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대통령, 포옹은 잘하는데 포용은 못해”

시테크 창시자 윤은기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게 영국 작가 맬컴 글래드웰의 이론이다. 하루 3시간씩 10년 동안 한 분야에 몰입하면 달인(아웃라이어)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 총장은 경영컨설턴트라는 본업 외에 방송 프로그램 진행이라는 부업을 하면서도 이 매직넘버를 채웠다. KBS ‘생방송 오늘’, CBS ‘윤은기의 정보시대’, 교통방송 ‘윤은기의 굿모닝 서울’ 등을 진행하며 방송인으로 10년을 보낸 것이다. 이 때문에 윤 총장은 언제 어떤 상황, 어느 주제에서도 막힘없이 요점을 집어내 대화를 이끌어가는 노하우를 갖게 됐고 이를 자신의 본업인 컨설팅과 연결지으면서 이 시대 가장 신뢰받는 리더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여러 직책을 동시에 맡고 있지만 올해 들어 한 가지 직함을 더 갖게 됐다.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글로벌시민분과위원장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가는 곳마다 “최고의 브랜드는 매력이다. 매력을 키우자”고 외친다.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를 외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윤 총장이 재직하는 서울과학종합대는 학부 과정 없이 석·박사 교육만을 하는 경영전문 대학원 대학이다. 배우는 학생들이 웬만큼 나이 먹은 전문인력이지만 교수들은 수업 시작 전 5분간 반드시 윤리특강을 먼저 한다. 전문인력일수록 윤리학습이 꼭 필요하다는 윤 총장의 소신에 따른 것이다. 그렇게 실시한 특강자료를 한 데 모아 얼마전 ‘재미있는 윤리경영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이번주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윤 총장을 찾아간 것은 그가 얘기하는 매력과 윤리에 대해 들어보기 위해서다. 시대의 코드를 늘 한 발 앞서 읽어내는 아웃라이어가 특별히 강조하는 말이라면 독자들과 함께 귀 담아두어야 할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환갑을 눈앞에 둔 나이이지만 지금도 열정적으로 일한다. 스케줄을 적어놓은 그의 수첩에는 이런 저런 일정 메모가 한 틈의 여백도 없이 빼곡히 쓰여 있다. 그런데도 늘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지난 21일 총장 집무실에서 환한 얼굴로 취재진을 맞이한 윤 총장에게 체력에 관한 질문부터 던졌다.

연세에 비해 아주 젊어 보입니다.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저는 일이 보약이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20대 공군장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이 많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니까 보람이 있고, 또 잘 되니까 즐겁고 그런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았는데 탁월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맑은 얼굴에 자신에 찬 표정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그동안 어떤 일을 얼마나 하면서 살아왔는지 복잡한 삶의 궤적을 실타래 풀듯 설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잡은 직장이 효성과 삼성물산이었습니다. 종합상사는 당시 모든 것을 다뤘습니다. 품목으로는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지역으로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뉴욕까지, 업종으로는 금융에서 정보산업까지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었어요. 저는 회사 기획실에서 그 다양한 분야의 보고서를 쓰면서 5년을 보냈습니다. 당시 내 바로 옆자리에 현 SK C&C 부회장인 김신배씨도 있었죠. 그때 우리 사회가 곧 정보사회로 바뀔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표를 내고 나와 나만의 연구소를 차렸습니다. 그게 1983년이었죠.”

26년 전 우리 사회가 어느 수준이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가 낸 사무실 간판이 정보전략연구소였다. 그런데 안기부(현 국정원)에서 연락이 와 “국가기관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으니 ‘정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경영이란 단어를 앞에 붙여 기업 컨설팅에 나선 게 오늘날 한국 최초의 경영 컨설턴트가 된 출발점이다.

“초기에는 좌절할 뻔했죠. 2년만에 퇴직금 다 날리고 빚까지 졌으니까요. 막막한 심정을 안고 북한산에 올라갔어요. 바위에 계란을 던져보았죠.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해보니 기분이 좀 좋아지더군요. 그때 생각했어요. 이건 분명히 되는 사업이다, 다만 너무 빨리 시작했을 뿐이다라고요. 그래서 사업 규모를 좀 줄이고 버텨보기로 했죠. 그런데 그해 가을 앨빈 토플러가 한국에 왔어요. 제3의 물결이 밀려온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바뀐다, 정보통제가 불가능해져 한국은 민주화될 것이다 등등의 얘기를 하고 갔죠. 그랬더니 그때부터 제 사무실 전화에 불이 났습니다. 전국에서 강의 요청에 방송출연 요청이 쏟아지는 겁니다. 정보사회에 대해 얘기할 사람이 나 말고 없다는 것이에요. 그동안 까먹은 거 1년만에 다 벌충하고도 남았죠.”

이런 분위기를 타고 그는 ‘정보화특강’, ‘종합상사의 정보전략’, ‘정보화사회의 비서학’, ‘기업정보전쟁’ 등의 책을 내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다. 92년에는 윤 총장의 고유 브랜드가 된 ‘시(時)테크’라는 책을 써 공전의 히트를 했다. 그렇게 유명인사가 되니까 방송 출연이 더 잦아졌고, 그러다가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10년 방송인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방송 활동이 재미있던가요.
“하루 2시간씩 진행했는데 이를 위해 1시간은 준비해야 하거든요. 오고 가는 시간을 빼더라도 하루 3시간은 몰입해야 합니다. 방송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잖아요. 그렇게 10년을 보내니까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이라는 변화의 방향성과 속도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균형감각도 생기고요. 이때 알게 된 사람들로 인적 네트워크를 갖게 돼 마당발 소리도 듣게 됐으니 제 인생에 엄청난 도움이 됐죠.”

컨설팅에선 무얼 얘기합니까.
“경영학은 능력있는 사람을 도와 더 큰 성과를 내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성과를 특정인이 독식하지 않고 사회에 흘러가게 해야죠. 저는 어시스트 인생이 좋아요. 나는 어시스트가 좋다 라는 제목의 책도 구상 중이에요. 축구선수 박지성 보세요. 자기가 골을 넣으려 하기보다 동료에게 어시스트를 많이 하니까 유럽사람들도 좋아하잖아요. 저는 학생들에게 ‘하늘은 남 돕는 자를 돕는다’고 강의합니다.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은 먹고 살기 힘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고, CEO를 꿈꾸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오만과 독식은 멸망의 지름길이고 겸손과 나눔이 지속가능한 길이에요.”

윤리교육도 그런 차원에서 시작한 건가요.
“지금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어요. 첫째가 법치이고 둘째가 윤리, 그중에서도 지도층의 윤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법치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돼야 하지만 윤리는 다릅니다. 가진 자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도층에 그런 의식이 희박해요. 갖가지 비리사건이 그래서 터져 나옵니다. 전략은 있는데 영혼이 없는 거죠.”

왜 5분씩 하나요.
“윤리 문화는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된다는 게 퓰리처상을 수상한 하버드대 로버트 콜스 교수의 MQ(Moral Intelligence Quotient) 이론입니다. 학습을 통해 윤리 지능을 길러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 학습은 한꺼번에 이벤트식으로 해서는 효과가 없고 반드시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꾸준히 해야 합니다. 할머니 잔소리 같은 교육이 중요한 것인데 언제부턴가 우리 공교육에선 이기고 출세하는 것에만 매달려 그런 것 안 가르치잖아요. 5분 특강은 그 빈자리를 우리 학교에서 채워보자는 시도였습니다.”

교육만으로 윤리를 일으켜 세울 수 있나요.
“윤리는 교육과 투명성 두 가지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교육은 실종 단계지만 투명성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게 우리나라예요. 컴퓨터에 휴대폰, CCTV가 깔려 있어서 다 보고 있죠. 한 2년 전에 기막힌 일이 신문에 보도됐어요. 부산지하철에서 장애인이 선로에 떨어지자 한 청년이 재빨리 뛰어들어 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노트북이 들어 있는 이 청년의 가방을 누군가 훔쳐가는 게 CCTV에 찍혔어요. 둘 다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선로 안은 위험한데 뛰어내릴까 말까, 가방을 훔치는 것은 나쁜 짓인데 할까 말까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거죠. 이를 윤리 지능이라고 합니다. 평소 의협심이나 생명존중, 자기희생과 같은 윤리교육이 돼 있지 않으면 이런 윤리 지능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전략만 있고 영혼이 없다고 한 말에서 생각납니다. 이명박정부 들어 공무원의 영혼이 없어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무원을 시켜서 전 정권에서 임명한 인사들을 모두 임기 무시하고 내쳤거든요. 그건 윤리적으로 문제 아닌가요.
“공무원은 자긍심을 갖고 국가에 충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 세우게 하면 안 돼요. 그게 DJ(김대중) 정부 때 제일 심했어요. 인사와 관련해 중요한 질문을 했는데, 고위직에 오른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고 봅니다. 능력으로 된 사람과 정치적 줄서기로 된 사람이죠. 능력있는 사람은 아무리 전 정권에서 기용했다고 해도 써야 합니다. 그게 포용이거든요. 나와 다른 사람, 지역도 다르고 학교도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해요. 자기 편만 끌어안는 것은 포옹이에요. MB가 포옹은 잘하는데 포용의 기술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3김 시대에는 포옹만으로 통했는데 ‘우리가 남이가’ 식 사고는 이제 버려야 합니다.”

매력이 경쟁력이라고 강조하는데 이 정부의 매력은 어떻습니까.
“MB정부가 매력적이냐 하면 그건 아니죠. 국가의 매력도 매우 낮아요. 4대 권력기관이라는 말이 9시 뉴스에서 나오는 한 매력지수는 하위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검찰이나 국세청이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가 자주 나오고 보건복지가족부가 앞에 와야 합니다.”

그가 말하는 매력에는 외적 매력과 내적 매력이 다 포함된다. 단정한 옷차림이나 건강한 신체가 외적 매력이라면 맑은 영혼과 교양을 갖추는 게 내적 매력이다. 실제로 그는 안경테 하나 고를 때도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의사 자문을 거쳐 머리카락 안 빠지는 약을 먹고 있다.

“매력을 키우는 것 못지않게 반 매력을 제거하는 것도 필요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에 가면 ‘아 대한민국 필승코리아’와 같은 낙서가 쓰여 있다고 해요. 일본의 어떤 명문 골프장에는 ‘한국인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고요. 한국인이 골프장에서 폭탄주를 마시고 소란스럽다는 거예요. 외국인은 한국 하면 북핵과 폭력시위를 떠올린다고 하는데 이런 반매력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이게 더 시급한 것 아닙니까.
“민주주의 훈련이 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명박정부를 가리켜 독재라고 했는데 여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정책을 사안별로 판단하고 비판해야 하지 않나요? 저는 다음 대통령은 진보·보수 어느 쪽도 아닌 매력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 총장이 몇년 전부터 흠뻑 빠져있는 일 중 하나가 골프칼럼 쓰기다. 칼럼을 쓰기 위해 다양한 골프장에서 다방면의 사람들과 골프를 하며 대화를 나누게 됐고, 그 과정에서 인생의 의미를 한층 깊이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그의 칼럼은 골프 치는 사람의 심리와 행태를 생생한 현장 속에서 그려내 한 폭의 그림 같다는 평을 받는다. 자연히 그는 골프예찬론자다. 극히 일부 인사들이 골프를 부적절한 만남의 기회로 악용해 문제이긴 하지만 골프 자체를 사갈시(蛇蝎視)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를 향해서도 할 말이 많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에 청와대에서 공무원 골프금지령을 내린다는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골프가 서민운동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중산층 이상은 할 수 있다고 봐야지요. 요즘은 외제차를 타도 누가 뭐라 하지 않잖아요. 저는 대통령배 자선골프대회 같은 것을 열어 골프산업을 키워줬으면 좋겠어요. 외국 정상이 오면 함께 골프도 하고요. 이때 국산골프채를 이용하면 그 또한 마케팅이 될 게 아니겠어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핸디(실력)가 비슷할 것 같은데 한번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골프 하는 사람들은 골프를 골프라 하지 않고 ‘운동’이라 표현합니다. 그만큼 국민 정서가 부정적이지 않나요.
“테니스도 처음에는 부자들 운동이라고 해 사회적 저항이 있었습니다. 배드민턴도 그랬어요. 이제 골프계급론도 극복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봅니다.”

이종탁이 만난 사람

골프는 못하더라도 휴가를 잘 보내는 방법 좀 조언해 주세요.
“제 대학 후배인 명지대 김정운 교수가 휴테크라는 말도 썼어요. 저는 느림의 시테크, 빠름의 시테크라는 책을 썼고요. 주중에는 빠르게, 주말에는 느리게가 제 모토죠. 한자의 쉴 휴(休)자는 사람과 나무가 합쳐진 글자예요. 자연 속에서 늘어질 수 있으면 됩니다. 저는 해수욕장 같은 데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축 늘어진 채 있다가 옵니다.”

<글·이종탁 출판국 기획위원 jtl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