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경제]죽은 자의 날-4대째 가업으로 이어지는 ‘가족기업’

1000대 글로벌 기업 3개 중 1개는 가족기업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2015년 보도했다.

고대 아즈텍인들은 삶이란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죽음을 통해서야 진정으로 깨어난다고 믿었다.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Dia de los Muertos)’은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멕시코인들은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죽은 자가 찾아와 산 자가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즐긴다고 믿는다. 산 자는 마리골드꽃(금잔화)과 촛불로 무덤을 환하게 장식하고 설탕이나 초콜릿으로 만든 해골을 올려놓는다. 우리의 추석, 서양의 추수감사절과 닮았다.

디즈니·픽사가 만들면 저승마저도 황홀하다. 리 언크리치 감독은 ‘죽은 자의 날’에서 <코코>를 불러왔다. 코코는 12세 소년 미구엘의 증조할머니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지만 치매기가 있어 정신이 온전치 않다. 미구엘은 뮤지션을 꿈꾼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절대 반대다. 미구엘은 전설적인 뮤지션인 델라크루즈가 고조할아버지라고 믿고 있다. ‘죽은 자들의 날’에 열리는 마을 음악경연대회에 미구엘은 출전하기로 한다. 미구엘은 우연히 죽은 자들의 세계로 넘어가 선조들을 만난다.

미구엘의 리베라가(家) 사람들에게 음악은 금기 중의 금기다. 알고 보니 고조할아버지가 음악에 미쳐 가족을 버렸고, 그 때문에 풍비박산이 난 숨은 사연이 있다.

집안 사당에 모셔둔 조상 사진 중에 고조할아버지의 얼굴은 없다. 분노했던 고조할머니가 남편의 사진을 잘라내버린 탓이다. 생활이 궁해진 고조할머니는 신기술을 배워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는 딸과 사위로 이어지며 4대째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화사업은 할머니, 어머니·아버지, 이모·삼촌까지 모두 참여하는 가족기업(Family Business)이 됐다. 가족기업이란 가족에 의해 소유·경영되는 기업을 말한다. 다만 어디까지를 가족기업으로 볼 것인지 정의된 것은 없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EY(언스트앤영)는 상장사의 경우 경영가문의 지분이 32% 이상, 비상장사의 경우 50% 이상을 ‘가족기업’이라고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자동차 기업인 폴크스바겐, 포드, 엑소르, BMW, 포르셰 등이 가족기업으로 분류된다. 다국적 곡물회사인 카길, 장난감회사 레고도 가족기업이다. 1000대 글로벌 기업 3개 중 1개는 가족기업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2015년 보도했다.

가족기업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가족 전통에 따른 강한 리더십이 있으며, 승계구도가 명확해 경영의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장점이 있다. 과감한 투자나 장기투자도 가족기업의 강점이다. 단점도 있다. 가족 내 불화가 생길 경우 오너 리스크가 생기고, 독단적인 기업 운영, 독과점, 기업가 정신 약화 등은 문제점으로 꼽힌다. 한국은 대기업 대부분이 가족기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삼성, 현대차, LG, SK, 한화, CJ, 두산, 한진, 롯데, 아모레 등이다. 재밌는 것은 삼성, 현대차는 EY가 분류한 가족기업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너가가 가지고 있는 지분이 너무 작아서다. 10%도 안되는 지분을 가지고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한국형 가족기업에는 ‘재벌’이라는 별도의 용어가 붙는다. 재벌들은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에 비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경영권의 편법승계, 2·3세의 갑질,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인해 스스로 명성을 갉아먹은 탓도 크다.

영화속 경제

만약 리베라 가문이 계속해서 신발을 만들었다면 가족기업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