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제보자-진실을 밝혀야 ‘국민 다수의 이익’

“진실이 먼저인가요, 국익이 먼저인가요?”

제보자 심민호 팀장이 윤민철 PD(박해일 분)에게 묻는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물었다면 임순례 감독은 영화 <제보자>를 통해 “국익이란 무엇인가”란 화두를 던진다. <제보자>는 2005년 황우석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다. 당시 대한민국은 ‘황우석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황 박사는 인간 체세포에서 복제한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히면서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미 성체가 된 체세포에서 모든 장기로 변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할 수 있다는 것은 의학혁명에 가까웠다. 언제든 신체에 필요한 장기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난치병환자들에게는 복음과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MBC PD수첩은 배아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은 조작됐다고 보도했다. 황 박사는 서울대에서 파면당했고, 논문도 취소됐다.

영화 내용은 실제와 거의 유사하다. 심민호 팀장은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다고 밝힌 이장환 박사(이경영 분) 연구팀의 연구팀장이다. 그는 어느날 연구팀을 그만둔다. 그러고는 한밤에 ‘PD추적’의 윤민철 PD를 만나 “배아줄기세포는 없다”고 양심선언을 한다. 하지만 증거는 없다. 윤 PD는 취재에 들어가지만 쉽지가 않다. 최고의 과학스타로 떠오른 이 박사를 둘러싼 지지층이 너무 두텁다. 심지어 방송국 경영진과 청와대까지도 취재 중단을 요구한다.

이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왜 국익일까? 많은 사람들은 배아줄기세포 기술이 한국을 먹여살릴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많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국가의 이익은 ‘국민 다수의 이익’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중상주의자들은 국가의 부란 보유하고 있는 금과 은이라고 생각했다. 금은이 많은 나라는 부유하다고 봤다. 하지만 공리주의자들은 국가의 부란 사회 구성원들의 쾌락(행복)의 합이라고 봤다.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합친 사회의 총효용이 국가의 부라는 것이다.

공리주의는 효용(만족감)을 중시여기는 후생경제학으로 이어졌다. 후생경제학은 경제정책의 목표가 사회 전체의 경제적 후생(부)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보고, 그 부를 최대화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후생경제학에 따르자면 아무리 진실을 밝히더라도 국민 전체의 행복이 줄어든다면 진실을 밝히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장환 박사의 연구가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의 연구는 중단된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생명공학 원천기술 확보는 물거품이 되고 난치병환자들도 희망을 잃게 된다. 정부나 이 박사의 지지자들이 ‘PD추적’의 보도를 원치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연구로 국가와 국민을 속이고, 결국 국민들을 실망시킬 사기성 짙은 연구라면 진실을 까발리는 것이 사회적 부를 확대하는 방법이 된다. 이 박사의 말을 믿고 정부가 계속해서 불필요한 투자를 하거나 난치병환자들이 다른 치료를 받는 기회를 놓친다면 사회적 부는 되레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리주의는 정부 개입의 근거가 됐다. 소득불평등이나 독과점이 일어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위협을 받게 되면 정부가 법·제도로 이를 조정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또 민주주의도 발전시켰다. 1인1표제와 다수결원칙이 확립된 것도 공리주의의 결과물이다.

영화 속 경제

윤 PD의 직속상관인 방송국 국장은 “진실이 곧 국익”이라고 말한다. 국민들에게 진실을 제공해 바른 판단을 하도록 하는 것이 결국은 거짓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게 된다는 의미다. 권력자들은 때때로 “국익을 위해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실제로는 국익이 아닌 권력자의 사익을 위해서일 때가 종종 있다. 그 판단은 항상 어렵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