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본격적인 음악극<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밤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 테베의 길목을 지키고 있던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답을 맞추지 못한 이들을 그 자리에서 잡아먹었다. 아무도 풀지 못했던 이 수수께끼를 오이디푸스는 단숨에 풀어버리는데, 그의 답은 바로 ‘인간’이었다.

누구도 풀지 못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맞춘 오이디푸스는 인간 중 가장 지혜로운 자로 칭송받으며 테베의 왕위에까지 오르지만,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만다.

연극<더 코러스; 오이디푸스>|LG아트센터 제공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크게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오이디푸스는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알아내는 데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을 동원한다. 그리고 집요한 조사와 탐문 끝에 그토록 찾던 범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까지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자신의 지식이 진정한 지식이 아님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눈을 뜨고도 진실을 보지 못했던 자신의 두 눈을 스스로 찌름으로써 이전의 무지로부터 새로이 ‘눈뜨게’ 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서양 연극사의 첫 장을 여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극의 완벽한 구조와 인물의 비극성 덕분이라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이 던지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사실 연극과 영화, 드라마 등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이야기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이 수수께끼에 답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을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극<더 코러스; 오이디푸스>|LG아트센터 제공

지난 2011년 초연 당시 많은 화제를 모았던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가 LG아트센터 무대 위에 다시 올랐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운명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서재형 연출과 최우정 작곡가의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공연은 크게 두 가지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는데, 첫째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코러스’를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극중 코러스들은 사건의 증인이 되기도 하고 오이디푸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기도 하는 등 객관과 주관을 오가며 극을 이끈다. 또한 이들이 공연 내내 독창, 중창, 혹은 합창으로 부르는 노래들은 그 자체로 극을 진행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이 작품이 본격적인 ‘음악극’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이나 효과가 아니라 코러스들의 노래를 통해 실제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 인생의 갈림길에서”나 “누군가, 그대 운명은” 등 극중 반복되는 가사들은 작품의 주요 모티브를 강조하고, 강렬한 리듬과 멜로디는 장면장면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문화내시경

한편 이러한 코러스와 음악극이란 특징은 극장의 객석을 포기하고 무대 위에 따로 객석을 마련한 공연 형태를 통해 더욱 강조된다. 무대와 객석의 벽을 허물고 서로 마주보게 함으로써 관객들은 스스로 코러스의 일부가 되어 비극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음악 또한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10월 9일부터 20일까지 LG아트센터.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