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사회 불안에 가장 빨리 반응하는 ‘공포지수’

2012년 연말 종말론이 기승을 부렸다. 고대 마야인들이 남긴 달력에는 2012년 12월 21일까지만 있기 때문이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과학적 가설을 더했다.

영화 <2012>는 2012년 전 지구적 재난으로 인류 문명이 멸망한다는 내용의 재난영화이다./위키피디아

영화 속 원리는 이렇다. 태양흑점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중성미자가 방출된다. 방출된 중성미자가 지구로 와 지구 속 외핵을 뜨겁게 달군다. 뜨거워진 맨틀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맨틀 위의 지각은 제멋대로 떠다니게 된다. 영화 속에서 캘리포니아가 태평양으로 가라앉고, 중국이 하와이에서 매우 가까워지고, 희망봉이 치솟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된다는 설정은 지각변동을 기반으로 한다.

14개국 정부는 서로 협력해 인류를 구할 우주선을 만든다. SF소설가 커티스(존 쿠삭 분)는 이 우주선이 중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러시아 갑부의 비행기에 동승해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향한다. <2012>는 도시가 파괴되고, 메가 쓰나미가 밀려드는 재난 그래픽이 압권이다. <투모로우>, <인디펜던스 데이>와 함께 롤랜드 에머리히의 3대 재난 블록버스트라고 불리는 이유다.

천신만고 끝에 우주선이 있다는 티베트로 간 커티스는 깜짝 놀란다. 우주선이 아니라 수십만 명이 탈 수 있는 거대한 ‘노아의 방주’였기 때문이다. 티베트 고원에 초대형 방주 9개가 만들어지고 있는데도 이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중국 정부는 댐 공사라고 말을 둘러댔다. 대종말의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살해당했다. 미국 대통령은 종말 직전에야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자연의 대재앙이 일어났다”고 실토한다. 그는 왜 이렇게 늦게 진실을 알린 것일까. 대종말을 예언한 찰리의 말에 답이 있다. “(대종말이 알려져) 주식시장이 붕괴하면 경제가 폭삭, 달러 가치가 폭삭. 대혼란이 일어나면 전쟁과 학살이 이어지며 폭삭.”

증시는 사회적 공포에 가장 빨리 반응하는 금융시장이다. 위기 때는 즉시 쓸 수 있는 현금이 가장 믿을 만하기 때문에 ‘팔자’ 물량이 쏟아진다. 증시가 폭락하면 통화가치도 급락한다. 코로나19가 그랬다. 확진자가 급증하자 글로벌 주가는 폭락했고, 주요국의 통화가치도 급락하며 세계경제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시장의 공포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VIX지수(Volatility Index)를 먼저 보면 된다. VIX지수는 시카고옵션거래소에 상장된 S&P500 지수옵션의 향후 30일간의 변동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나타내는 지수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 위험헤지를 위해 투자자들이 옵션을 많이 사 옵션가격이 높아지고 VIX지수도 상승한다. 특히 약세장일 때 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해 ‘공포지수’라 부른다. 국내 증시의 공포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가 있다. 코스피200 옵션가격을 이용해 산출했다.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도 시장의 공포를 엿볼 수 있는 지표다. CDS란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나 국가가 부도 날 경우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보험 같은 파생상품이다. 이때 보험료에 해당하는 것이 CDS프리미엄이다. 사고 가능성이 높은 운전자의 보험료가 높듯 부도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나 국가일수록 CDS프리미엄이 높다.

영화 속 경제

영화 속에서 제시되는 방주의 탑승권은 한 좌석당 10억 유로에 달한다. 현 환율(원화 1330원)로 따져보면 1조3300억원가량 된다. 밖은 아비규환인데 중동 석유부호, 글로벌 기업의 수장들은 유유히 방주에 탑승한다. 코로나19도 ‘없는 사람들’에게 유독 가혹했다. 영화는 때로 불편한 진실을 비꼰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