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세월호 진상규명 다시 돛 올리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이 지난 3월21일 시행됐다. 세월호 1기 특조위 활동 종료로 중단된 진상규명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이후 야당들은 앞다퉈 개혁법안을 내놨다. 야당이 과반의 의석을 가진 상황에서 박근혜 시대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야당의 개혁법안 통과 의지는 용두사미로 그쳤다. 이제 각 당은 대통령 선거에 집중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까지 국회를 통과한 극소수의 개혁법안 중 하나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이다. 지난 3월 21일 이 법이 시행됨으로써 1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진행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이어질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지난 6월, 1기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의 강제종료로 사실상 활동이 정지됐다. 1기 특조위는 활동이 정지되기 전 229개의 조사과제를 채택했다. 특조위 내부적으로는 “각 과제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60~70%는 진상규명이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었다”는 말도 나왔다. 세 차례에 걸쳐 특조위 차원에서 청문회도 개최했다. 하지만 1기 특조위의 성과는 뭔가 부족했다. 세월호 선체에 대해 특조위가 사실상 아무런 조사를 하지 못했고,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둘러싼 다양한 의문에 특조위는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1기 세월호 특조위원을 지낸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밝힐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가 바로 세월호 선체”라며 “1기 특조위 때 선체 조사를 해야 했는데 여러 이유로 세월호 인양이 늦어졌다. 세월호 인양이 지체되는 와중에 특조위 조사활동 시한이 종료되면서 선체 조사를 할 수 없었다. 선체조사위는 1기 특조위 조사 결과를 토대로 2기 특조위가 더 새로운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증거와 자료를 잘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3월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노란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1기 특조위는 선체조사 권한 못가져

1기 세월호 특조위는 크게 세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안전사회 건설, 피해자 지원이다. 이 중 특조위의 ‘조사’가 집중된 것은 진상규명 부분이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검찰은 세월호가 과적과 조타 미숙으로 인해 침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항적기록에서 나타나는 급변침이 ‘조타 미숙’의 증거로 제시됐다. 하지만 단순히 조타수의 실력 부족으로 급변침이 일어난 것인지,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급변침을 한 것인지에 대해선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청문회나 기타 문헌자료 조사도 중요하지만, 세월호 선체 내외부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세월호 특조위법은 특조위에게 명시적으로 세월호 선체 조사에 대한 권한을 주지 않았다. 특조위는 자체 규칙을 통해 별도의 팀을 구성해 인양과정에 관심을 기울였다. 세월호 선체가 최대한 온전한 상태로 인양돼야 진상규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조위에 대한 예산 배정이 끝난 이후인 2015년 10월, 특조위 진상규명국을 중심으로 특조위는 해수부 등과 온전한 선체 보존에 대한 의사소통 창구 기능을 담당할 TF팀을 구성했다. 이 TF팀은 수시로 진도 앞마다 인양 현장에 나가 실제로 인양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지 실지조사에 나섰다. 지난해 4월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발표한 뒤에는 1개월여 진도에 현장사무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특조위는 중간점검 보고서를 통해 이 TF팀 운영이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조위 인력의 한계 때문에 실지조사에 나설 수 있는 인력은 3~4명에 불과했다. 특조위에 수사권한이 부여되지 않으면서 특조위의 인양 관련한 조사는 해수부에 대한 자료 요청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특조위가 시행령 논란으로 지지부진할 때, 정부는 이미 세월호 인양을 위한 기술검토에 들어갔다. 이후 공고를 통해 인양업체를 선정했고, 인양공정의 방식을 결정했다. 특조위는 인양과정에서 사후적인 자료 제공 요청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료 제공 문제는 인양뿐만 아니라 권한이 약한 특조위 자체의 한계였다. 1기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이후 1년간 해경 본청의 통신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해경은 참사 이후 며칠간의 통신자료만 특조위에 제공했다. 해경이 추가 자료 제공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특조위는 해산됐다.

이번에 시행된 선체조사위 특별법은 법 3조를 통해 “세월호 선체를 조사하는 등의 업무”라며 조사위의 목적을 명시했다. 또한 법 5조 2항을 통해 조사위가 세월호 선체 인양과정에도 개입할 수 있게 했다. 세월호 유가족 등 관계자들은 1기 특조위가 못다한 선체 조사를 선체조사위원회가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장훈 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은 “선체조사위가 1기 특조위와 2기 특조위 사이에 있는 연결다리 식으로 진행된다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이미 지난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2기 세월호 특조위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은 시행령을 통한 정부의 개입 여지를 줄였으며, 특조위가 특검을 제한 없이 신청하도록 하는 등 1기 특조위 법안에 비해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2기 특조위 법안은 지난해 12월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돼 늦어도 올해 11월에는 국회를 통과할 예정이다. 신속처리 안건으로 상정된 법안은 최대 330일의 계류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때문에 국회선진화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야당의 정치력에 따라서는 330일이란 계류기간이 훨씬 줄어들 수도 있다. 선체조사위의 운영기간이 최소 6개월, 최대 10개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사활동이 빨리 시작된다면 선체조사위가 마무리될 때쯤 2기 특조위가 바로 뒤를 이을 수도 있다.

당초 원안보다는 후퇴한 법안

선체조사위원회가 중점적으로 조사할 내용은 무엇인가. 김서중 교수는 1기 특조위에서 시뮬레이션 용역을 통해 추정한 세월호 내부 상황을 실제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세월호 안에 어떤 화물들이 정확히 어떤 상태로 있는지 불명확하다. 하지만 1기 특조위에서 여러 시뮬레이션을 통해 화물의 무게나 고박 상태 등을 상당히 확정했다. 선체조사위가 실제 화물의 무게와 고박 상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알려진 것이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3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선체 조사 관련 토론회에서도 선체 조사의 과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토론회의 발제자로 참석한 박홍식 1기 특조위 조사관은 미수습자 수습을 위해 선체 절단을 할 수도 있다는 해수부 입장을 반박했다. 박 조사관은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 조사는 분리된 과제가 아니다”라며 “선체를 절단하지 않고도 미수습자 수습이 가능하다고 제시한 업체들이 많다. 선체 보존에 대한 해수부의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박 조사관은 인양과정에서 세월호가 절단될 경우 선체를 통한 진상규명은 매우 어려워질 것으로 봤다. 그는 “해수부 말대로 세월호를 절단할 경우 영향을 받는 화물의 무게가 자동차 131대, 무게로는 394톤에 달한다. 해수부가 이 화물의 붕괴 가능성을 사전에 조치하지 않은 채 절단을 강행할 경우 394톤의 차량 등 화물이 붕괴하여 여객 구역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미수습자 수습을 보장하기도 더욱 어려워지고 작업자들의 안전도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또한 박 조사관은 “세월호 선체는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최선이자 마지막 증거다. 이런 선체를 절단한다는 것은 증거를 훼손하겠다는 의도로 비쳐질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 1기 특조위원을 지낸 장완익 변호사는 선체조사위 법안 내용도 원안보다 많이 후퇴했다는 지적을 했다. 장 변호사는 “선체조사위의 조사기간이 길어야 10개월에 불과한 데 비해 애초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냈던 안은 최소 1년에 1회 연장으로 2년까지 조사활동이 가능했다. (현재 법안대로라면) 세월호 참사 원인을 조사하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한 장 변호사는 현행법안은 원안보다 선체조사위 업무를 축소시켰다고 봤다. 김 의원의 원안은 선체조사위에 선체 인양과정에 대한 감독 권한과 미수습자 수습 권한을 부여했다. 원안대로라면 미수습자 수습 자체를 선체조사위가 주도해야 한다. 이것이 여야 합의를 거치면서 인양과정에 대한 ‘지도·점검’, 미수습자 수습과정에 대한 ‘점검’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해수부가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선체조사위는 감시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원안에는 선체조사위가 세월호 선체 보존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되어 있었으나, 현행법에서는 선체 처리에 대해 의견표명을 할 수 있는 선에서 그쳤다.

그럼에도 장 변호사는 하루빨리 선체조사위 설립준비단을 구성해 실질적 조사활동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1기 특조위의 경험을 말했다. 그는 1기 특조위 당시 “상임위원 5명과 10명의 민간인, 해수부 등 파견 공무원이 설립준비단을 구성해 임시 사무실에서 시행령안과 예산안부터 만들었다”며 “정부 차원의 협조를 받아 설립준비단이 실제 조사업무를 하고, 준비단의 조사결과가 선체조사위에 그대로 인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서 5명, 희생자 가족 측 3명 선출

선체조사위 구성도 관심사다. 1기 특조위의 경우 국회는 물론 유가족 단체와 대한변협, 대법원에서 조사위원을 뽑게 되어 있었다. 선체조사위는 국회에서 5명, 희생자 가족 대표들이 3명의 조사위원을 선출한다. 법 6조에 따라 구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에서 2명을 추천하고, 다른 정당에서 3명을 추천했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각각 김창준 변호사, 김철승 목포해양대 국제해사수송과학부 교수, 장범선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를 추천했다. 자유한국당은 김영모 한국해양수산연수원 명예교수, 이동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기술협의회 위원을 추천했다. 세월호 유가족단체에서는 3월 23일 토론회에 참석한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 해양선박업체 종사자 이동권씨와 1기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을 지낸 권영빈 변호사를 추천했다. 1기 특조위에서는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의 지연전술로 회의가 공전을 거듭하는 일이 많았다. 장훈 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은 “선체조사위에서 야당 추천 위원들과 유가족 추천 위원들이 하나의 팀처럼 뭉쳐서 활동한다면 여당 성향의 위원들도 방해를 하기보다는 선체 조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3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월호 인양, 미수습자 수습,선체조사의 쟁점 토론회'에 앞서 참석자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한편 장 분과장은 실무를 담당할 조사관 수급이 만만치 않을 것을 우려했다. 그는 “유가족 단체 안에서 추천할 해양 전문가들을 찾다 보니 인력풀이 생각보다도 더 좁았다. 조사위원의 경우 비상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희 유가족이나 정치권이 추천하는 게 비교적 수월했지만 전문가들에게 상임 조사위원이나 조사관으로 와달라는 말씀을 차마 못할 때도 많다. 그들에게 원래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10개월만 지속될 선체조사위에서 일해달라고 하기가 참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 분과장은 1기 특조위와 달리 파견 공무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도 조사관으로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분들께 선체조사위에 들어오라고 이야기는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감사원이나 해양심판원처럼 조사에 대해 전문성이 있는 파견 공무원들을 많이 불러들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체조사위가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기타 실무적인 문제도 걸린다. 1기 세월호 특조위의 경우 법안이 시행되기 이전에 이미 각 단위에서 특조위원을 선출해 뒀다. 하지만 시행령이나 예산 배정, 조사관 채용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2015년 한 해 동안은 사실상 조사활동을 하지 못했다.

김서중 교수는 “공무원을 임명하는 과정에 절차가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얼마간의 시간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법안에서 선체조사위의 직원은 최대 50명까지 뽑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중 별정직으로 채용할 사람이 누구인지, 파견 공무원을 누구로 할지는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 1기 세월호 특조위의 경우 별정직 공무원 채용공고가 올라오고 실제 채용이 완료되기까지 빨라도 한 달가량 걸렸다. 그는 “이미 세월호 선체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올라온 선체가 조사를 시작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지 않는다. 위원 구성과 시행령 제정을 하루라도 앞당겨야 선체조사위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서중 교수는 선체조사위에 뒤이어 2기 세월호 특조위가 하루빨리 탄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1기 특조위에서는 정부의 의도적인 방해로 진상규명국장이 특조위가 종료될 때까지 임명되지 않은 황당한 일도 있었다”며 “야당에서 정치력을 발휘해 2기 특조위를 빠르게 출범시키는 한편, 1기 특조위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사권한과 활동기간을 가능한 한 최대한 확장해주는 방향의 2기 특조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