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국회 예고 드라마 ‘한·미FTA 혈투’

민주당 ‘비준 거부’ 전면전 선언… 상임위 상정부터 여야 충돌 불보듯

한나라당이 정기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을 강행처리함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의 국회 비준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된다. 민주당은 이미 한나라당과 전면전을 선언하고 한·미 FTA 비준 문제에 대한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지난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FTA 협상에서 큰 성과를 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여야는 한·미 FTA 재협상 타결과 관련해 정반대의 평가를 내놓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안상수 대표는 “이번 합의는 한·미 양국의 이익 균형을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자 서로 윈·윈(Win-Win)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며 “자동차 부문의 일부 양보를 지나치게 침소봉대하고 있는데, 현지 생산이 늘고 있는 우리 자동차 생산이나 관세부품 등을 고려할 때 다른 경쟁국들은 무역전쟁에 앞서가고 있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번 협상은 간도 쓸개도 빼준 굴욕외교의 결정판”이라며 “국내 시장은 활짝 열고, 미국 시장은 빗장을 걸어 잠근 불평등 ‘퍼주기’협상을 단호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협상과 관련해 자유선진당(선진당)도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한·미 FTA 비준 과정에서 여야 간에 첨예한 격돌이 예상된다. 이회창 선진당 대표는 최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결국 정부가 국민에게 사기친 것과 같다”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몰아붙였다.

자유선진당도 강력히 반대
일각에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에 재협상이 전격 타결됨에 따라 한국 정부가 한·미 동맹을 의식해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저명 경제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양국이 합의한 FTA 조건은 지난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때 협상에서는 한국 측이 수용은커녕 논의조차 거부했는데, 한 달 사이에 상황이 급변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한국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FTA 타결이 실패하면 미국과의 동맹관계 전반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우려하는 듯이 보였다”고 보도했다.

양국 실무진은 한·미 FTA 재협상이 마무리됨에 따라 한·미 통상장관의 합의사항을 문서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법률문서화 작업은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마칠 계획이다. 정부는 미국과의 법률문서화 작업을 마치는 대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내년 초 국회에 비준동의를 요구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미 국회에 제출된 한·미 FTA 비준동의안과 별개로 이번에 재협상을 통해 합의된 내용에 대해 별도로 국회 비준동의를 추진할 방침이다. 그래야만 미국 통상법에 따른 행정부의 ‘무역촉진권한(TPA)’이 기존 협정문에 그대로 유지돼 미국 의회의 비준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역촉진권한’이란 미 의회가 가진 대외 통상조약 체결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하고, 의회는 협상 결과의 이행법률안에 대한 찬반 표결만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국제협정은 수정과정 없이 상하 양원에서 과반수 찬성만 받으면 법률로 효력을 갖는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등 야당은 기존에 상임위원회(외교통상통일위)를 통과한 협정문의 내용이 바뀐 만큼 이미 상임위를 통과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은 무효이며, 전체 협정문에 대해 다시 비준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국회 비준동의 이전부터 여야는 법률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기존의 한·미 FTA 협정문은 지난 2007년 6월 30일 서명됐으며, 이 협정문은 2008년 10월에 국회에 제출됐고, 2009년 4월 22일 여야가 난투극을 벌인 끝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서 통과됐다. 한나라당은 당시 외교통상통일위에서 야당 의원들의 회의장 출입을 봉쇄한 채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처리했다. 일반 법안과 달리 국회 법사위를 거치지 않는 이 협정문은 현재 본회의 의결만 남겨둔 상태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한·미 FTA 재협상 협정문이 국회에 제출되면 이번에도 2009년 4월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은 ▲기존 한·미 FTA로는 미 의회의 인준이 힘든 상황이라는 점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추가협상이 없었다는 점 ▲자동차 부문에서 양보했더라도 국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내세워 당론으로 비준동의안을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론이 결정된 상황에서 의원들이 개인 자격으로 드러내놓고 반대하기는 무척 힘들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한국 정부가 미국에 ‘일방적인 밀실 양보’를 하지 않았느냐는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특히 이번 재협상 결과 자동차 부문에서 대폭 양보하는 등 1차 협상과 비교해 협상의 균형이 깨진 만큼 절대로 비준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볼 때 여야간의 1차 전선은 해당 상임위인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서 벌어질 공산이 크다. 양측의 현격한 입장차를 감안하면 한·미 FTA 재협상 협정문 비준안의 상정 자체를 두고부터 여야가 극한대치를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외교통상통일위는 남경필 위원장을 포함한 한나라당 의원이 18명, 야당인 민주당과 선진당은 각각 8명, 2명으로 구성돼 있다.

“기존 협정문 무효” 법률적 공방
한·미 FTA 재협상 협정문이 외교통상통일위에서 공방 끝에 통과되더라도 본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처리돼야 법률적인 효력이 미칠 수 있다. 한·미 FTA 재협상 비준안은 본회의에서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된다. 현재 당별 의석 분포를 보면 한나라당 171석, 민주당 86석, 선진당 16석, 미래희망연대 8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2석, 국민중심연합 1석, 진보신당 1석, 무소속 7석이다. 한나라당 의원이 재적의원(297명)의 과반수를 훨씬 넘는다. 하지만 보수성향의 선진당까지 한·미 FTA 비준안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어, 국회 본회의에서 쉽게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즉 이번 연말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물리력을 동원해 예산처리를 강행했던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 만약 비준안의 상임위 상정이 무산될 경우 박희태 의장으로 하여금 본회의에 직권 상정을 하도록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시민단체도 진보와 보수단체 간에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진보진영의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연합 등에서는 ‘굴욕적 협상’이라고 폄훼하는 반면 바른사회시민회의, 시대정신 등 보수단체에서는 이번 협상으로 한·미간의 우호 증진은 물론 경제에도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비준 여부는 국민 여론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야는 여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기국회가 끝난 후 대대적인 홍보전에 돌입했다.

만약 한·미가 국회에서의 처리 등 국내 절차를 완료하면 양국은 상대국에 이를 통보해야 하며, 통보한 뒤 60일이 지나면 한·미 FTA 협정문은 정식으로 발효된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