓰고 들어갔는데 제지를 당한 겁니다. 평소처럼 법원으로부터 받은 ‘라이프로깅’을 실험하고 있다는 허가증을 제시했지만 가차없이 무시당한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에서도 구글 글래스를 사용해본 후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비판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다른 대체제도 거론된다. 이찬진 터치커넥트 대표는 페이스북 스마트워치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현재 구글 글래스를 통해 할 수 있는 기능은 모자 등에 탈부착이 가능한 카메라인 고프로(go pro)와 스마트폰의 조합이면 대부분 커버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판 가격인 1500달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사생활 침해 논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있기 때문에 흡인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 이슈는 생각 외로 심각하다.” 이경전 교수의 언급이다. 구글은 구글 글래스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구글 글래스 익스플로어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구글 글래스에 대한 생각을 쓴 에세이를 제출한다든지, 기존 사용자의 추천을 받는 등 엄격한 제한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구글 측은 “4월 15일 한정판매도 이 프로그램의 연장선”이라고 밝히고 있다. 향후 웨어러블 혁명을 주도할 기기는 구글 글래스나 스마트워치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한상기 대표는 “아무래도 가격적인 측면에서 저가 밴드가 우선되고 그 다음이 스마트워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마트워치는 롤렉스 시계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이찬진 터치커넥트 대표는 지난 3월 한 인터넷 IT 전문지 기고에서 “손목시계가 귀찮아 안 차게 된 지 20년 만에 다시 차게 되었다”고 밝혔다. 아직 스마트워치의 ‘용도’가 다 밝혀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페블을 개발한 에릭 미기코프스키의 인터뷰 기사에 대문자로 등장한 물음도 일맥상통하는 문제의식이다. “WHAT ARE SMARTWATCHES FOR?”(스마트워치는 무엇을 위한 물건인가?) 이 대표는 앞의 기고문에서 “스마트워치는 늘 손목에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도 전화나 문자, 그리고 각종 앱의 알림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며 “직접 스마트폰을 보지 뭐하러 시계까지 차면서 확인하느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회의 중이나 두 손이 다 바빠 스마트폰을 보기 힘든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고 적었다. 실제 스마트워치포럼 사용자들이 유용하다고 꼽은 것도 ‘알림’(노티) 기능이다. 곽지환 이사도 “부재 중 전화를 거의 놓치는 경우가 없는 것은 편리하고, 특히 겨울에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아도 간단한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이 유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곽 이사는 “솔직히 단지 그 용도에 그친다면 동일한 금액(30만~40만원대)을 주고 다시 사라면 망설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스마트워치가 필수불가결한 제품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라는 것은 아니다. 기술 발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항상 예기치 않았던 용도가 발견되면서 혁신적인 발전이 일어났다. 애초에 중앙통제시스템 붕괴에 대비한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된 아파넷(ARPAnet), 즉 지금의 인터넷이 대표적이다. 손목시계도 마찬가지다. 양대 세계대전 전까지 개인이 가지고 다니던 시계는 회중시계였다. 전장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시계로 손목시계가 발달했다. 정확한 시간을 보여주는 휴대폰이 대중화되면서 일반인들에게 손목시계는 사라지는 카테고리처럼 보였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 시계에 대한 관심은 계속됐다. 한상기 대표는 그 점이 이를 테면 필름카메라를 디지털카메라가 완전히 대체했던 기술발전 경로와 다를 것으로 봤다. 그는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예를 들어 앞으로 삼성이 아무리 많이 투자해 기어 시리즈의 디자인을 세련되게 다듬는다고 하더라도 롤렉스 시계를 대체할 수 있을까.” 앞으로 진행될 웨어러블 혁명의 공식은 다차원 방정식이 될 것을 암시하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