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 마피아’ 거수기?

“뻔히 예상된 결론이었다.”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의 말이다. 7월 4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고리원전 1호기의 재가동 결정을 두고 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어떻게 된 회의가 한 시간 남짓 논의하고 결정을 내린다는 말인가. 국민적 논란이 된 사안인데.”

환경연합과 녹색당 등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입주해 있는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흥국생명 빌딩 앞에서 매일 집회를 열고 있다. 결정이 내려지던 날에도 집회는 열렸다. 그동안 방청 요청은 여러 차례 내봤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사실상 거수기 역할만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위원들이 언제 자료를 받았으며 그날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되었는지 확인해보라.”

지난 7월 4일, 가동 정지 명령이 내려진 부산 고리원전 1호기의 재가동 여부에 대한 심의가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열렸다. 환경시민단체와 정당 관계자들이 재가동 반대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위원회 건물 앞에 서 있다. | 김창길 기자

원자력 안전위원회의 한장짜리 회의록
7월 4일 회의와 관련한 자료는 홈페이지 ‘위원회 회의’ 코너에 등록되어 있다. 보고와 안건자료는 결정이 이뤄지는 7월 4일 당일 등록되어 있었다. 방대한 분량의 자료다.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 위원회 위원들에게는 사전에 배포되었을지 몰라도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제3자는 확인하기 충분치 않은 시간이다. 이날 회의 결과도 7월 4일 당일에 등록되었다. 문건의 이름은 “제5회 원자력안전위원회 개최 결과(회의록)”라고 되어 있다. 내용을 확인했다. A4 한 장짜리 문서다.

“회의 결과 가. 보고안건. 제4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 결과: 원안접수 나. 심의·의결 안건. (제1호) 고리1호기 안전점검 결과 및 향후조치 계획안: 원안의결, (제2호) SMART 표준설계인가안: 원안의결.”

그걸로 끝이다.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회의록’이 아니다. 그날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이 어떤 발언을 했고, 어떤 토론이 오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문의했다. 안건자료는 3주 전부터 위원들에게 배포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한 시간 남짓 회의하고 결정했다는 것은 논의과정을 잘 모르고 밖에서 하는 말”이라며 “자료만 배포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위원별로 방문해 충분한 설명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1997년 당시 교육부 소속의 심의·의결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다르다. 당시는 교육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았지만 현재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으로 독립기구다. 위원장은 장관급이다. 출범은 지난해 10월 26일. 출범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김혜정 위원장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라고 표현했다.

논란은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경력에서 비롯됐다. 김혜정 위원장은 “강창순 위원장은 1980년대부터 원자력업계의 거두였다”고 말했다. 환경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한 김 위원장은 1980년대 울진 반핵운동으로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부안 방폐장 논란 때는 서울대에 방폐장을 유치하겠다는 운동을 주도했다”고 덧붙였다. 확인해봤다. 2004년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강창순 당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동료교수 63명과 함께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을 서울대 부지 내 관악산에 유치하자”고 주장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에는 “원전센터 유치가 주민 안전에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확신을 바탕으로 서울대가 이 시설을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총장께 건의한다”고 되어 있다.

당시 지역주민들은 “서울대 강창순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비롯한 63인의 서울대 교수는 국민 앞에 사죄하라”는 성명을 내고 반발했다. 이 ‘소동’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강 위원장은 위원장 내정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원자력 사업자단체인 한국원자력산업회 부회장을 맡았다. 윤철호 부위원장도 원자력안전기술원장 이전 경력은 원전 건설업체인 현대건설의 토목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원전산업 진흥을 선두에서 주장해오던 인사들이 수장을 맡았다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는 “과거 경력이 어떻게 되었든 현재 산업 전반을 이해하고 꿰뚫고 있는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임명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논쟁은 평행선이다. 김 위원장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만든 이유가 안전업무 규제를 강화하자는 것인데, 결국 원자력 마피아의 일자리만 만들어내고, 원자력업계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했다.

다시 7월 4일 회의로 돌아가보자.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민간위원을 접촉했다. 그의 첫 마디. “지역주민으로서는 찬반론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안전위에서는 기술적으로 안전만을 판단했다. 기술적으로 문제가 안 되는데, 원천적으로 재가동을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5차 회의에서 안전에 대한 토론은? 이 민간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정작 회의에서 고리1호기 안전점검조치 결과에 대한 토론은 거의 없었고, ‘한 시간 남짓’ 토론이 집중된 것은 2호 안건인 ‘스마트 표준설계인가안’에 대한 것이었다. “솔직히 나도 원자력 기술자는 아니다. 안전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이 있고, 이들이 한 달 반 이상 기술적으로 검토해왔는데 그동안 세 번에 걸쳐 이야기를 해왔으니 그건 클리어된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안심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줘야 하지 않느냐.”

안전위원회 만들어지고 개선된 것은
현재 고리1호기 재가동의 공은 지식경제부로 넘어가 있다. 7월 14일 고리원자력본부를 방문해 주민 면담을 진행한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주민들이 이해하지 않으면 재가동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선수 고리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 센터장은 “우리 입장은 무조건적인 가동중단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성과 관련한 ‘팩트’가 무엇인지 밝히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적인 민간전문가들의 자료검토 주장은 일단 받아들여졌다. 1500페이지에 달하는 관련 자료를 두고 지역주민들은 독립적인 전문가를 섭외해 검토할 예정이다. 최 센터장은 “만약 독립적인 민간전문가 검토를 통해서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하면 현재 가동 중단으로 기울어 있는 주민 여론도 바뀌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하지만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그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결론을 뒤엎는 것이니.”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민간위원은 “재가동 결정이 이뤄졌더라도 지경부의 검토를 다시 거치는 등의 한 단계를 더 둔 것만 해도 과거보다는 진일보한 것이 아니냐”고 덧붙였다.

한편, 위원회의 회의록이 제대로 된 회의록이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는 7월 19일 “내부적으로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