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원전 안전의 핵심은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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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정보 공개로 국민과의 소통 강조

“국민들의 신뢰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원자력발전은 포기해야 한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캐나다 원자력공사 등에서 원전설계 기술자로 일했다. 그는 불투명한 정보로 만들어진 안전신화를 한국 원전의 핵심 문제로 꼽았다. 이 대표는 자신이 탈핵이나 반핵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원전의 전제조건은 안전이며, 안전의 필요조건은 소통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9월 12일과 19일 경북 경주를 중심으로 규모 5.8, 4.5의 강도 높은 지진이 발생했고, 여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월성원전, 고리원전 등 이 지역에만 16기의 원전이 들어서 있다. 불안을 호소하는 시민들에게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안전하다’고 대답하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9월 20일 이정윤 대표를 만났다.

/ 이상훈 선임기자

/ 이상훈 선임기자

지진 발생 이후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진다. 한수원은 내진설계 등을 예로 들며 괜찮다고 말한다. 인식에 대한 기울기가 크다.
“원전은 기본적으로 안전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안전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 안전의 핵심은 신뢰다. 그리고 안전의 기준은 국민이다. 그런데 현재 한수원은 국민이 아니라 원전안전위원회(원안위)를 기준으로 안전을 생각하는 것 같다. 원안위는 기술조직이 아니라 관료조직이다. 안전에 대한 판단은 기술자가 해야 하는데, 기술자가 작성한 검토보고서를 관료집단인 원안위가 검토하고 승인한다. 그리고 이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어떤 단계를 거쳤으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전혀 소상하게 알리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원전과 관련해 정보공개가 안 돼 불신이 쌓이는 문제가 누적돼 왔다.
“신고리 5·6호기 신규건설 승인만 보더라도 정보공개가 안 됐다. 국민들이 뭐가 위험한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데 그것과 너무 거리가 멀다. 한수원은 불리하면 이야기를 안 하거나 너무 신중하게 정보를 가린다. 원전 건설허가 요건 중 하나인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는 법에서 요구하는 중대사고 영향평가를 하도록 돼 있다. 중대사고가 났을 때 어떤 피해를 주고, 사상자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고, 위험도가 얼마나 높은지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고리 5·6호기 건설 승인과정에서 이 평가가 진행이 안 됐다. 건설 승인을 해주고 일주일 후에 해당 고시를 통과시켰기 때문인데, 이런 부분에서 진실성에 대한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자력 안전과 미래 전문가들이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신고리 5·6호기에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7일 이내 1만6240명이 죽고, 50년 동안 280만명이 방사성 노출로 인한 암 등의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런 것들을 솔직하게 계산을 해서 알리고 이런 정도의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세워야 한다면 원전의 장점이 무엇인지 또 설득해야 한다. 이런 정보가 공개 안 되고 소통이 안 되니까 전문가의 영역이라면서 관료들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불신이 쌓이다 보니 지진이라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불안감이 높다. 원전 내진설계는 어느 수준인가.
“현재 원전 내진설계가 진도 6.5 이상으로 설계돼 있다. 다행히 지금 발생하고 있는 5.0대의 지진이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원전 설계 자체는 보수적으로 한다. 국내 원전은 지반가속도(지진으로 건물이 받는 힘)가 0.1g이 넘으면 수동으로 정지되게 설계돼 있다. 그리고 이런 비상사태가 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사고하중들까지 시나리오에 다 반영해서 설계된다. 예컨대 충격으로 배관이 파단될 경우 발생하는 하중 등도 만약을 대비해서 설계에 다 반영했다. 지진이 왔을 때 다른 비상상황으로 고려했던 문제점들까지 다 포괄해 굉장히 보수적으로 설계를 한 것이다. 그렇지만, 원전은 사고가 나면 굉장히 크게 나기 때문에 늘 상당한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원전은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도록 설계하지만 그래도 일어날 것이라는 전제로 철저하게 안전방재대책을 세워야 한다.”

원전을 운영하는 부분은 어떤가.
“생각보다 허술하다. 그러므로 감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전 설계를 잘했다 하더라도 제작, 설치, 시공, 운영하는 과정에서 놓칠 수 있는 게 많다. 설계를 포함하여 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잘 감시해야 하는데, 문제는 감시까지 한수원에 다 맡겨놓았다는 것이다. 주민들과 한빛원전 안전성 검증단을 만들어 1호기와 6호기를 같이 살펴본 적이 있다.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현장이 철저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 예를 들면 지진이 올 것을 대비해서 기둥을 박아놨는데, 볼트만 있고 너트로 조여 있지 않더라. 주민들과 기술자들이 원전을 제도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한수원은 알아서 하겠다고만 한다. 늘 이런 식이니 주민들이 불안한 것이다. 얼마 전, 신고리 3호기가 시운전 중 정지되면서 하얀 연기(스팀)가 그 주변에 생겼다. SNS에 불안하다는 사진이 도는데도 원안위나 한수원은 국민들에게 브리핑조차 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뒷전이고 모든 사항을 원안위에만 보고하는 것이다.”

원안위의 안전 감시 역할은 어떤가.
“원안위가 이렇게 가면 어떤 필요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나의 이해집단처럼 움직이고 문제가 있어도 이를 은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한빛1호기가 1월 말에 정지됐다. 한국원자력기술원이 조사한 결과를 언론사 기자를 통해 몇 달 뒤에 받았다.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가 작동이 안 됐다고 나오더라. 원전이 멈추면 외부의 물을 순환시켜 원자로를 식히는 것이 불가능하다. 안전상 보조급수펌프가 자동으로 작동해 냉각수를 공급해야 한다.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으면, 고온의 원자로가 냉각되지 않아 핵연료가 녹아내려 방사능이 누출될 수도 있다. 그런데 보고서 대부분은 터빈하고 복수기 사이에 배관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고무패킹이 오래돼 삭아서 정지된 것이므로 패킹을 정기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대처를 하겠다고 대부분 설명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패킹을 정기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대처를 하겠다고 나왔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중대사고를 대처하는 최후의 안전설비인 보조급수펌프 작동 불능과 같이 중요한 내용은 살짝 한 줄만 들어가 있더라. 보조급수펌프는 극한상황에서 최후의 안전설비다. 이것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다. 담당자를 문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은폐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원전은 기본적으로 위험하다. 안전신화에 싸여 있으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경각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꾸준한 소통을 하고, 자료를 공개하고, 얻어맞을 거 얻어맞고, 재발방지하고, 노력하고, 국민들 앞에 제도를 투명하게 객관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원전 감시체계가 어떤가.
“독일처럼 지자체가 직접 감시하는 경우가 있고, 프랑스는 지자체가 직접 감시하지는 않지만 중앙조직을 통해 투명하게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면 지역주민들이 다치니까 지자체장이 직접 감시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미국은 핵규제위원회가 감시를 한다. 이밖에도 미국에는 일반시민단체, 민간조직 등 감시조직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한국은 제도만 미국 것을 본떠 왔을 뿐, 인력도 터무니없이 적고 그 인력마저 국민들과의 소통이 전혀 없다.”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신뢰를 잃어버리면 안전도 설 수 없고, 안전이 설 수 없으면 원전은 포기해야 한다. 결국은 투명하고 객관적인 감시구조가 필요하다. 여야 구별 없이 물론 정치권에서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할지 모르겠지만, 투명하게 가야 한다.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으면 원전은 포기해야 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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