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원의 에브리컬처]위험천만에 대처하는 우리의 미온적 자세

나는 세월호 사건 직후, 경찰 등 각급 유관기관에서 안전제일을 목 놓아 부르짖고 또 부르짖는 것에 힘입어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채 다시금 112에 전화를 하고야 말았다.

명색이 각종 문화 관련 에브리 글 쓰는 자 되어 다소 위험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TV 예능프로그램을 거의 보지 않는다. 딱히 무슨 신념 같은 게 있거나 해서 그런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손이 가지 않아서다. 어차피 식당, 사우나, 터미널, 역 대합실, 공항로비 등등의 공공장소에 설치된 TV에서 상시적으로 예능프로그램을 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내가 리모컨 버튼 눌러가며 찾아서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한국에 거주하면서 각종 예능프로에 노출되지 않은 채 살아간다는 것은 왕년 서태지의 전성기에 그의 음악을 안 듣는 것이 불가능하였듯, 불가능하다.

아무튼 딸아이를 낳고 평소 해오던 각종 아웃도어 행각 중단에 따른 금단현상에 시달리던 우리 부부는, 딸의 돌이 지나자마자 허겁지겁 유아용 자전거 트레일러를 구입해서 아이와 함께(라기보다는 자발적 인력거꾼 되어 아이를 모시고)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 창에 후배들이 선배들을 위한 메시지를 붙여 놓았다. | 강윤중 기자

송일국씨의 세쌍둥이 자전거 트레일러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횡단보도 같은 곳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주위에서 “송일국, 송일국” 하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예능 업계 현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나는 당연히도 그 이름이 왜 등장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도중, 함께 신호대기 중이던 한 중년부인으로부터 그 영문을 듣게 되었다. 어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송일국씨가 트레일러를 무려 세 개나 연결하고 거기에 세쌍둥이를 각각 한 명씩 태운 채 자전거를 타는, 거의 차력에 가까운 괴력을 만천하에 과시했던 바 있다는 것이었다. 그랬던 거로군. 역시.

그런데 그 영문을 알고 난 뒤에 무지몽매한 나의 머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자, 계산해보자. 송씨가 썼다는 그 유아용 자전거 트레일러의 제작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이를 태우지 않은 상태에서 트레일러의 무게는 약 14㎏이다. TV를 안 봐서 송씨의 세쌍둥이의 체중은 모르겠다만 아이 한 명당 대략 10㎏ 정도 나간다고 하면, 자전거에 매달린 하중은 도합 72㎏ 정도는 족히 나간다. 거기에 자전거 자체의 무게도 있다. 아무리 초경량으로 설계된 도로 사이클이라고 해도 최소한 8㎏ 정도는 나갈 것이므로, 송씨는 얼추 80㎏ 정도의 무게(얼추 쌀 한 가마니)를 그 근육무쌍한 한 몸에 매단 채 자전거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는 얘기인데, 같은 자전거 애호가 겸 유아용 자전거 트레일러 이용자로서 내가 그 SF하고도 슈퍼한 차력 라이딩 행각에 자극받고 감정이입되었냐 하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① 트레일러 세 개를 안전하게 연결하려면 개조 비용이 만만찮았을 것 같은데, 그만한 투자의 가치가 있었을까? 왜냐면 ② 현역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라도 쌀 한 가마니를 매달고 달리면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할 텐데, 트레일러에 탄 아이들이 그 느린 속도를 참을 수 있을까? 뭐, 어쨌거나 ③ 자녀들까지 대동한 채 그런 SF풍의 퍼포먼스까지 해야 하는 걸 보면, 한국의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정말이지 험난한 직업이구나, 등등의 쓸데없는 생각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뭐, 예능프로그램 촬영 중인 송씨의 자전거 트레일러(라기보다는 트레인)야 카메라·마이크·조명 등등의 장비를 이고 진 스태프들의 1차 방어진, 그리고 그 현장을 에워싼 채 구경하는 행인들로 구성된 2차 방어진 등등으로 인해 위험에 거의 노출되지 않을 것이겠다만, 실생활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평화롭고도 안전하게 제 갈 길 가고 있는 자전거도 별 이유 없이 위협하고 지나가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개성적 운전습관이야 익히 알고 있으니 아이를 태우고 차도로 나서는 건 당연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다만, 인도로 다닌다고 해서 사정이 딱히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특히나 교통경찰의 다사로운 눈길 받아가며 각급 오토바이들이 당당하고도 호쾌하게 질주를 이어가는 우리나라의 인도(人道)에서는, 80㎏짜리 기차형 트레일러를 달고 서행하는 자전거는 재앙 그 자체다. 뭐, 방송을 안 봐서 모르겠으나, 필시 송씨 또한 3연발 트레일러를 끌고 이런 ‘현실세계’ 속에 혈혈단신 뛰어들진 않았을 것 같다.

어린이집 길목에 택시들의 불법주차
그러고 보니, 세월호의 비극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 하나가 생각난다. 당시 나의 서식지 근방에 있는 한 횡단보도는 손님을 태우려 차를 대놓은 택시들로 항상 붐볐다. 그런데 이 횡단보도는 두 곳의 어린이집으로 통하는 길목인지라 아이들로 항상 붐빈다. 횡단보도 앞의 택시들은 당연히 키가 크지도 않은 그 아이들을 가리고, 그 앞을 지나는 운전자들은 당연히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들을 잘 볼 수 없다. 그런 마당에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신호가 미처 바뀌기도 전에 튀어나가고, 운전자들은 운전자대로 신호가 바뀌기 전에 횡단보도를 빠져가려고 가속기를 밟아댄다. 정말이지 위험천만 그 자체다.

세월호 이전에도 그 광경을 보다 못해 몇 번이고 경찰에 전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택시들은 곧장 그 자리를 줄줄 뜨고, 5분은 족히 지나서 나타난 경찰은 “택시들 어딨어요?” 한마디만 하고 지나간다. 그 뒤, 그 자리를 또 다른 택시들이 금세 채웠던 것은 물론이다.

헌데 정말이지 무지몽매한 나는 세월호 사건 직후, 경찰 등 각급 유관기관에서 안전제일을 목 놓아 부르짖고 또 부르짖는 것에 힘입어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채 다시금 112에 전화를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112 콜센터 요원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이번‘만’은 저희가 가‘보기는 할’게요. 그런데 불법주정차 문제는 저희가 아니고 구청에 얘기하셔야 하는 일이에요. 다음에는 구청에 전화를 하세요.”(내가 아니고 당신들이 구청에 전화해서 조치를 하는 게 옳다. ‘유관기관 사이의 원활하고 긴밀한 소통’ 따위의 구호를 닳도록 읊을 그 시간에 말이다. 그러라고 우리 세금으로 당신네들 월급을 주고 있는 거 아닌가)

잠시 뒤 걸려온 순찰경찰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거기에 왜 택시들이 차를 대놓고 있어요? 손님 태우는 거예요? 아니면 쉬는 거예요?”(택시의 위도와 경도는 왜 안 물었는지 모르겠다)

이 얘기를 지인들에게 했더니, 대체 뭘 바라는 거야, 라는 핀잔만 잔뜩 돌아왔다. 확실히 나의 무지몽매의 정도는 기준치를 훌쩍 넘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원의 에브리컬처

아무튼 새삼 느꼈다. 우리 모두의 발밑을 흐르고 있는 이 어둡고 질척한 흙탕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도 넓다. 세월호 사건에서 우리가 느낀 슬픔과 절망이 그토록 깊었던 것은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한동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