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문과와 이과의 벽을 허물자

필자는 2014년 가을학기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에 진학한다. 최근에는 미적분 등의 수학을 공부하면서, 박사과정에서 강의를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정치학 전공자가 수학을 공부한다고 이야기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미국의 사회과학계열 대학원에서 수학·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이 중요해진 지는 오래 됐다.

달리 말하면 학계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할 줄 아는 건 중요한 경쟁력이다. 수학을 이용해 복잡한 데이터를 명쾌하게 해석할 수 있고, 컴퓨터를 이용해 그러한 분석을 더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다면, 다른 연구자에 비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하버드대 정치학과의 게리 킹 교수는 하버드 전체에서도 22명밖에 되지 않는 ‘대학 교수’(University Professor) 직함을 갖고 있는 교수 중 하나인데, 뛰어난 통계적 분석력과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기술로 유명하다. 반도체 기술이 해를 거듭할수록 비용은 절감되고 성능은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처럼, 학계에서도 수학과 컴퓨터를 활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줄어드는 데 비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물론 사회과학도가 어설픈 사회‘공학’도가 되는 건 피해야 한다. 경제는, 정치는, 사회는 물리학 같은 부분도 있지만, 생물학 같은 부분도 있다. 정확한 수리적 모델과 계량화된 데이터에 근거해서 분석하고 예측하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변한 것이 경제고, 정치고, 사회다. 대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를 한다는 건 결국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일반화시킬 수 있는 패턴을 찾아보겠다는 것이지만, 그건 쉽지 않은 야심이다.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들 중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는 여전히 철학과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정보올림피아드 경시대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갈수록 높아지는 기계의 생산성으로 인하여 그런 기계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 간의 격차가 커질 것임은 분명하다. 현재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생각해 보라.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과거 약 250년간의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 대한 데이터를 기초로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장을 연 것처럼, 남보다 볼 수 있는 데이터의 범위가 넓고, 깊이가 깊으면,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의 넓이와 깊이도 달라진다.

이것은 대학원만의, 사회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이 싫으면 문과로 가고, 대학에 들어오면 수학·자연과학·공학의 세계와는 담을 쌓는 분위기는 바뀌어야 한다. 이제 IT산업은 IT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도 자동차도 모두 소프트웨어가 들어가고, 컴퓨터로 조종되고, 관리된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것보다 기계와 기계가 데이터를 주고 받는 게 더 많아지고 있다. 이렇듯 모든 비즈니스가 디지털인 시대에 수학과 과학과 기술을 모른다는 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인문학의 전통이란 문과와 이과를 엄격하게 가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서양 철학의 근본인 플라톤은 아카데미아의 입학 조건으로 기하학을 내세웠다. 그리스 철학의 본질인 연역적 사고를 배우려면 기하학이 매우 유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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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시대, 문과와 이과의 벽을 허물자. 이과도 사람을 알고, 사회를 알고, 문과도 숫자를 알고, 자연을 알고, 기계를 알자. 문과와 이과의 교차점에 우리가 알지 못하던 더 큰 기회와 능력이 있다.

김재연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