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내진 정보 부실, 내 집은 안전한가

1988~94년 건축물은 5층 이하, 2005년 이전은 2층 이하 내진 설계 미적용

9월 12일 이래 경주 일대 연이은 지진이 시민들의 삶을 흔들어놓고 있다. 자녀의 학교는 안전할까, 건너는 교량이나 타고 다니는 지하철 선로는 튼튼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얼마나 안전할까’ 하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앞서 7월 5일 울산의 리히터 규모 5.0 지진까지 더해 경주의 5.1, 5.8 규모 지진이 모두 저녁 8시33~34분쯤 일어났다. 이 시간대는 다수 가족이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이다. 하물며 잠든 한밤중에 대형 지진이 기습한다면?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안전도 중요하지만 주택의 내진 수준에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주민들 문의가 이어졌다. 정부가 정확한 내진설계 정보를 제공치 못하자 불안감을 키운다. 내진설계 의무화 대상이 아니었던 약 30년 넘은 노후건물이나 저층 주택부터 점검에 나서야 할 때다.

건물의 내진 성능을 알려주는 정보는 지자체별로 다르게 공개돼 있다. 일례로 서울 용산구 이촌동 ㄱ아파트의 내진 성능을 보자.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인터넷 사이트에서 ‘건축물 대장’을 확인할 수 있다. 주구조는 ‘철근콘크리트구조’라고 나올 뿐 내진 성능은 바로 확인이 안 된다. ‘건축물 내진성능 자가점검’이라는 페이지를 따로 찾아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전날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주민이 9월 13일 무너진 담을 치우고 있다. / 경주 | 이석우 기자

속시원한 정보 얻기 힘들어
건물번호나 지번을 넣어야 한다. ‘건물은 내진설계 적용대상 건축물로서, 허가 당시의 건축법 및 구조설계기준에 따라 건설되었다면 내진설계되었습니다’라는 답이 나왔다. 또 ‘허가 당시의 건축법 및 구조설계기준에서 요구하는 내진성능을 만족하고 있다’고 돼 있다. 25층짜리 ㄱ아파트는 2000년 3월 건축허가를 받았다. 건축법 기준을 따르면 규모 5.5~6.5 사이 지진에 견디도록 설계돼 있다고 통용된다. 하지만 실제로 내진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경기도 ‘부동산포털’에는 내진설계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건축정책과 당국자는 “건축허가 시점의 법령을 비교해서 내진설계 대상이 되는 건축물이면 내진 성능이 확보됐다고 본다. 아니면 건축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로 어떻게 건축이 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경주발 지진 여파로 주택의 내진 성능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지만 속시원한 답을 얻기가 어렵다.

내진설계 의무규정은 1988년에 적용됐다. 대상은 6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만㎡ 이상 건축물이었다. 이어 1995년 6층 이상 또는 1만㎡ 이상으로 적용대상을 넓혔다. 2005년에는 3층 이상 또는 1000㎡ 이상으로 더 확대 적용됐다. 2015년 9월부터는 3층 이상 또는 500㎡ 이상 건물로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다. 1988년 내진설계 기준 도입 당시 교량 등 토목은 리히터 규모 6.0 내외, 건축물은 5.5~6.5를 견딜 수 있도록 규정했다.

예컨대 1989년 10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ㄴ아파트의 경우 의무적인 내진설계가 적용됐을 가능성은 낮다. 1988년이라는 기준점은 ‘사용승인’ 시점이 아니라 ‘건축허가’ 시점이기 때문이다. 입주시점에서 소급해 약 3년 전에 허가가 나는 편이다. 오래된 건물의 경우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는 사용승인 날짜만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토교통부는 내년부터 층수 기준을 2층 이상 건물로 내진설계 의무대상을 넓히기로 하고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9월 22일 입법예고했다. 또 내년 1월부터 내진설계가 적용됐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건축물 대장에 표시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16층 또는 연면적 5000㎡ 이상’인 건축물은 내년부터 내진 능력도 공개토록 했다.

미래 기준 강화보다 시급한 사안은 ‘위험군’일 수 있는 1988년 이전에 건축허가된 건물이나 1988~94년 사이 허가된 5층 이하 건물, 1995~2005년 허가된 2층 이하 건물의 내진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피해규모를 결정하는 데는 S파의 크기가 중요한데, 이는 또한 지질 조건에 따라 차이가 난다. 암반 같은 지질에서는 S파가 작아 피해도 줄어든다. 연약한 지반에서는 피해가 커지게 된다. 지반이 액체처럼 흔들리는 ‘액상화 현상’이 일어나면 피해가 커지게 된다. 강가나 바닷가, 갯벌 간척지 등 지반이 약한 곳은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전국의 단층대는 물론 지반 특성별 조사가 요구된다. 내진설계 기준도 지층·지반 특성에 맞춰 지역별로 차이를 두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내진설계가 돼 있더라도 실제로 어느 정도 지진에 견딜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건축허가 때 ‘구조안전 및 내진설계 확인서’를 제출하지만 그대로 따랐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건축법에 따라 건축구조기술사가 지반 및 기초, 지진응답계수, 밑면 전단력, 건물 구조 등을 적어내는 것이다.

지진응답계수(Cs)의 경우 X방향, Y방향으로 나뉜다. X방향 지진응답계수가 0.037(Csx=0.037)이라면 가로 방향으로 아파트 무게의 3.7% 힘을 견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1000톤 건물이라면 옆으로 37톤 힘으로 밀려도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진도나 리히터 규모 얼마에도 견딘다고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지진공학에서는 ‘리히터 규모’ 자체보다 실제 흔들림을 가리키는 ‘중력가속도(g)’라는 개념을 쓴다. 예컨대 중력가속도가 0.1g이라면 중력의 10%만큼 옆으로 미는 힘(횡력)이 가해졌다는 뜻이다. 무게 1000톤짜리 건물이라면 100톤의 힘으로 흔들린다는 셈이다. 국내는 대체로 0.15g까지 통용되고 일본 등 해외는 0.3g까지도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유영찬 건축도시연구소장은 “일본은 1940년대 0.1g을 기본으로 내진설계를 시작했고, 현재 0.2g이 기본이며 일부 0.3g까지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0.3g까지 설계된다”고 밝혔다. 국내는 서울 등지 대다수인 1구역이 0.14g, 제주·강원 북부·전남 남서부 같은 2구역은 0.09g까지 내진설계가 된다.

기준 강화보다 노후건물 확인 먼저
건축법에 따라 용도와 규모별로 4등급으로 나눠 ‘중요도 계수’도 적용한다. 특급에는 중력가속도(g)에 1.5배까지 더하고, 학교, 아파트 같은 1급 건물에는 1.2배를 더한다.

현재 건축법 제60조의 내진등급 기준은 특·1·2로 나뉜다. 특등급은 연면적 1000㎡ 이상 위험물 저장 및 처리시설, 국가 또는 지자체 청사·외국공관·소방서·발전소·방송국·전신전화국과 종합병원, 수술·응급시설이 있는 병원이다. 1등급은 1000㎡ 미만인 위의 주요 시설물과 복지시설, 5층 이상 숙박시설, 오피스텔, 기숙사, 아파트, 학교 등이 해당된다. 나머지 일반 건물과 창고 등이 2등급이다.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대지진에 대비해 모든 건물에 최고 수준의 내진설계를 할지는 선택이 필요하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 관계자는 “내진설계는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수준과 지역 특성에 맞게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층대가 7개 이상 몰린 경주~울산~부산 일대나 인근 대구 등 주요 도시부터 내진설계를 강화하거나 건축 당시 감리를 엄격히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기둥이나 벽체 등을 설계하고 시공할 때 ‘구조심의’나 ‘구조감리’를 더 엄격히 할 것이 요구된다. 가능한 한 시공현장에 상주하며 구조감리를 해야 바람직하지만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이원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1988년 이후 허가된 6층 이상 아파트는 원칙상 지진에 안전하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실제 구조설계와 시공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는 따져봐야 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창문이 많은 건물의 경우 원래 기둥의 길이 중에서 창문이 난 폭만큼만 실제 기둥으로서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를 ‘단주’라고 일컫는다. 즉 실제로 역할하는 기둥 길이는 짧다는 뜻이다. 지진이 오면 작아진 기둥이 힘을 크게 받기 때문에 X자 형태로 부서지는 ‘전단파괴’ 현상이 벌어진다. 이런 단주 기둥이라면 더 튼튼하게 설계, 시공할 필요가 있다.

2015년 말 기준 전국 건축물 698만6913동 중 내진 확보가 된 건물은 47만5335동, 6.8%뿐이다. 학교 내진율은 22.6%에 그친다. 중소 규모의 건축물 가운데 내진설계가 반영된 건물은 극소수다. 부산(25.8%), 대구(27.2%), 서울(27.2%)은 내진율이 가장 저조한 곳에 속한다.

1995년 일본 한신 대지진(왼쪽)과 1999년 타이완 대지진 당시의 전단파괴 현상. / 이원호 광운대 교수 제공

전국 내진설계 정보 파악 공개해야
국민안전처가 올 6~7월 실시한 지진재해대응시스템 시뮬레이션 결과, 남북단층이 있는 중랑교를 ‘진앙지’로 설정해 피해를 예측해 보니 리히터 규모 6.0 지진의 경우 1433명이 숨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규모 6.5 지진이 일어나면 사망자는 1만2778명으로 10배가량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국민안전처로부터 받은 지진재해대응시스템 시뮬레이션 자료에서도 2014년 5월 13일 오후 1시55분 대구 동구 효목동에서 규모 6.5 지진이 발생했을 때를 가정해 보니 대구에서만 건물 773동이 붕괴돼 2419명의 사망자와 2만2627명의 부상자가 나올 것으로 추산됐다. 경북도 사망자 65명, 부상자 745명이 예상됐다.

경주 지진을 계기로 정부가 지진 취약지역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주택의 내진설계 정보를 파악해 공개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진 위험도와 비용부담 등을 감안해 내진설계를 어느 만큼 강화할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그에 앞서 효과적인 대피체계를 마련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아파트 층수 선호도 달라진다

어떤 건물이 내진에 더 잘 견디거나 취약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5층 이하 저층 건물이 더 위험하다고들 말한다.

이유는 두 갈래로 나뉜다. 앞서 본 대로 건축법에 따라 저층 건물은 내진설계에서 제외돼온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이유다. 낮은 건물이 지진 진동에 더 잘 흔들린다.

이는 상식과는 어긋나 보인다. 이번 경주, 포항, 부산 일대에서 경험했듯 고층 건물이 많이 흔들렸다. 포항의 직장인 전모씨(56)는 5.1 지진이 왔을 때 23층 아파트 집에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지진에 어항의 물이나 전등이 많이 흔들려서 놀랐다”고 했다. 잠시 뒤 34층 지인의 집에 올라갔다가 5.8 지진을 맞았다. 그는 “진도도 더 큰 데다 층이 높아서 그런지 공포감을 느낄 만큼 흔들렸다. 45층 쪽은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처럼 고층 건물일수록 많이 흔들려 위험할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다.

저층부가 조금 움직일 때 고층부가 더 크게 움직이는 건 물리적으로 당연한 이치다. 아파트 10층이 1㎝ 흔들린다면 50층은 6∼7㎝까지 흔들릴 수 있다. 유영찬 건축도시연구소장은 “큰 진동이 왔는데 안 움직이고 고정돼 있으면 부러지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며 “고층 건물은 평소에는 지진보다는 바람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는다. 어떤 이들은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라고 밝혔다.

오히려 문제는 저층 건물이다. 1999년 타이완 지진 때 피해건물의 약 95%가 5층 이하였다. 이원호 광운대 교수는 “저층 건물일수록 지진파의 주기와 비슷하게 빠르게 흔들려 에너지가 그만큼 크게 전달되기 때문에 충격이 커진다”고 밝혔다. 지진파는 대체로 흔들리는 주기가 0.2~0.5초 정도로 짧은 ‘단주기파’가 많다. 그런데 이 주기가 2~4층 건물의 흔들림 주기와 비슷하다. 이 교수는 “지진파의 단주기파와 저층 건물이 흔들리는 주기가 맞아떨어지는 ‘공진현상’이 나타나 진동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작은 움직임이라도 주파수가 맞으면 몇 배나 증폭된 울림을 만들어낸다.

장주기파 지진에도 대비해야 한다. 1985년 멕시코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처럼 장주기파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장주기파는 지진해일처럼 피해를 멀리까지 미치고 진동 주기가 길어 고층 건물에 영향을 더 크게 미치게 된다. 장주기파 지진이 고층 아파트의 흔들리는 주기와 맞아떨어지면 공진현상이 생길 수 있다.

시민들은 지진의 충격으로 주택을 고르는 기준도 바꿀 태세다. 그동안은 시원한 전망이 나오는 20~30층대 초고층을 선호했다. 그러나 “지진의 흔들림이 상대적으로 큰 데다 유사시 대피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 고층 대신 저층을 다시 보게 됐다”는 시민들 반응이 많다. 9·12 경주 지진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