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마세 모토로우의 <데모크라티아>

다수의 민중에 의한 통치는 항상 옳은가

3000명의 유저는 제노비스 신드롬(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줄어드는 현상)을 겪듯 무책임한 결정을 반복하고, 의견이 채택되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때 그 의견을 낸 유저를 비난하기 바쁘다.

마세 모토로우 작가의 만화 <데모크라티아> 한국어판 1권 표지 | 학산문화사

만화는 종종 사회실험의 장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일본 만화 중에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현대사회와 그에 속한 인간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작품들이 자주 등장한다. 상습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을 하나의 섬에 격리하겠다는 <아일랜드>(원제 자살도)나 국가가 국민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완벽한 짝을 찾아준다면 가족이 성립될 것인지 묻는 <사랑과 거짓말>, 일부다처제로 결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하레혼> 같은 연출이 그것이다.

이 방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는 마세 모토로우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변신>을 각색한 <헤드>는 뇌의 2분의 1을 이식받은 주인공을 통해 철학의 오래된 주제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고민했고, 국가가 1000명 중 한 명을 무작위로 죽게 만들어 국가 생산성을 향상한다는 설정의 <이키가미>는 국가와 국민, 죽음에 대해 질문했다. 마세 모토로우의 이런 관심과 실험은 얼마 전 완결된 <데모크라티아>에서도 여전하다.

만화 <데모크라티아>는 온라인으로 연결된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행동을 조작하는 여성형 안드로이드 ‘마이’가 주인공이다. 마이는 집단지성이 모이면 매순간 최상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고, 그렇게 궁극의 로봇(혹은 인간)이 탄생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아래 만들어졌다. 비밀리에 선정된 3000명의 유저들은 모든 상황에서 의견을 낼 수 있고, 그 중 가장 많은 의견 셋과 독창적인 의견 둘을 다시 다수결에 부친다. 핵심은 유저끼리 채팅을 통한 토론도 가능하고 소수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장치까지 언뜻 완벽한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보이는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성공적일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데모크라티아>는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

예상대로 마이는 문제에 부딪힌다.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외형으로 성폭행의 위험에 노출되고,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유저들의 요구로 좀 더 복잡한 상황이 진행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이는 폭력의 종착지에 다가가려고 한다. 물론 마이가 스스로 행동했을 리 없다. 3000명의 유저는 제노비스 신드롬(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줄어드는 현상)을 겪듯 무책임한 결정을 반복하고, 의견이 채택되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때 그 의견을 낸 유저를 비난하기 바쁘다.

이것은 단지 만화일 뿐일까. <데모크라티아>는 우리가 겪었던 사건의 회고이자, 겪고 있는 많은 사건의 복선이다. 우리는 다수결로 선택한 결정들이 잘못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가까이는 지난 촛불집회가 그것에 대한 반성이자 엄벌이었다. 또한 우리는 다수의 이익을 이유로 소수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비용을 들여 복지를 하는 것이 낭비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고,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한 차별방지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 사이 다문화가정 중학생이 집단폭행 끝에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소수자 차별 관련기사에서 익명으로 써내려간 혐오 댓글을 발견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만화로 본 세상

‘데모크라티아’는 민주주의를 뜻하는 ‘Democracy’의 어원으로, 다수와 민중을 뜻하는 그리스어 데모스와 권력과 통치를 뜻하는 크라티아를 합친 말이다. 하지만 다수의 민중에 의한 통치가 항상 옳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심하고 노력해야 한다. <데모크라티아>의 마지막에서 작가는 다시 한 번 인간의 선의를 응원한다. 잔혹한 현실에도 희망은 있을 거라는.

<황순욱 초영세 만화 플랫폼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