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난 윤봉길 의사 평범한 장손녀, 할아버지 이름 팔 생각 없다”

윤주경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

지난 7월 15일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서울 신문로 S타워에서 현판식을 가졌다. 참석자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윤주경 위원(54)이다.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인 그는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 캠프의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발탁되면서 화제가 됐다. 김을동 의원처럼 “난 장군의 손녀”라고 주장한 적도 없는 내성적인 그가 그런 자리를 맡은 것이 신기했다. 최근 윤봉길 의사 순국비에 ‘말뚝 테러’를 한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鈴木信行)에게 1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물리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나온 것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은 지난 8일엔 대통령으로부터 위촉장도 받고, 업무보고 자리도 가졌다. 무슨 일을 하나.
“아직 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아 어떤 방법으로 활동할지 정확히 모른다. 다만 국민대통합위원회는 국민 속에서 활동하고, 같이 호흡하는 국민위원회의 성격을 갖고 있다. 위원들 모두 한마음으로 국민 속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위원회가 돼야 한다고 마음을 모았다. 현재 기획정책·대한민국 통합가치·갈등 예방조정·국민소통 등 4개의 위원회가 있고, 17개 시·도별로 지역위원회를 설치해 지역별 국민통합 증진방안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회의도 하고 연구도 한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난 윤봉길 의사 평범한 장손녀, 할아버지 이름 팔 생각 없다”

대선 때부터 따지자면 8개월 정도 참여한 셈인데, 국민통합의 과제가 뭔가.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모두가 알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생각을 구체화시키고, 정책으로 만들어 국민의 피부에 와닿게 하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계층 갈등이 가장 심하고, 이념, 지역, 세대 갈등 순이었다. 그래서 위원회에서는 계층 간 갈등 해소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활동할 것이다. 통합은 목표가 아니라 가치가 더 중요한데, 처음으로 만들어진 기관이어서 다들 고민 중이다. 갈등 없는 사회가 어디 있나. 그런데 이곳저곳 살펴보면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의 편인데 정치인은 그저 자신들의 편인 것 같다. 정치권부터 갈등을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각계의 의견을 듣나.
“위원회로 찾아오는 민원인들의 의견도 경청한다. 아직 사무실이 제대로 모양새를 갖추지 못해 이들을 위한 상담실도 없지만…. 택시를 타면 요즘 기사분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정치 관련 프로그램 청취도 않는다. 그만큼 정치를 잘 하고 살기 좋아져서가 아니라, 정치에 체념하고 포기한 것 같다. 복지 이야기를 건네도 ‘내가 낸 것만큼만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 국민의식이 정치권보다 더 앞서 있다. 노인정에 가서 ‘뭐 해드릴까요’라고 하면, ‘우리에게 뭐 해주려고 하지 말고 나라 빚이나 갚아’라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런 분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내가 아는 분의 출판기념회에서 처음 만났다. 유명인사는 없고 몇몇 평범한 이들이 20여명 정도 모이는 소박한 자리였다. 그곳에서 6·25 참전용사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박 대통령이 ‘외국에 가면 한국전 참전용사를 꼭 만난다. 그들이 나보다 더 한국의 발전에 감동하고, 한국 상황에 관심이 크더라. 그리고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하더라’며 참전용사들이 참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인 믿음, 지도자로서의 신뢰감이 느껴졌다. 그 전엔 잘 몰라 선입견이 있었다.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초대한 분에게 ‘(박 대통령에 대해) 오해했는데 참 모습을 봤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전해지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자리에서 할아버지(윤봉길 의사)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한 기사에서 보니 그 후 자주 만났다고 하던데.
“아니다. 대선 무렵에 연락이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어떤 역할인지도 몰랐다. 난 참 평범한 사람이지만, 애국심을 가진 보통 국민의 한 사람으로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묵묵히 땀흘려 일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분들의 열망이 헛되지 않도록 가진 힘을 전부 쏟고, 모두가 꿈꾸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박 대통령이 어느 누구보다 대통합을 잘 이룰 수 있고, 다 함께 잘 살고 싶다는 국민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인수위 참여 제안이 왔을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따뜻한 정부, 약자에 대해 관심 가지고 법과 원칙을 지키는 정부, 작은 기업도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어떤 이는 윤 위원이 윤봉길 의사 관련 일 외엔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등의 지적도 있더라.
“난 광고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자 생활인이다. 국민대통합 위원은 비상근직이고 월급도 없다. 아마도 새누리당 대선에 참여하다보니 마치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처럼, 할아버지를 팔아 먹고 사는 사람처럼 오해를 받는 것 같다. 물론 나도 부위원장을 제의받았을 때 과연 자격이 있나 싶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고, 그 몫을 대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야심도 없다. 그저 오늘 하루만 평화롭게 보내도 행복하다. 하지만 나같은 보통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지 않는가. 더 많은 오해와 편견을 받고 자라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어떤 오해인가.
“윤봉길 할아버지의 직계자손이 없다고 소문나서 내가 어떤 자리에서 장손녀라고 하면 ‘가짜’로 오해받기도 했다. 할아버지 기념사업회 등의 일을 친아들인 아버지(윤종)보다 할아버지의 셋째동생과 그 아들인 나의 오촌당숙이 주관해서 직계자손이 없는 것처럼 보인 것 같다. 아버지는 일제시대엔 도처에서 나쁜 집안 아이로 구박을 받았다. 그런데 해방 후 갑자기 훌륭한 집안 아들이 되어 친한 척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또 6·25가 터지면서 친일파들이 친미파로 변신해 태도가 돌변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과 주변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컸다. 50세가 되어서야 좀 안정되셨는데 57세인 1984년에 돌아가셨다. 친손자인 내 동생도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기념사업회 등의 일에 나서지 않는다.”

국가보훈처 자료에 따르면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이 비참한데 가정형편은 어땠나.
“내가 1남6녀 중 장녀인데 어머니께서 우리를 키울 때 ‘어깨가 무겁다는 표현은 절대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표현’이라고 하셨을 만큼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웠다. 독립유공자 가족이 못살면 ‘조상 얼굴에 먹칠한다’고 비난받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으면 ‘독립운동했다면서 어디서 돈이 난 거냐’고 비아냥거리고, 공부를 잘해도, 공부를 못해도 항상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정말 부담스러웠다. 아버님이 공무원이셨는데 생활감각이 없어 어머니가 고군분투하셨다. 백범의 아드님인 김신 장군의 도움으로 김포공항에서 스낵코너를 운영하게 되면서 겨우 가난에서 벗어났다. 다행히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정부와 국민에 감사하면서도 때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한 것으로 손자, 증손자까지 나라에서 얻어먹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좀 억울하다.”

할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란 건 언제 알았고, 그런 집안의 딸이란 의식은 있었나.
“철이 들고서야 제대로 알았다. 할머니(윤봉길 의사의 부인 배용순 여사)는 애국열사의 부인이라기보다 너무 지혜롭고 완벽한 여성이었다. 16세 때 한 살 연하인 할아버지와 결혼, 6~7년 정도 결혼생활을 하셨다. 그때 할아버지가 농촌계몽운동으로 늘 새벽에 나가 밤에 돌아오셨는데도 정말 금실이 좋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당신 누이들과 부인인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치셨는데 누이들이 틀리면 막 야단을 쳐도 할머니껜 절대 야단을 치지 않았고, 할머니가 밭일 나가면 한 팔에 아기를 안고 학생들을 지도할 만큼 애처가였다. 어머니께도 너무 다정한 시어머니셨고, 손주들을 끔찍하게 챙겨주셨다. 하지만 가족보다는 다른 분들이 더 그런 의식을 심어준 것 같다. 중학교 때 교실이 너무 추워 다들 얇은 실내화 대신에 구두를 신었는데 선생님이 유독 나만 나무라시면서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넌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을 때 제 사소한 행동 하나가 가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막연히 알았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를 포함해 독립운동가를 공부했는데 무명의 여성 독립군도 많고, 독립운동가의 부인과 딸들의 노력과 헌신도 컸음을 알았다. 여성 독립운동가들과 가족에 대한 연구가 더 심도깊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윤봉길 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은 맡지 않나. 여성시대여서 손녀도 가능할텐데.
“솔직히 어린 시절엔 윤봉길 할아버지의 손녀여서 특혜보다는 부담과 피로감이 컸다. 독립유공자의 자손으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정말 생각없이 홀가분하게 살고 싶었다. 훌륭한 할아버지의 손녀로서 부족하다는 자격지심에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았다. 또 독립운동가들의 기념사업회는 직계자손이나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들에 의해 주도되고, 국민들이 감시하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문의 영광이긴 해도 국가의 영웅으로 남아야 하고, 몇몇 정치인의 이력서에 한 줄 올리기 위한 단체장도 안 된다. 가족은 나처럼 이사 정도의 자리가 적당하다.”

전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씨는 ‘윤봉길 후손’임을 자주 강조했는데 친척이 맞나.
“나와 34촌이라고 알고 있다. 파평 윤씨인 것은 맞는데 500여년 전에 소정공파와 판도공파로 나누어졌다. 그분은 소정공파이고 우리는 판도공파다. 아마도 같은 파평 윤씨인 윤봉길 할아버지가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자주 인용했나보다.”

다시 국민통합의 이야기를 해보자. 통합의 전제는 무엇일까.
“법과 원칙을 ‘칼같이’ 지키는 것이다. 부흥기의 고대 로마, 지금의 독일이 강국일 수 있는 것은 융통성이 없다고 느낄 만큼 철저히 원칙을 지킨 덕분이다. 독일에서 생활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는 반나절에 해결할 일을 한 달 걸리기도 하는 등 불편한 것 투성이라고 하더라. 하지만 내가 좀 피곤하고 내가 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법을 지키면 결국 보상을 받고, 내가 잘못하면 남처럼 처벌받는 사회여야 한다. 그것이 늦지만 가장 빠른 길이다.”

가장 관심가는 분야의 일은 무엇인가.
“국민통합과는 큰 상관은 없지만 역사, 특히 한국사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글로벌시대, 세계화를 강조하는데 외국인들과 만나서 각 나라의 역사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가. 중국이나 일본인들과 만날 때 제대로 된 우리 역사 교육을 받지 않으면 그들의 왜곡된 역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대학시험이 있어야 자기 나라 역사를 배우다니 참 개탄스럽다. 차라리 시험 부담이 없는 유치원 때부터 우리 역사공부를 시켜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고생도 많고 오해도 받지만,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 보람도 클 것 같다.
“얼마 전 지인과 함께 교도소에서 나온 후 사회에 나와 개업한 분의 식당에 갔다. 통합위원회 회의비를 봉투에 담아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식당도 번창하기 바란다’며 전달했다. 그분들은 윤봉길 의사의 손녀가 와준 것만으로 굉장히 고마워했다. 또 몽골에도 평화주의자인 할아버지의 뜻을 기려 길을 만들었다기에 가봤다. 광야인 몽골은 내가 걸어가면 길이지 다른 표석이나 깃발도 없더라. 그런데 윤봉길로드로 명명된 길에 사람은 안 다니고 소가 몇 마리 지나가는 걸 봤다. 먼 나라에사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보며 우리나라 독립이 요원하거 불가능해보이기까지 할 때 세계평화를 위해 곡 가야하는 길이란 신념을 가진 할아버지의 정신을 다시 떠올렸다.”

어떤 이들은 윤주경씨가 할아버지 덕분에 ‘한 자리 차지했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친일파 유족들은 지금도 각계에서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고, 조상의 과거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속으로 ‘친일파 할아버지, 감사합니다’란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의 윤택한 삶을 살지 않는가. 애국지사의 후손들이 존경받고, 대우받는 것은 역사를 바로세우는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더욱 중요한 것은 20대에 농촌계몽운동을 하고 25세에 기꺼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의사의 애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 아닐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