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단말기 보조금 규제, 정말 소비자 보호인가?

한 번 물건을 팔면 매달 물건값의 할부금과 이자를 받고 거기에다 매달 상당한 이용료까지 챙길 수 있는 사업이 있다. 또한 약정기간이라는 게 있어서 약정기간 내에 해지하면 남은 물건값을 다 받아내고 거기에다 많으면 수십만원에 이르는 위약금까지 받아낸다.

더욱이 시장에 업체라야 딱 3개밖에 없고 추가 진입을 정부가 막아주는 독과점 사업이다. 이런 알짜배기 사업이 없다.

그런데 독과점 시장이긴 하지만 시장이 포화상태라 어쩔 수 없이 서로 고객을 뺏어야 한다. 상대가 내 고객을 뺏어 가니 나도 상대의 고객을 뺏어야만 한다.

아, 경쟁하기 싫은데, 이게 업체들이 유일하게 피곤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 걱정할 건 없다. 믿음직한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업체들이 물건을 싸게 팔기 시작하면 금방 정부가 나서서 서로 경쟁하지 말라고 막아준다. 물건을 싸게 파는 게 불법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동통신 3사에 대한 정부의 영업정지 조치에 반대하는 휴대폰 유통상인들이 영업정지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계속 싸게 팔면 정부가 물건을 못 팔게 조치를 한다. 근데 그게 장사를 못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매월 이용료를 챙기기 때문이다.

사실상 물건은 미끼 상품으로 새로운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고 핵심 수익원은 이용료다.

그래서 정부가 영업정지를 내려 경쟁을 못하게 막아주면 업체들은 내심 고맙게 생각한다.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런 이유로 언제나 영업정지를 당하면 이익이 증대되고 주가도 오른다.

와우, 이런 시장이 지구상에 과연 존재할까? 독자 여러분도 알다시피 명백히 존재한다. 바로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이다. 정부가 직접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언어도단이다. 영업정지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보는 이는 바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번호이동을 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은 언락폰(Unlocked phone·통신사에 상관없이 아무 유심이나 끼워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폰) 시장조차 없어 새 휴대폰을 구하기가 아주 힘들고, 설사 구할 수 있다 해도 무척 비싸다.

이처럼 소비자에게 가장 커다란 피해를 주는, 하지만 통신사의 이익이 증대되는 영업정지 제재를 가하면서 어떻게 ‘소비자 보호’를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언어의 힘은 참 대단하다. 정부가 보조금 규제를 논할 때면 항상 ‘불법’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인다. 그래서 언론이나 소비자나 불법 보조금이 문제라는 당연한 인식을 갖게 된다. 일종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처럼 정말 소비자 차별이 문제라면, 소비자가 자신이 구매하는 단말기의 정확한 가격을 인지하고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맞다. 또한 보조금보다 더 큰 문제인 비싼 요금제와 소비자를 속이는 ‘공짜폰’ 상술을 단속하는 게 보다 시급한 일이다.

공짜가 아닌데 공짜인 것처럼 속이는 상술이야말로 명백한 소비자 기만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그런 심각한 문제들은 도외시한 채 보조금 규제에만 목을 매는 건 그 저의를 심히 의심케 한다.

그것은 규제 권력에 대한 유아적 집착이든가, 또는 표면적으로는 소비자 보호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통신사 보호를 위한 일종의 쇼이든가, 그게 아니라면 열심히 일하지만 결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어리석은 관리자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IT업계의 구루인 톰 디마르코의 책에 나오는 나쁜 관리의 제1법칙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나쁜 관리의 제1법칙: 만약 무언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더 많이 하라.”

IT 칼럼 구독

미래부와 방통위는 최근 불법 보조금을 쓰는 유통점의 전산을 차단하고 통신사 CEO를 형사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