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고등학교 등록금, 서민들만 내고 있었다

그동안 상당수의 대기업과 공기업, 공무원 등은 자녀 학비 보조금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기초수급자를 제외하고 소득 상위 30%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미 이런저런 혜택으로 무상교육을 하고 있었다.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말이 있다.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이다. 교육이 대표적이다. 이번 2020년 예산에는 완전한 고교 무상교육 예산이 포함되었다. 박근혜 정권 시절, 대선공약으로도 발표되었던 정책이 이제야 실현된 것이다. 2017년 12월에 조사된 여론조사에서도 86.6%의 국민이 지지할 정도로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 정책이다.

정부는 참여정부에서 중학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실현하게 된 것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는 박근혜 정부에서는 재정여력을 이유로 반대 기조를 유지해 왔는데 이번에 교육복지 확대 흐름에 동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우선 올해 2학기에는 시·도교육청 자체 예산으로 3학년 학생부터 무상교육을 시작하고, 내년에는 중앙정부 예산이 투입되어 2학년까지, 2021년도에는 전체 학생이 수혜자가 된다. 당초 국정과제 추진계획보다 1년을 앞당기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무상교육의 지원 항목은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대금이다.

고교 진학률이 99.7%에 이르는 현실에서 고교 무상교육은 필요하다. OECD 36개국 중 우리나라만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이든 좋은 지표는 뒤떨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무상교육은 일종의 ‘공동구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무상교육을 한다고 과거에 지출되지 않던 지출이 추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고교교육에 쓰여야 할 돈을 개인이 시장에서 번 돈을 가지고 직접 구매를 하는 것에서, 국가가 세금 등에서 조달한 재원을 통해 단체로 공동구매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공동구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장점이 발생한다. 먼저 ‘탈상품화’다. 고교교육은 이제 상품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재가 된 것이다. 총 2조원의 예산은 일반국민들이 내던 것에서 정부가 내는 셈이 된다. 수혜자는 2021년 기준 126만명이 된다.

여기에 가려진 또 다른 문제는 그동안 상당수의 대기업과 공기업, 공무원 등은 자녀 학비 보조금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기초수급자를 제외하고 소득 상위 30%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미 이런저런 혜택으로 무상교육을 하고 있었다. 결국 고교 등록금은 나머지 서민들만 내고 있었다. 이러한 불평등은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논리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쓸 수 없다는 것인데, 오히려 지금까지 부유하거나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선택적 복지의 수혜자인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

다만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게 되면 많은 지자체 등에서 하는 장학금 사업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적극 검토해야 한다. 장학금 사업이 지역 관변단체 자녀들에게 가는 경우가 많다. 교육비는 무상교육이나 제도적으로 해결해야지 일부 특정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해결하는 것은 좋지 않다.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더 큰 후회를 막는 길이다. 이제는 대학교 무상교육도 생각해볼 때다. 이것도 사실 만시지탄이 아닌가.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