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소신 판결할지 우려됩니다”

2011년 박보영 대법관 인사청문회, 각종 현안 ‘침묵’에도 통과 기정사실화

박보영 대법관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은 날은 2011년 11월 8일이다. 국회 회의록 시스템에 올라 있는 ‘속기록’을 보면 박보영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오전 10시3분에 개의해 그날 오후 6시5분에 끝난다.

18대 국회 때다. MB 정부 시기다. 당시 영화 ‘도가니’가 한창 뜨거운 이슈였다. 그래서인지 의원들의 질문에는 영화 도가니, 인화학교와 연관된 질문이 많다. 또 FTA와 골목상권에 침투한 재벌가 문제도 당시 주요 현안이었다.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던 때다.

2011년 11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박보영 대법관 후보자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

신건 당시 민주당 의원이 묻는다. “…일반 서민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일반 서민을 옹호해주는,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서 항상 그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 판결을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시겠는지 한 번 묻고 싶습니다.” 대법관 후보자 박보영.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은수 민주당 의원이 재차 물었다. “후보자는 특히 사회적인 소수자·약자의 권리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져야 되는 그런 소명감, 이걸 늘 말씀하셨는데요, 그런데 실제 이 현실에서 보면 사회적 약자가 소송을 통해서 권리를 구제받는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거 변호사 해보셨으니까 더 잘 아시겠지요?” “예.” “대형마트에 대해서 거리제한을 두고 영업시간을 제한해서 자영업자들을 보호하려는 것이 상생법 그리고 유통법 아닙니까. FTA가 이제 통과되고 나면 이 법의 운명은 어떻게 된다고 보십니까. 법률가로서 이것은 대답을 해주셔야 되는 거거든요.” 후보자 박보영. “….” 여성이나 장애인 문제를 제외한 사회 현안에 대해 그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의원들 질의의 수위가 높아진다. “오늘 답변하시는 태도에 비춰보면 정말 소신 있는 판결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사실은 우려를 합니다.”(민주당 이춘석 의원)

“한계는 부정할 수 없다. 형식적인 부분 이외에 판결기록을 받아보지만, 워낙 검증기간이 짧아 의미 있는 판결 위주로 자료를 청구해서 훑어보는 식이다.” 신건 당시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박 대법관의 인사청문회를 준비했던 오재훈 전해철 의원 보좌관의 말이다.

“청문회 날은 딱 하루 머리 조아리는 날”
이춘석 의원이 2013년 낸 책 <인사청문회와 그들만의 대한민국>을 보면 인사청문회를 받는 사람에게 청문회날은 “딱딱하게 굳은 목 푸는 날”이다. 평생 법관이나 교수로 살아온 사람들은 고개 숙일 일이 많지 않은데, 청문회 하루만 참고 통과하면 다시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의원의 책을 읽다보면 또 하나 인상적인 인사청문회 기록이 나온다.

“겸손을 가장한 초엘리트들의 잘난 척과 머리싸움이 지겨울 즈음, 나는 서면 답변서에서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 후보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판단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고 썼다. 이런 엘리트가 있나. 나는 단박에 그 답변에 마음이 빼앗겼다.(중략) 그의 인사말을 듣고 나는 개인적으로 청문회를 끝냈다.”(책 92~94쪽) 책에는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박보영 대법관이다. 이 의원은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이번에 헌재 통진당 판결에서 주심을 맡은 이정미 재판관도 그렇지만, 박보영 대법관도 당시에 괜찮게 봤던 것이 사실”이라며 형식적 다양성을 갖췄다는 이유만으로 철저하게 검증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의원은 “조직이 갖고 있는 전체적 생리적 속성을 떠나 소신을 갖고 갈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며 “대법관 개개인의 성향을 떠나 양승태 대법원장이 들어선 뒤 사법부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