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의 사회]IT분야 어김없이 반복되는 ‘한국형’ 타령

부질없이 혈세만 낭비한 채 매번 실패로 끝나면서도 IT 분야에서 각종 ‘한국형’ 사업들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가중심적·정부주도적 발상 때문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국형’ 타령이 등장했다. 세계적으로 열풍이 일고 있는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를 두고서 말이다. 이미 5년 전에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게임이 나왔으나 흥행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발굴되더니 곧이어 국내 증강현실 업체가 한국형 포켓몬 고인 ‘뽀로로 고’라는 게임을 개발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어 ‘게임문화진흥계획안’을 심의 의결했다. 심야 시간대에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접속을 제한하여 게이머들의 원성을 사왔던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게임 마이스터고 설립 등이 주요 내용이다. 교육부는 2018년부터 도입되는 디지털 교과서에 증강현실 기술을 접목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동안 게임을 청소년들의 영혼을 병들게 만드는 사회악으로 간주하여 규제 정책으로만 일관하던 정부의 태도가 이렇게 갑자기 180도로 바뀐 것이다. 이 모두가 포켓몬 고 게임이 만들어낸 놀라운 효과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들이 불과 1주일 사이에 전광석화처럼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가상현실 게임 포켓몬 고에 빠진 세계. 7월 13일 (현지시간) 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주 하를럼의 한 시장에서 포켓몬 고 게임을 실행한 모습. / AFP연합뉴스

낯설지 않는 정부의 호들갑 대응
그런데 이런 상황들은 그리 낯설지 않다. 지난 3월 이른바 ‘알파고 쇼크’ 때도 그랬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총 5차례 대국이 끝난 이틀 후, 정부는 인공지능 컨트롤타워를 설립하고 향후 5년간 관련 산업에 1조원의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서둘러 발표했다. 목표는 한국형 알파고였다. 곧바로 대기업들이 주주사로 참여하는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이 설립되는 등 인공지능 강국을 향한 국가적 로드맵이 말 그대로 순식간에 수립되고 진행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기업, 언론, 학계, 바둑계가 힘을 모아 알파고를 누를 수 있는 고도의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IT 분야에서 한국형 타령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 당시 정부는 컴퓨터 운영체제인 MS도스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형 운영체제인 K-도스 개발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3년 만에 개발이 완료됐지만 이미 전 세계 거의 모든 컴퓨터에 MS도스가 깔려 있는 상황에서 K-도스의 쓰임새는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2년 후인 1995년부터는 컴퓨터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우 기반으로 바뀌면서 결국 K-도스는 헛된 예산만 낭비한 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이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휴대전화를 통한 무선 인터넷 시대가 막 열리기 시작하던 2001년에는 한국형 표준 모바일 플랫폼 ‘위피’ 사업이 있었다. 이동통신사 간 모바일 플랫폼을 표준화시켜 동일한 콘텐츠를 여러 통신사에서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2005년부터는 아예 국내 모든 휴대전화에 위피 플랫폼을 의무적으로 탑재시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위피는 얼마 못 가 한국의 스마트폰 시대 개막을 늦추는 장애물로 간주되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 사라졌다.

2004년에는 정부출연 연구소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중심으로 한국형 리눅스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됐었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소스코드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자유로운 수정과 배포가 특징인 리눅스 프로그램에 ‘한국형’이란 이름을 붙인 것부터가 난센스였다. 결국 ‘부요(BOOYO)’라는 이름으로 결과물은 나왔지만 리눅스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외면 받았고, 지금은 아예 다운로드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2011년에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에 맞서겠다며 한국형 모바일 운영체제 개발 사업 계획이 발표된 일도 있었다. 정부 예산 540억이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다행히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소셜네트워크가 국내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제작사인 아이코닉스와의 파트너십을 맺고, 뽀로로 캐릭터 IP를 활용한 게임 ‘뽀로로 고’를 출시할 예정이다. / 소셜네트워크 제공

2014년에는 정부 주도로 한국형 유튜브 사업이 진행됐었다. 구글 유튜브의 시장 독식을 막고 글로벌 시장에서 배급 네트워크가 취약한 국내 방송사와 제작사의 콘텐츠 수출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원대한 목표로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이었다. 불과 6개월의 사업 기간 동안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유튜브의 대항마를 만들겠다는 무모하면서도 당돌한 정부 계획에 당연히 비판적인 여론이 쏟아졌지만 결국 사업은 예정대로 강행되었다. 그 결과물이 지금 ‘K콘텐츠뱅크’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상에 존재하고 있으나 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활용하는 사람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빈약한 창의성으로 며칠 만에 ‘뚝딱’
부질없이 혈세만 낭비한 채 매번 실패로 끝나면서도 IT 분야에서 각종 ‘한국형’ 사업들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가중심적·정부주도적 발상 때문이다. 국경을 초월하여 전 지구적으로 커뮤니케이션과 서비스가 이뤄지는 IT 분야에서 폐쇄적으로 한국형을 고집한다는 것부터가 애초에 실패가 예견되어 있는 일이다. 설령 ‘한국형’ 사업들이 성공했다 한들 기껏해야 한국을 세계로부터 고립된 IT 갈라파고스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빈약한 창의성이 만들어 낸 허술한 정책도 한국형 사업의 남발에 또 다른 책임이 있다. 그때그때 화제성 있는 현상이 나타나면 며칠 사이에 뚝딱 몇 개년 추진 계획을 수립해 여기에 막대한 예산을 배정하는 주먹구구식 발상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유행하는 키워드 앞에 ‘한국형’이란 세 글자를 붙이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주도할 능력은 계속 떨어진 채 ‘한국형’이란 이름표를 달고 선행 주자를 따라가는데 급급한 졸속 정책이 반복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형’의 원조는 종신 집권을 꿈꾸며 구축한 유신독재 체제를 ‘한국형 민주주의’라 미화시켜 불렀던 박정희였다. 한국형 유튜브, 한국형 알파고, 한국형 포켓몬 고 등 ‘한국형’이란 이름을 붙인 정부 사업이 유독 박근혜 정부에서 많이 등장하는 것도 어쩌면 박정희 시대에 대한 복고풍의 영향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제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타고 IT 분야는 또다시 급속한 변화와 발달 과정을 밟고 있다.

비상식의 사회

앞으로도 사람들 사이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충격을 안겨줄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들은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정부의 IT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한국형’ 사업들의 등장과 예산 낭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IT에서 ‘한국형’은 곧 ‘망국형’이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