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지금 ‘민중미술’은 없다

1980년대 민중미술을 향한 일부 미술평론가들의 ‘험악한 리얼리즘’이라는 비판은 한편으론 민중미술의 색깔을 선명하게 만드는 시선이기도 했다.

허나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민중미술은 논리모순과 양식화에 젖어 제 맥락을 상실한 채 표류했다. 정치적 저항의 대상이 사라진 것도 방향을 잃게 한 하나의 이유였다. 이후 ‘민중’ 주체의 미술운동은 당국의 우산 아래 입성했다. 일부 작가들과 작품들 또한 현장이 아닌 제도권과 전시장으로 자릴 옮겼다. 그러면서 민중미술은 자연스럽게 역사 안에서 희미해졌다. 그랬던 민중미술이 30여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오늘로 소환됐다. 바로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2: 리얼리즘의 복권’(가나인사아트센터, 1.28-2.28)’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통해서다. 이 전시는 한 상업갤러리가 판을 깔았고,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자문을 맡았다. 신학철, 민정기, 임옥상, 이종구 등 1980년대 민중미술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작가들이 함께했으며, 출품작만 100여점을 웃돌았다. 모처럼의 민중미술 전시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임옥상, 상선약수, 종이에 목탄, 2015

그러나 아쉽게도 이 전시는 기억의 귀납 혹은 회상에 머물렀다. 지난해 11월 열린 ‘민중총궐기’의 풍경을 담은 임옥상 작가의 ‘상선약수’(2015) 등의 일부 작품을 제외하곤 전시작품들의 대부분은 엄혹하고 냉기어린 삶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과 호흡하기엔 숨이 버거웠으며, 공허한 시차 아래 현재와의 연대는 힘에 부쳤다.

그렇다고 참여 작가들이 시대상을 반영한 분전역투의 필력과 비판의식이 없었다는 얘긴 아니다. 다만 기획의도와 민중미술 본래의 정체성이 모호하게 겹치면서 어정쩡하게 종결된 느낌이 크다. 이와 관련해 임옥상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당연히 지금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준비한 작품의 대부분을 전시하지 못했다”고 썼다.

사실상 이 전시는 상업적 목적에 맞춰진 혐의가 짙다. 어떻게 부여되었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 민중미술 대신 굳이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고집한 것도 그랬고, 자신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예속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정인 미술시장과 손을 잡은 것도 그랬다. 특히 “단색화에 이어 1980~90년대 리얼리즘 작품들을 해외시장과 컬렉터들 앞에 소개하는 게 가장 주된 목적”이라는 주최 측의 발언은 돈 되는 미술로서의 민중미술, 문화상품으로서의 민중미술에 방점을 찍었다.

결국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2: 리얼리즘의 복권’ 전은 현실과 역사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민중미술의 특질인 미술변혁이나 사회변혁과는 거리가 먼 기획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단물 다 빼먹은 ‘단색화’의 뒤를 잇는 시장공략용 카드로 선택된 것일 뿐, 민중미술의 순수성과 가치를 동시대로 복귀시키려 했다는 평가도 어렵다.

문화내시경

만약 그게 아니라면 역사의 주체이면서도 억압 받는 존재인 작금의 민중을 적극 끌어안았어야 했고, 민중 대신 ‘대중’의 품을 염원한 채 화상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 아님을 증명했어야 했다. 나아가 예술과 민중이 당대성과 어떤 방식으로 조우되고 방향 지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자문의 비중이 훨씬 컸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참다운 의미의 민중미술은 지금, 적어도 오늘은 없다. 그저 ‘민중미술’을 내세워 빈곤한 콘텐츠를 채우려는 영악한 시장의 지폐 세는 소리만 부유하고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