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비만은 질병, 사회적 관심과 지원 필요

좋은 생활습관은 어느 정도 비만을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수면의 질도 비만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잠을 늦게 자거나 적게 자면 식욕을 촉진하는 호르몬이 나와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욕구를 높입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 질병은 개인적 불충과 죄에 대한 신의 징벌 또는 업에 의한 것으로 간주되어 질병에 걸린 개인을 단죄하거나 상서롭지 못한 존재로 여기고 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질병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가능해진 후에야, 질병을 개인의 도덕적 책임으로 돌리는 성향이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정상인이 아니라고 간주되는 사람에 대해서 감추고 부끄러워하고 터부시하는 체면치레의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질병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좀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길거리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특별히 산업재해가 적은 것도 아니고 교통사고로 다치는 사람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왜 몸이 불편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로 밖에 나오지 못해서입니다.

우리는 지금 환자이거나 언젠가는 환자가 됩니다. 흡연, 과음, 운동부족 등 본인이 잘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나쁜 습관 없이 나이가 들거나 유전적인 원인으로 그냥 속절없이 환자가 되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생로병사하는 인생의 과정을 겪을 따름입니다. 주변에 환자가 있으면 수군대거나 이상하게 보지 말고 티나지 않게 배려하고 도와주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비만의 시작

그런데 더 억울한 경우가 있습니다. 병인데도 불구하고 질병으로 인정 받지도 못하는 병입니다. 바로 비만입니다. 과거에 비만은 그야말로 개인의 책임이었습니다. 많이 먹고 게으르고 운동을 하지 않아서 비만에 걸렸다는 편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전합니다. 물론 그래서 비만에 걸리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유전적 소인이나 다른 이유에 의해서 비만에 걸리기도 합니다. 어떻게 걸렸든 비만이 되면 본인의 노력으로 살을 빼기가 무척 힘듭니다. 꾸준한 식사관리와 운동을 비롯한 생활 전반에 걸쳐 지속적·체계적으로 관리하여야 하며 필요하면 약물과 수술도 고려해야 할 정도입니다. 개인적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비만은 그 자체가 질병이기도 하지만 다른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면에서도 예방은 물론 치료를 잘해야 하는 병입니다. 비만은 심장병, 당뇨병, 관절염은 물론 암의 위험을 더 높이는데 마치 고지혈증이 심장병과 뇌졸중을 일으키는 것과 유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만은 자기관리의 결여에서 온 질병이므로 본인이 알아서 치료해야지 사회적 지원을 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담배를 피워서 폐암에 걸리면 그 사람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주지 말자는 주장과 같습니다. 담배는 폐암의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인데, 그렇게 경고했음에도 담배를 피워서 폐암에 걸렸으니 동정의 여지가 없다는 시각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과음해서 생긴 지방간이나 간암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만에 대한 이런 시각은 담배에 대한 시각보다 더 오류인데, 자기관리가 태만하지 않아도 비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만의 가능성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산모가 비만하거나 당뇨병이 있으면 정상 산모보다 거대아를 낳을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아기 입장에서 보면 본인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어머니가 비만하면 본인도 비만이 될 가능성이 세 배 정도 높아집니다. 반대의 경우도 진실입니다. 산모가 임신 기간 중에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거나 잘 먹지 못하면 저체중아가 태어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오히려 나중에 비만과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더 높아집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만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나왔나에 따라 나중에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산모가 비만이면 정상분만으로 나온 아이에 비해 제왕절개로 나온 아이들은 나중에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산모가 정상체중이면 정상분만과 제왕절개에 상관없이 아이의 비만 위험도는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 산모가 비만하면서 제왕절개로 아이가 나오면, 정상체중의 어머니가 정상분만으로 낳은 아이에 비해 비만 위험이 5배 정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장내 미생물이 그 이유로 추정됩니다. 정상분만 때 아이는 어머니의 산도를 따라 세상에 나오면서 어머니의 균을 흡입합니다. 반면에 제왕절개로 나온 아이들은 다른 경로로 다른 균을 흡입합니다. 라크노스피라세애(Lachnospiraceae)라는 균인데 비만과 관련되어 있는 균입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이런 균주의 차이가 비만을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합니다. 현재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분야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비만의 가능성은 본인의 자기관리와 무관하게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만을 보는 잘못된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비만의 예방과 관리

비만 예방은 따라서 어머니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보통 임신을 하면 살이 찌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과도한 체중 증가는 막아야 합니다. 문제는 임신 중 다이어트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이 과체중이면 임신 전에 미리 살을 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최근에 나온 연구를 보면, 다행히 임신 중에 철저한 식사와 운동관리를 하면 과도한 체중 증가를 예방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좋은 생활습관은 어느 정도 비만을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비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식사를 빨리 합니다. 식사를 빨리 하면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이미 많은 양을 먹게 되고, 인슐린 반응이 빠르고 과장되게 나오기 때문에 살이 찌기 쉽습니다. 식사 속도는 가장 고쳐지기 어려운 생활습관이기 때문에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면의 질도 비만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잠을 늦게 자거나 적게 자면 식욕을 촉진하는 호르몬이 나와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욕구를 높입니다. 잠을 적게 자면 특히 단 음식이 당기는데 결과적으로 비만과 당뇨병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줍니다. 혈당이 조절이 안 되거나 살이 쪄서 온 환자들을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잠을 못 잔 사람이 많습니다.

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

식사의 내용도 중요합니다. 식품 가공 기술이 너무 발달해서 작은 크기의 식품이 의외로 칼로리가 아주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공식품 앞에서는 우리의 눈과 직감은 그렇게 정확하지 않습니다. 꼭 비만이 아니더라도 건강을 유지하려면 열량이 많은 음식을 피하고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저탄수화물이 좋다, 저지방이 좋다는 논쟁도 있지만, 핵심은 영양소의 비율이 아니라 음식의 내용과 전체 열량입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당장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더 심한 요요현상을 가지고 옵니다. 물론 아무리 좋은 방법을 써도 정상 식사로 돌아오게 되면 약간의 체중 증가는 있지만, 심한 요요는 좋지 않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다이어트는 그 사람에게 지속 가능하고, 내용적으로 건강한 식사여야 하며, 되도록 적게 먹는 것입니다. 생활습관 교정으로 조절이 되지 않는 고도비만의 경우 약물을 복용하기도 하고 생명에 위협이 되는 초고도비만의 경우 수술을 권유하기도 합니다. 다행히 보건당국이 비만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인정해 조만간 비만인들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의학적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

<조홍근 연세조홍근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