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연희단거리패 30주년 무대

문화게릴라 이윤택이 이끄는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올해 창단 30주년을 맞았다. 1986년, 부산에서 이동식 순회극단으로 시작한 연희단거리패는 1988년 <산씻김>으로 서울 무대에 첫선을 보인 이후, 수많은 문제작과 화제작들을 낳으면서 우리 연극계를 대표하는 중견극단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이후 서울과 밀양이라는 두 거점을 축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면서 한국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과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밀양연극촌은 연극공동체를 지향하는 연희단거리패의 비전을 구체화한 공간으로, 단순히 연희단거리패라는 한 극단의 둥지를 넘어 우리나라 지방 연극계를 대표하는 예술창작촌으로 자리잡았다. 매년 여름 이곳에서 열리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지방축제의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몇 년 전 문을 연 김해 도요마을은 창작과 배우 훈련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연희단거리패의 30년 역사는 서울과 지방을 중앙과 변방으로 나누는 기존의 이분법적 문화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을 제시한 의미 있는 행보라 할 수 있다.

연희단거리패의 30주년 기념작 <방바닥 긁는 남자> / 연희단거리패

해마다 서울과 지방, 해외를 오가며 신작과 레퍼토리 공연을 번갈아 올리느라 분주한 극단이지만, 창단 30주년을 맞은 올해 연희단거리패는 특별히 의미 있는 작품들로 1년 스케줄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12월까지 쉼 없이 이어지는 30주년 기념공연의 첫 막을 여는 무대는 연희단거리패가 배출한 괴물작가 김지훈이 쓰고, 이윤택이 연출(초연 연출은 고 이윤주)을 맡은 2009년 작 <방바닥 긁는 남자>다.

연희단거리패 연극을 특징짓는 요소를 사회에 대한 날선 의식과 무대를 압도하는 에너지라 할 때, 이 두 가지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방바닥 긁는 남자>라 할 수 있다. 무대는 어느 허름한 동네의 낡은 단칸방, 여기 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네 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쉰 밥그릇 놓고 싸우기, 그리고 하릴없는 논쟁을 주고받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것뿐이다.

연희단거리패의 30주년 기념작 <방바닥 긁는 남자> / 연희단거리패

그런데 이 지독한 사회 부적응자들, 자칭 ‘누룽지형 인간’들이 펼치는 독설과 궤변을 가만히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들의 말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때로는 어눌하게, 때론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이들의 대사들이 어느 순간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역설적이면서도 날카롭게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밥그릇을 놓고 싸우는 이들의 탐욕과 폭력, 방 안의 권력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와 그에 따른 비굴한 모습들은 어처구니 없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그 자체로 우리 사회를 축소해 보여주는 듯 신랄하기 그지없다. 몇몇 대사들은 너무 현실적이라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다.

문화내시경

날선 관념과 구수한 해학이 묘하게 공존하는 김지훈 작가의 언어와 온몸으로 방바닥을 슬라이딩하면서 짜장면을 핥아먹을 만큼 몸 사리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거칠고 과감한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이윤택 연출의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요소들이 <방바닥 긁는 남자>를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무대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지난 세월 동안 연희단거리패가 꾸준히 지켜온 가치라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창단 30주년 기념작으로서 <방바닥 긁는 남자>의 의의를 떠오르게 한다. 2월 28일까지 게릴라 극장.

<김주연 연극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