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미국, 자고나면 새 기술 웨어러블 선도 비결은?

혁신적인 아이디어 나오면 곧바로 상용화, 기업들 하루가 멀다하고 신제품 출시

사실 웨어러블과 관련한 ‘아이디어’의 역사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도 어린 시절, 소년지에 실린 고 김정흠 고려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의 ‘미래시계 상상도’를 보고 가슴 설렌 적이 있다. 김 교수가 예측해 그림으로 제시한 이 시계에는 공학컴퓨터와 TV, 전화기가 통합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웨어러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

답은 그것이 가능해진 기술적 발전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혁신적 발전이 상상 속의 물건이 만들어지는 것을 가능케 한 것이다. 스마트 워치 페블을 만들어낸 에릭 미기코프스키는 지난 4월 5일 외지와의 인터뷰에서 페블이 가능했던 기술적 이슈로 스크린 기술, 배터리 수명, 어셈블리 기술을 꼽았다. 앞으로의 ‘용도’와 관련해 그는 “사실 페블 출시 후 꿈꾸던 앱은 이미 다 만들어졌다. 예컨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내가 시티바이크를 이용하고 싶을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시티바이크 위치를 알려주는 앱도 이미 나왔다”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근본적으로 다른 미래 선도
하지만 웨어러블 시장의 특성은 종전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LG경제연구소가 지난해 말 낸 ‘웨어러블의 미래, 패션에서 길을 찾아야’ 보고서가 제시한 가설에 따르면 종전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DOP(Display Only Product)라는 정형화된 ‘폼팩터’로 제작된 기기다. ‘직사각형의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네모난 기기’라는 기본틀 아래 제조사나 제품군은 화면 비율이라든지 버튼의 위치 등을 두고 차이가 난다. 말하자면 경쟁의 룰이 이미 정해져 있는 제품이다. 하지만 웨어러블 기기는 다르다. 근본적으로 웨어러블은 틈새(niche)시장에 가깝다. 한 IT 전문가는 이렇게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단적으로 시계를 보자. 몇만원대의 중저가형에서 1억원도 넘는 고급형까지 서로 다른 카테고리로 분화되어 있다. 몇만원짜리 시계와 고급시계를 단순 비교할 수 있는가.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트로트 가수와 로커 중 누가 더 노래를 잘한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현재 상용화되었거나 상용화 직전 단계까지 와 있는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들. 위쪽부터 골전도 이어폰 사이냅스, 메멘토카메라, 조본업, 샐믹 랩의 묘. /Max virtual/Kick starter/jawbone/Thalmic labs

당장은 스마트워치가 웨어러블 혁명의 단초를 보여주는 스마트기기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미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이 하루가 멀다하고 경쟁적으로 나오고 있다. 맥스 버추얼사의 사이냅스(cynaps)는 모자 형태의 골전도 이어폰이다. 기존 이어폰과 달리 귀를 막지 않기 때문에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또한 귀 모양의 이상 때문에 보청기를 착용할 수 없는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구글 글래스의 프라이버시 논란이 계속된다면 대신 클립이나 단추 형태로 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거부감을 덜 불러일으키는 메멘토카메라를 사용하면 된다. 일정 시간 간격으로 사진을 찍어 블루투스 또는 WiFi로 연결된 스마트기기에 전송한다. 조본이 내놓은 팔찌형 라이프로거 업(Up)은 사용자의 움직임이나 수면활동을 기록하고 다시 스마트폰 앱으로 전송하여 세밀한 분석 데이터를 사용자가 볼 수 있게 한다. 사용자가 여기에 먹는 음식을 기록하면 칼로리와 영양 분석을 통해 운동량 목표치를 제안해주기도 한다.

올해 중반기쯤 상용화될 예정인 샐믹 랩의 묘(Myo)는 빅데이터를 활용한다. 팔에 착용하는 암밴드 형태의 이 제품은 사람들이 특정 제스처를 취할 때 팔뚝에 드러나는 근육과 뼈의 움직임, 미세한 전기신호 등 데이터를 모아 특정한 제스처의 ‘의도’를 추론해 제시하게 된다.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시켰기 때문에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사용 횟수가 늘어날수록 예측은 더 정교해진다. 샐믹 랩 측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묘’를 팔뚝에 착용한 사용자가 손만 까딱해 자유자재로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넘기는 장면이 시연되어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상상해 그려냈던 ‘미래기술’의 현실화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선 3~4년 앞선 기술도 사장
웨어러블을 가능케 하는 핵심 기술은 iot 즉,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다. 사람을 거치지 않고 사물과 사물이 직접 통신하는 사물 인터넷은 많은 것을 가능케 해준다. 이를테면 현재 스마트워치에 적용되고 있는 폰 위치찾기와 같은 기능은 스마트워치와 스마트폰이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위치정보를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발 더 나간다면 이런 상상이 가능하다. 목도리나 장갑, 가방에 아주 작은 통신모듈칩이 삽입된다면?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에서 간단한 조회로 설령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앞서 언급한 ‘묘’의 경우 이미 비슷한 선행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되었다는 것을 웨어러블 동향을 다룬 논문이나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픽&드롭(pick&drop)이라는 장치다. 전자통신연이 2010년 5월에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장치는 적외선을 이용해 손가락 움직임에 의해 변하는 손가락 힘줄 상태를 감지해낸다. 입력장치나 특정 동작을 예측해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로봇 제어 등 응용범위는 넓다. 아직도 개발 중인 ‘묘’와 유사한 기술을 이미 3~4년 전에 구현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이 기술이 상용화됐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전자통신연의 관련 연구실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 같은 경우 정부출연기관이기 때문에 제품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단 개발된 기술을 기업체에 이전해 상용화할 방법밖에 없다. 반면 기업체는 상용화 직전까지 간 제품을 받아 제품화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중간단계에 대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이 문제다.” 미국에서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오면 현실화·상용화로 연결되는 데 비해 왜 한국에서는 아이디어가 결국 사장되는 경우가 많은지 의문을 풀 단초를 제시하는 언급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