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신이 되기는 어렵다

현실을 향한 분노, 작품으로 외치다

어슐러 K. 르 귄은 SF를 ‘비유의 문학’, 레이 브래드버리는 ‘사회학적 연구’라 했다. 과학소설이 다 그런 건 아니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리될 수 있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장편 <신이 되기는 어렵다>(1964)의 예에서 보듯이.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장편 <신이 되기는 어렵다> 표지 / 현대문학

인류를 빼닮은 휴머노이드들이 사는 외계행성에 지구의 역사연구 요원들이 잠입한다. 목적은 두가지다. 하나는 외계사회를 있는 그대로 관찰·연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유럽 중세사회 수준인 해당 문명을 가급적 빨리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게 돕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회는 발전은커녕 계속 악수만 두며 퇴행을 거듭한다. 그 결과 민초의 삶은 갈수록 고달프고 인권은 휴짓조각만도 못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근본 원인은 무지몽매한 민중이 깨어날 생각이 없어서다. 귀족과 군벌, 사제계급은 일반 백성을 개돼지 취급하고 최고지도부는 쿠데타와 정적 암살을 밥 먹듯 한다. 이 네가지 세력은 서로 결탁과 반목을 거듭하지만,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는 데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한통속이다. 그럼에도 이 행성 주민들은 불의에 맞서기보다 노예 신분으로 떨어진 지 수천년이 되도록 체념에 길든 인도의 수드라 계급처럼 그저 전전긍긍할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악몽은 예서 끝이 아니다.

소설 제목은 신으로 보일 만큼 월등히 앞선 문명을 지닌 이들이라도 무지한 민중을 계몽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소설 속 비밀요원들은 공산주의가 지구 전체의 운영 이데올로기가 된 첨단과학문명 기반의 준유토피아 사회에서 왔다. 이반 예프레모프의 장편 <안드로메다 성운>(1957)에 나오는 이상주의적 공산사회에서 파견 나온 셈이다. <안드로메다 성운>의 주요 내용이 성간문명탐사이니 <신이 되기는 어렵다>는 맥락상 속편으로 봐도 좋겠다.

예프레모프가 당시 소련 정부의 덕을 봤으리라 지레짐작한다면 오산이다. 실은 정반대였으니까. <안드로메다 성운>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골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레닌주의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예프레모프의 미래공산사회는 현실공산주의 체제와 딴판인데다 공산당의 이른바 ‘현명한’ 지도력 묘사가 단 한군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 신세계를 수립하는 데 공산당이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일체 언급하지 않은데다 당시 소비에트 문학의 책무였던 공산당 지도자들 찬미와 영웅화마저 빠졌다는 비판을 들으며 결국

<안드로메다 성운>은 판금조치를 당한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는 바로 이런 현실에 분노한 형제작가들이 당대 소비에트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작품이었다.

장르물 전성시대

스트루가츠키 형제 스스로 밝혔듯 이들이 처음부터 체제비판적이진 않았다. 소비에트 정부가 작가들을 사회적 사실주의에 얽어매고 기관의 나팔수로 전락시키려는 작태를 반복하자 어떤 식으로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느꼈던 듯하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는 이로부터 몇년 후 예프레모프가 발표한 <황소의 시간>(1968)과도 공통분모가 많다. 둘 다 지구인들이 먼 외계행성에 가서 그곳 문명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안드로메다 성운>에 이어 <황소의 시간>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자 당 중앙위 정치국의 M. 수슬로프가 이 작품의 탄핵안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KGB 수장 Y. 안드로포프의 사인도 들어 있었다. 권력은 끝없이 더 많은 권력을 탐하고 민중은 들러리보다 못한 신세…. <신이 되기는 어렵다>에는 이런 현실을 향한 분노가 배어 있다.

<고장원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