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아름다운 어둠>-숲 속 요정들의 욕망과 음모, 배신

요정들은 오로르를 중심으로 잘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결의 균열이 존재한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요정들은 독자들이 기대하는 아름답고 합리적인 ‘작은 공동체’에 균열을 낸다.

페이지를 열면 아름다운 숲과 만난다. 칸과 페이지에서 펼쳐지는 숲의 풍광은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잡아낸다. 여러 빛이 통과하는 숲의 가장 아래에 요정들이 산다. <아름다운 어둠>은 숲에 사는 요정들의 이야기를 수채로 표현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구나 아름다운 동화를 떠올린다. 동화? 게다가 아름다운? 글쎄…. 머뭇거리게 된다. <아름다운 어둠>에는 예상치 못한 잔인함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요정과 고어(gore)가 함께 한다. 요정이 나오는 동화인데 왜 잔인하다는 거야?

동화가 아닌 만화로 재해석한 ‘요정담’
그래서 고쳐 말하자. 요정들이 나오지만 동화는 아니다. 일단 용어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서구의 요정담(fairy tale)이나 메르헨(Maerchen)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수입되면서 ‘동화’라 번역됐다. 서구 요정담은 16세기 이탈리아 작가 스트라파롤라(Straparola)를 시작으로 바질레(G. Nasile), 페로(C. Perrault), 그림형제(Brother Grimm), 안데르센(H.C. Andersen) 등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는 그들의 몇몇 작품들이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 각색돼 소개되었지만, 애초에 작가들은 어린이를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안데르센이 쓴 168편의 이야기 가운데서 ‘어린이들을 위한’ 요정담으로 씌어진 이야기는 1835년부터 1842년까지 출간된 28편에 불과하다.”(김경언, ‘뒤엉킨 용어의 실타래:동화, 요정담, 메르헨, 옛이야기의 경계선’, <창비어린이 4호>, 2006) <아름다운 어둠>은 동화가 아니라 새로 창작한 ‘요정담’이다. 과하다 싶게 요정담이 동화가 아니라고 설명하는 까닭은 요정을 말하면 순차적으로 동화와 어린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태여 ‘어른을 위한’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요정담은 환상적 존재인 요정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이고, <아름다운 어둠>은 요정이 등장하는 만화다. 그러니 <아름다운 요정>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만화로 재해석한 요정담(fairy tale)이다.

파비앵 벨만과 케라스코에트의 요정담 만화 <아름다운 어둠>의 한 장면. / 북스토리제공

표지에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 밑에 간략하게 묘사한 요정(우리의 주인공) 오로르가 있다. 마치 ‘잠자는 숲속의 미녀’나 ‘마루 밑 바로우어즈’(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의 원작)의 한 장면인 듯 보인다. 첫 장을 펴면 고운 원피스를 차려입은 오로르가 남자친구 엑토르를 만나는 시퀀스가 나온다. 집사역을 하는 플랭이 초콜릿 음료를 들고 온다. 둘이 키스를 하려는 순간, 사방이 흘러내린다. 한참 도망가던 오로르는 구멍을 찾아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여기서부터 낯선 장면이 시작된다. 죽은 사람의 눈과 코에서 여러 요정들이 빠져나오는 것. 탈출 시퀀스의 마지막 한 장은 숲 속에 죽어 있는 소녀와 소녀에게서 도망치는 요정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죽은 소녀의 몸에서 빠져나온 요정들은 숲에 흩어진다. 요정들을 찾아나선 오로르는 가위를 들고 비스킷을 먹고 있는 붉은 원피스 여인을 본다. 오로르는 순진한 얼굴로 “…되, 되게 맛있어 보인다. 그거.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아. 간밤에 지독한 일을 겪었거든!”이라며 주절주절 말을 꺼낸다. 붉은 원피스 여인은 “배고프면 먹으면 되잖아”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오로르는 요정들에게 똑같이 찾은 비스킷을 나눠준다. 익숙한 소녀의 몸 안에서 낯선 숲으로 떨어진 요정들을 위해 오로르는 다른 요정들을 도와주는 착한 소녀역을 담당한다. 비스킷을 나눠주다 엑토르를 찾아 나선 오로르. 어느 요정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처럼 보이는 엑토르는 멋진 칼을 옆에 차고, 달콤한 이야기를 오로르에게 건낸다. “당신이 내 걱정을 했어요?” 한쪽이 소란스럽다. 오로르는 “여기선 내가 나서야 된다”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간다. 벌레를 치워주고, 파일로 텐트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오로르는 먹을 걸 찾기 위해 생쥐와 대화를 나눈다. 생쥐에게 딸기를 얻어 요정들에게 나눠준다. 아침이 되면 이슬을 모아 식수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다 사람들을 피해 숨어 있는 티모테를 만나 “우리 쪽에 와서 같이 살자”고 권한다.

<아름다운 어둠> 표지 / 북스토리제공

겉으론 평온, 제각각의 요정들
요정들은 오로르를 중심으로 잘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결의 균열이 존재한다. 엑토르는 오로르에게 달콤한 말을 하며 사냥을 하겠다고 무리를 모아 돌아다니지만, 허풍이다. 집사처럼 오로르를 도와주는 플랭은 의뭉한 속내를 조금씩 내비친다. 오로르가 구해준 젤리는 패거리를 모아 자신을 꾸미기 바쁘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요정들은 독자들이 기대하는 아름답고 합리적인 ‘작은 공동체’에 균열을 낸다. 그들은 제각각이고, 나름의 욕망을 위해 움직이며, 그러다 예기치 않은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여러 채의 집을 짓고, 조금은 생활이 안정됐다고 생각한 오로르는 숲 속 동물들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젤리는 파티에 온 티모테의 콤플렉스를 자극하고, 살해한다. 플랭, 엑토르, 테모테, 젤리 등이 오지 않아 파티를 시작하지 못하고 기다리다 동물들의 공격에 파티는 엉망이 되어버린다. 다음날 젤리와 액토르의 결혼 파티가 화려하게 열린다.

착한 소녀이기를 원했던 오로르는 요정들이 잡아온 생쥐에게 화를 푼다. 생쥐는 예전에 오로르에게 딸기를 주기도 했었지만, 요정들의 말만 듣고 “네가 내 파티를 망쳤어!”라고 화를 낸다. 분노한 오로르는 생쥐의 눈을 후벼판다. 생쥐는 요정들의 먹이가 되고, 이 사건 이후 오로르는 착한 소녀의 허상을 걷어낸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 맘 속으로 흠모하던 붉은 원피스 여인 제인과 만난다. 제인은 뭔가를 만들며 혼자 사는 남자의 오두막에 숨어서 살고 있다. 제인은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오로르는 쉽게 먹을 걸 훔쳐올 수 있는 그곳이 좋다. 마지막 이야기는 독자를 위해 남겨 놓는다.

만화로 본 세상

중간쯤 보다 보면, 죽은 소녀의 시신에 사는 요정이 꾸는 꿈이 나온다. 소녀가 숲에 들어와 잠을 자다 일어난다. 그리고 커다란 비명. 시체 속 요정은 “무서운 꿈”을 꿨다고 말한다. 무서운 꿈, 비명은 소녀의 죽음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어둠>은 친절하지 않다.

<아름다운 어둠>은 경이로운 요소와 사건들이 펼쳐지는 요정담을 통해 욕망, 음모, 배신, 복수를 그린다. 공동체의 꿈이 깨진 뒤 오로르는 생쥐 가죽을 두르고 전사로 변한다.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많은 해석의 여지를 독자에게 던진다. 원래 요정담과 메르헨이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