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시대가 변하자 한계에 부딪친 ‘포디즘’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 외곽의 디어본에는 ‘헨리 포드 뮤지엄’이 있다. 공식명칭은 ‘미국 혁신의 헨리 포드 뮤지엄(Henry Ford Museum of American Innovation)’이다. 수식어를 보면 미국인이 헨리 포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 <포드 v 페라리>는 1966년 ’르망 24시’ 레이스에 도전한 포드사의 자동차 엔지니어 캐롤 셸비와 레이서 켄 마일스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 20세기 폭스

이 뮤지엄에는 포드사가 만든 기념비적인 차들이 전시돼 있는데, 그중 하나가 GT-40이다. GT-40은 1966년부터 4년간 프랑스의 자동차대회 ‘르망24시’를 지배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미국 자동차다. GT-40 3대가 나란히 1, 2,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던‘포토 피니시’는 미국 자동차 역사의 명장면으로 여전히 기억된다.

제임스 맨골드의 영화 <포드 v 페라리>는 1966년 포드 영광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켄 마일스를 추억한다. 1960년대 최악의 판매 부진을 겪던 포드사는 새로운 전략을 세운다. 개성 강한 베이비붐 세대를 잡기 위해서는 승리의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것. 그 무대로 르망24시를 꼽는다. 르망24시는 24시간 동안 3명의 드라이버가 13.6259㎞의 트랙을 교대로 쉬지 않고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다. 완주조차 어려운 대회라 우승자는 일약 럭셔리 브랜드로 떠오른다. 벤틀리·부가티·알파로메오·재규어·페라리·포르쉐·아우디 등이 그랬다.

포드사는 부도위기에 몰린 페라리를 인수·합병해 르망24시에 도전하기로 한다. 하지만 엔초 페라리 회장은 포드사에 대해 “형편없는 작은 차를 만드는 형편없는 공장”이라는 독설을 퍼부으며 인수·합병 제안을 퇴짜놓는다. 분노한 포드사의 회장, 헨리 포드 2세는 르망24시에서 페라리를 눌러버리기로 결심한다. 포드사는 르망 레이스 우승자인 캐롤 셸비(맷 데이먼 분)를 영입하고, 셸비는 최고의 튜닝능력과 레이싱 실력을 가진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 분)를 영입한다.

포드를 최고의 자동차회사로 성장시킨 것은‘포디즘(Fordism)’이 었다. 포디즘이란 생산공정을 표준화해 대량생산을 하고. 이를 대량소비하자는 헨리 포드의 경영철학을 말한다. 이탈리아의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옥중수고>(1934)에서 처음 언급했다.

헨리 포드는 ‘차량을 싸게 만들어 많은 사람이 타도록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고민 끝에 고안해낸 방법이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었다. 포드는 시카고의 도축장과 방직공장에서 이동형 생산라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1913년 포드사의 하일랜드파크 공장에서 작업대 대신 컨베이어벨트가 들어섰다. 차량의 구조와 형태는 조립하기 쉽도록 설계됐다. 1대당 2000달러에 달하던 자동차는 300달러까지 떨어졌다. 포드의 성공은 미국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1960년대에 접어들자 포디즘도 한계에 다다랐다. 포디즘이 찍어내는 정형화된 제품은 기호가 다양해진 시장에서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노동자는 생산공정상 부속품의 하나로 전락하면서 창의성이 상실됐다.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는 조직을 급속도로 관료화시켰다.

마일스는 각종 대회를 휩쓸지만 포드사 경영진들은 마뜩잖아한다. 윗사람의 심기를 거침없이 건드리는 마일스의 야생마 같은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레이싱의 성과도 포드사에는 회사의 성과에 불과했다. 포드 경영진은 속도, 전략 심지어 RPM까지 통제하고 싶어했다. 포드 수석 부회장 리오 비비가 셸비에게 “포드차에는 포드유형의 드라이버를 넣어라. 이것이 포드방식이다”라고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 속 경제

포디즘은 미국사회를 대량생산-대량소비로 이끈 힘이지만 긍정적으로만 인식되지는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미국 제조업체들의 미국 내 공장 증설을 요구하자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포디즘의 귀환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