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위아래 따지지 말고 칼퇴근 좀 합시다

부하직원이 상사보다 일찍 퇴근하는 것이 월권행위이며, 자신을 공경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일까? 왜 직장 내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야만 하는 공경을 강요하는 것일까?

늦은 시간까지 많은 업무에 시달리며 상사의 눈치를 보고 있는 대다수 직장인의 소소한 소원은 바로 ‘칼퇴’이다.

필자는 항상 야근이 생활화되어 있는 부서에서 근무했지만 자신의 업무가 끝난다면 정시퇴근은 당연히 가능한 곳이었다. 상사 또한 처음 입사 당시 “난 야근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제시간에 일을 못하는 비효율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난 합리적인 사람이고 퇴근 안 시키는 그런 꼰대가 되지 않을 거야!”라며 ‘칼퇴’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 후 그 상사는 6시 이후 자신이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 그리고 자신이 임원진들과 릴레이 마라톤 회식을 끝낸 후 자신보다 먼저 퇴근한 팀원들에게 분노와 배신감을 표출하였다.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경멸하던 비합리적인 상사로 변화했고, 그 변화를 본인도 느끼고 있었다. 나 또한 시계와 상사의 방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의 퇴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해바라기가 되어 있었다.

어쩌다 상사는 몇 년 사이에 부하직원의 퇴근을 막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을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동료들과 그 원인을 이야기해보니 퇴근 후 임원진과 회식을 하고 돌아왔을 때 자신의 부하직원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함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 애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를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 그 팀은 안 바쁜가 보네요. 다들 퇴근했네”라는 다른 상사의 부추김도 한몫한다는 것이다. ‘칼퇴’를 하려는 부하직원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결국 그 직원은 그날 저녁 야근시간 마녀사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직장에서는 장유유서, 군신유의와 같은 유교의 덕목들이 그릇되게 행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하직원이 상사보다 일찍 퇴근하는 것이 월권행위이며, 자신을 공경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일까? 왜 직장 내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야만 하는 공경을 강요하는 것일까? 선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사용하라고 유교를 만들고 가르친 것은 아닌데 말이다.

최근 전국 20대 이상의 직장인 530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인 출퇴근과 관련된 통계조사에서 퇴근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상사의 눈치가 보여’(32.4%)가 전체 답변 중 2위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사원급의 경우 35.0%로 1위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관리자급이 퇴근을 하지 않는 이유로는 ‘일중독(15.4%)’과 ‘집에 일찍 가기 싫어서(7.7%)’로 다른 직급에 비해 높은 응답률을 나타내고 있었다. 결국 상사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과 습관으로 부하직원의 퇴근 후 라이프스타일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일로 인해 가정과 멀어져 일중독이 되었고, 집에 가기 싫어하게 된 자신의 외로움을 부하직원으로 달래려 한다. 게다가 결국에는 그 부하직원을 자신처럼 만들려는 그 이기심이 과연 옳은 일인지 되물어보고 싶다. 외롭다고 해서 자신이 붙잡고 있는 부하직원 또한 친구,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어져 그 도피처로 삼은 일터의 무거운 의자에 앉아 그리운 이들의 사진을 보지 말고 당장 달려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과 눈을 바라보고 미소지어 보는 건 어떨까? ‘가화만사성’을 이룬다면 가정의 행복과 직장에서의 존경은 따라올 것이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이 글을 읽는 상사님들은 오늘만큼은 “자! 오늘 일찍 퇴근합시다”를 먼저 외쳐주고 직원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고 자신도 행복해지는 ‘칼퇴’를 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