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프리뷰]라스트 씬-떠나보내야 하는 것에 대한 기록

제목 라스트 씬(Last Scene)

제작연도 2018

제작국 한국

러닝타임 90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박배일

개봉 2019년 12월 12일

등급 전체관람가

(주)시네마달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작품으로 언급되는 영화 중 한 편이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88년작 <시네마 천국>이다. 이탈리아의 소도시의 극장 ‘시네마 천국’의 흥망성쇠는 단순히 한 지역 안에서의 흥행산업의 역사를 넘어 이에 엮인 마을 사람들의 개인사로 더 큰 의미를 담아냈다.

‘나 영화 좀 봤던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각자만의 극장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과거만 해도 서울에서는 개봉하는 신작을 보기 위해서는 사대문 안에 집중된 소위 개봉관까지 찾아가야 했다. 그래서 어느 동네나 재개봉관 또는 동시상영관이 있게 마련이었는데 지역에 따라 최소한 한 개, 많은 곳은 서너 개의 극장들이 성업한 곳도 있었다.

장내에 불이 꺼지고 스크린이 밝아지기까지의 불과 1분도 되지 않는 잠깐의 어둠과 정적은 일종의 의식에 참여하는 경건함과 다르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되면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2시간 동안의 여행은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다.

몇몇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멀티플렉스 극장과 OTT 서비스의 비약적 발전은 갈수록 영화를 만나는 방법을 쉽고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매체 자체의 가치는 하락시켰다. 영화는 더 이상 경건하거나 신성한 대상이 아니다.

<라스트 씬>은 과거 부산을 대표하는 독립예술영화관이었던 ‘국도예술관’의 마지막 몇 개월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2004년 개관한 국도예술관은 거듭된 운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2018년 1월 31일 결국 폐관했다. 티켓을 직접 출력, 재단해 만들고 기념품 배지도 하나하나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드는 이곳은 운영하는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고 한 번쯤 찾아왔던 사람들이라면 그 자체가 추억이 될 수밖에 없는 곳이 분명해 보인다.

여유와 사색이 넘쳐나는 기록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어둠 속 불빛에 반짝이는 먼지들의 이미지처럼 영화는 마지막까지 섬세하지만 한 발짝 거리를 둔 시선을 유지해 나간다.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 풍경이나 인물들의 동선도 꽤 오랫동안 관조하며 바라보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의 풍경들을 크나큰 애정과 특별한 가치를 담아 재현해낸다. 이제는 DCP(디지털 마스터링된 상영용 영화 파일)가 일반화되어 ‘차르르르’ 소리를 내던 필름 릴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라스트 씬>에 등장하는 극장들 속에는 아직 영사기에 필름이 돌아간다.

영화는 주제를 억지로 드러낸다거나 문제의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흘러가는 풍경들이 주를 이루고 중간중간 관련된 사람들의 소소한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기억하는 장소의 의미를 다시 부여한다. 아직은 영화란 매체에 대한 ‘신성’이 남아 있던 그 공간은 비록 낡고 협소하지만 인간적 유대와 낭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영화 속에는 부산뿐 아니라 서울의 인디스페이스·아트시네마, 강릉의 신영극장, 광주의 광주극장 등에 아직 남아 운영되고 있던 작은 극장들의 풍경들도 사이사이 등장한다. 기획·제작·배급의 전 과정이 몇몇 대기업들의 욕심에 의해 진행되고 통제되는 지금의 영화시장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런 곳들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멸종위기의 동물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위태롭게 만든다.

영화광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뇌병변 장애를 가진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나비와 바다>(2011),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밀양 아리랑>(2014), 사드 배치와 지역민들의 갈등을 그린 <소성리>(2017) 등 사회성 있는 독립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발표해온 박배일 감독에게도 국도예술관은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격양되지 않은 차분하고 따뜻한 이별의 과정을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영화의 시작, 평범한 동네 주택가처럼 보이는 골목 안 극장으로 직원이 바쁘게 달려와 문을 연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젊은 두 여학생이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 시작부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 작품에서 어디까지가 연출이고 어디까지가 날것의 기록일까? 대충 짐작은 되지만 별로 확인하고 싶지도 중요할 것 같지도 않다. 어차피 추억이란 곧이곧대로 진실만은 아니지 않은가. 시간은 그렇게 추억이란 이름의 아름다운 기억만을 우리에게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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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라스트 씬>은 여전히 자신만의 극장과 그곳의 추억을 가슴 한편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영화광들을 위한 어쩌면 마지막 추억이자 그래서 고귀하고 따뜻한 위로가 될 만한 작품이다. 더불어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것들이야말로 정의와 진실의 가치가 상실된 혼란스러운 세상을 그나마 지탱해내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추억 속의 극장 씨네하우스

<모던 타임즈>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필자에게도 추억 속의 극장이 있다.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던 학생 때는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한 손에는 어머니에게 받은 입장료를, 다른 손에는 한 살 어린 동생의 손을 이끌고 동네 동시상영관을 찾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 평소 관심 있던 작품들을 함께 상영하는 날은 전날 밤부터 잠을 설쳤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용돈도 여유가 생기고 1980년대 후반 이후 강남 쪽에도 개봉관이 생기면서 강남 도산대로의 ‘씨네하우스’나 신사동 사거리의 ‘브로드웨이’, 영동 사거리의 ‘다모아’ 극장 등을 자주 찾았다.

다모아 극장은 이후 하명중 감독이 인수해 뤼미에르 극장으로 꽤 오랫동안 운영했다. 지금이야 소위 ‘굿즈’라고 통칭되는 영화들과 관련된 파생상품들이 넘쳐나지만 당시만 해도 영화에 관한 추억을 소장할 수 있는 것은 극장에서 배포하는 전단이 유일한 때였기 때문에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전단을 스크랩하고 넘겨보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개인적으로 씨네하우스는 많은 추억이 어려 있는 극장이다. 196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진우 감독의 우진필름이 운영했던 이곳은 당시에는 상당히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 시설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극장 천장에서 오르내리던 거대한 샹들리에의 위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상영작도 직접 수입해 배급한 경우가 꽤 됐다. <모던 타임즈>의 성공을 시작으로 찰리 채플린의 고전영화 시리즈를 꾸준히 개봉했던 당시에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유럽 흥행작을 꾸준히 수입해 개봉했다. 이런 경로로 보게 된 <시라노>나 <하얀 면사포> 같은 영화들은 지금도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히 기억나는 작품들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