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규의 노동여지도]동해삼척 향토기업의 비정규직 부려먹기

동양시멘트는 불법 파견은 노동부나 법원에서 판결할 문제이지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 하청업체 교섭에서 임금 인상을 해줄 테니 불법파견 진정을 취하해달라고 하고 있다.

2014년 마지막 날 눈발을 헤치며 태백산맥을 넘는다. 제설차량 두 대가 밤새 쌓인 눈을 밀어내며 비탈길을 힘겹게 오른다. 이른 새벽의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이들은 공무원일까, 하청노동자일까? 누군가는 길을 닦고, 누군가는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이 길을 달린다.

국내 최초 시멘트회사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에서 야간근무를 마친 노동자들이 우체국 사거리에 모여 있다. “동양시멘트가 향토기업이라고? 힘들어서 못살겠다”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모두 하청노동자들이다. 삼척과 동해공장에 정규직 781명, 사내하청 721명이 일한다. 정규직은 한국노총이고 비정규직은 지난 5월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버스 운전기사가 차창으로 손을 내밀어 홍보물을 받아들며 인사한다.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친척들인 작은 어촌마을이다.

삼척우체국 앞에 모인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노동자들. | 박점규

동양시멘트 맞은편 근로자복지회관 1층 구석진 사무실. “저 셋째 생겼어요. 7주 됐어요.” 안영철 사무국장의 깜짝 발언에 축하 박수가 쏟아진다. 노조 하느라 바쁜데 언제 만들었냐는 둥, 비정규직 월급으로 어떻게 사느냐는 둥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밤샘근무를 하는 조합원들이 퇴근하지 않고 성토대회를 연다. “동양 관리자가 우리한테 바로 시말서를 쓰라고 했어요.” “회사버스 타고 출근하는데 원청에서 음주 측정을 해서 징계를 하고 월급을 깎았어요.” “명절에 하루 쉬려면 동양 사무실에 불려가서 사유서를 써야 휴가를 줬어요.” “출근부가 동양시멘트와 하청업체 2개인데 둘 다 서명을 했어요.” “동양 직원이 부족하면 우리가 나가서 일을 하고 동양의 작업일보에 기록했죠.” 현대차 사내하청은 정규직이라는 법원의 판결문에 나온 명백한 불법파견 증거들이다. 심지어 하청업체 실체를 인정할 수 없는 위장도급의 증거들이 수두룩하다.

불법파견 진정 조사 미루는 노동부
동양시멘트는 자회사인 동양파워가 삼척 화력발전소 사업자로 지정되기 위해 원청뿐만 아니라 하청직원까지 동원했다. 주민동의서를 받으러 다니면 일도 빼줬다. 김경래 부지부장은 동의서를 많이 받아 원청 대표이사에게 표창장도 받고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동양파워가 사업자로 선정되자 회사는 성과급으로 정규직 200만원, 하청 100만원을 줬는데, 하청에게 1만원씩 떼서 정규직 노조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냈다.

노조는 6월 26일 태백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을 조사해달라는 진정을 냈다. 그런데 노동부는 동양시멘트 원청, 하청업체, 노조의 3자 특별 교섭을 중재하면서 조사를 차일피일 미뤘다. 정규직과 혼재작업을 하고 있는 공정만 불법파견이라는 얘기를 흘렸다. 특별 교섭 중인 어느날 조합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담당 조사관이 동일 신동희 사장과 술 먹고 대리운전을 불렀다는 얘기였다. 노조는 춘천지청으로 달려가 항의했고 조사관이 바뀌었다. 지역 유지들의 자녀가 정규직으로 뽑혀가고 회사 뒤를 봐주는 60년 향토기업의 천태만상. 노동운동이 활발한 대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다.

1월 초 불법파견 조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최근 법원이 제조업 사내하청의 모든 업종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했지만 고용노동부 행태로 봐서 안심할 수가 없다. 노동부 태백지청에서 진행된 특별 교섭 마지막날, 동양시멘트 경영사업본부장은 자신들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고 불법파견은 노동부나 법원에서 판결할 문제이지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 하청업체 교섭에서 임금인상을 해줄 테니 불법파견 진정을 취하해달라고 하고 있다. 최창동 지부장은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이를 앙다문다.

동양시멘트 46광구 석회석을 분쇄하는 해머크레셔. | 박점규

인근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는다. 동료 부친상에 가려고 양복을 입고 나온 조합원이 분통을 쏟아낸다. 사소한 일로 시말서를 쓰라며 노조원들을 괴롭히는 하청업체 현장소장이 이번에는 상갓집 지원 휴가를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 노조 간부들이 현장소장이 있는 46광구로 향한다.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다. 노동조합이 없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던 일이다.

최창동 지부장이 46광구를 안내한다. 야구장 벤치를 닮은 광산에 구멍을 뚫고 화약을 넣어 발파하면 석회석이 쏟아진다. 그는 락덤프(굴절식 덤프트럭)로 석회석을 실어 해머크레셔로 보낸다. 분쇄된 석회석이 컨베이어를 타고 공장으로 흘러가 화학약품과 섞여 시멘트를 만들어낸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발파에서 시멘트 출하까지 하나의 공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46광구는 1993년 세계 최대 수준인 1000만톤 생산 시대를 열어 동양그룹을 먹여 살린 곳이다. 최 지부장은 그해부터 20년 넘게 일했지만 가난한 하청 인생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20년 동안 동양시멘트를 지켜온 46광구는 2016년 화력발전소로 변신한다. 20년 넘게 동양을 키워놓은 하청 인생도 노조를 통해 새롭게 변신할 날이 머지않았다.

조직률 90% 넘는 삼척시 공무원노조
삼척시청 앞마당 공무원노조 천막. 새누리당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공무원연금 개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조합원들이 천막으로 모여든다. 공무원노조 심우청 삼척지부장은 1997년 7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18년이 됐다. 16년을 더 근무해 6급으로 퇴직하면 60세부터 230만원 정도 받는데, 정부는 180만원으로 깎아 65세부터 지급한단다. 연금이 개악되기 전에 퇴직하면 어떻겠느냐는 선배들의 문의가 잇따른다. 그런데 정부는 기금 조성 등의 명목으로 현재 연금수령자의 급여도 줄이는 방안을 내놓았다. 조기 퇴직을 해서 월급 못 받고 연금도 깎이느니, 함께 싸워서 연금 개악을 막아내자고 얘기한다. “강원도에서도 동해, 삼척은 새누리당 텃밭이에요. 그런데도 거리에 나가면 반응이 좋아요. 먹고 살기 힘든데 연금을 깎으면 안 된다고 하세요.”

비정규직 세상이 되다보니 공무원이 부러운 직업이 됐지만, 여전히 온갖 잡일은 도맡아 한다. 봄가을에는 산불과 축제, 여름에는 장마와 태풍과 해수욕장, 겨울에는 폭설로 주말과 휴일마다 공무원들이 동원된다. 얼마 전 AI 경계 초소근무 때도 24시간 보초를 섰고, 동해안 해돋이 행사도 가야 한다. 5000원이던 수당이 노조 만들고 싸워서 5만원으로 늘었다.

삼척시 공무원 800명 중 공무원노조 조합원은 650명이다. 사무관을 빼면 조직률이 90%를 넘는다. 강원도는 보수적인데 공무원노조는 전통적으로 진보적이고 강성이다. 2004년 공무원노조 총파업 때 강원본부만 200명이 직위 해제됐다. 삼척도 72명 직위 해제에 15명이 파면됐다가 시의원인 이광우 전 지부장을 빼고 모두 복직했다. 하지만 전국에서 135명이 해직 상태다.

공무원노조 삼척지부 농성장. | 박점규

공무원도 비정규직 사각지대가 아니다. 삼척시 공무원이 1997년 1100명가량 됐는데 지금은 800명이다. 300명은 기간제와 무기계약직이다. 관광시설에 많다. “전임 시장이 비정규직을 너무 늘렸어요. 높은 사람들 측근들이 들어오기도 했고요. 책임지고 일할 수 있도록 신규 채용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운용 사무국장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5월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이 노조 설립 신고서를 들고 시청에 들어왔는데 담당자가 없어 공무원노조를 찾았다. 알고 보니 동네 선배였다. 출장계획을 바꿔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부터 사회 보는 법까지 노조 활동의 기초를 알려줬다. 삼척시 시민회의장은 하청노조의 총회 장소가 됐다. 화력발전소와 LNG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플랜트노조원들이 8시간 노동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청을 항의 방문했다. 과거에는 전 직원이 나와 청사를 방어했는데, 이제는 화장실도 이용하고 전기도 쓰게 한다. 새누리당까지 합세해 6개월 동안 계속된 삼척 핵발전소 반대 집회는 노동자와 세월호 집회를 만났다. “지역의 공무원노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은 걸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삼척 핵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 기획홍보실장인 이광우 삼척시의원이 천막에 들어온다. 대명리조트 발파공사 때문에 화난 산골마을 노인들의 분통을 듣고 오는 길이다. 삼척시민들이 지방자치 역사상 처음으로 ‘반핵’ 시장을 뽑고 주민투표를 통해 85%로 핵발전소를 거부했다. 삼척의 영향을 받아 영덕군의회가 정부지원금 130억을 거부했다. 영덕까지 주민투표가 성사되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자 검찰은 경찰의 불기소 의견을 뒤집고 삼척시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밀양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노조원 빼앗아 간 어용노조 설립 취소
해안도로를 타고 동해로 향한다. 2014년의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민주노총 동해삼척지부 김동환 사무차장이 지난밤 교통사고로 입원했다. 근무를 마친 노동자들이 찾아온다. 휴게실이 회의실로 변했다. 올 한 해에만 동양시멘트, 동부메탈, 장애인재활시설, 골프장, 동해화력 환경미화에서 노조가 만들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공과 제조업을 가리지 않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상보대경산업은 조합원이 5명뿐이지만 1년 넘게 싸워 체불임금을 돌려받고 고용 보장받고 노조 사무실도 받았다. 축하의 인사가 쏟아진다.

1964년 삼척산업에서 시작해 합금철 분야 국내 1위인 동부메탈에도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졌다. 4개 업체 228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중 거성과 만복이라는 업체 노동자들이 나섰다. 원청이 거성을 다른 업체로 바꿔 근로계약서를 쓴다는 소식에 병문안 왔던 조합원들이 급히 회사에 들어갔다. 장비를 운용하는 만복은 80명 중 50명이 노조에 가입하자 극심한 탄압을 자행했다. 6주 동안 매일 출근투쟁을 진행하고 시내 행진을 벌였다. 현재 36명이 남아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동부는 대기업이니까 좀 낫겠지 하고 들어왔다가 젊은이들이 못 버티고 나갑니다. 일은 너무 힘든데 연장을 다 해도 200만원이 안 되니까요. 노조 하기 전까지는 산악회, 축구회도 강제로 시키고 7시 출근인데 6시20분에 조회를 했죠.” 정의균 지부장은 연장근무와 강제로 삭감된 상여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발전노조 동해화력 김호 지부장이 12월 31일자로 해고된 청소노동자와 함께 들어온다. 원청은 때가 되면 업체를 바꾸고, 만년 소장은 말 안 듣는 사람만 자른다. 공기업이 15년 동안 일한 지역 주민을 쫓아내는데 가만있을 수 없다. 못된 소장과 어떻게 싸울지 머리를 맞댄다.

민주노총 동해삼척지부 김동환 사무국장이 회사가 만든 어용노조 설립이 취소되고 민주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됐다는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한다. 사건은 이랬다.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두성의 130명 중 80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자 하청 관리자들 주도로 복수노조를 만들었다. 민주노총 가입하면 동양 정규직 절대 안 된다, 정규직 아버지도 쫓겨난다, 연말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다 자른다며 회사 노조에 가입하라고 협박한다. 40명이 넘게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 노조가 다수 노조가 됐다.

10월 15일 김동환 사무처장은 회사 노조가 총회를 하지 않고 서류를 날조했다며 삼척시청에 ‘노조 설립 직권취소’를 촉구했다. 녹취록도 제출했다. 두성기업노조가 이의를 제기하자 삼척시는 청문을 하기로 했다. 12월 19일 회사와 어용노조는 임단협을 체결했다. 삼척시는 노무사를 선정해 청문회를 열었고 12월 29일 노조 설립신고를 취소시켰다. 12월 31일 중앙노동위원회는 ‘과반수 노조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민주노총 두성지부를 교섭대표노조로 인정했다. 회사 힘을 이용해 어용노조를 만들고 교섭권을 가로챘던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만날 얻어터지던 꼬맹이가 힘 센 놈을 멋지게 한 방 먹인 것이다.

박점규의 노동여지도

병원을 나와 동부메탈을 찾았다. 2014년 마지막 날 동부그룹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김준기 회장은 아들에게 물려준 동부화재 지분을 내놓지 않고 그룹을 키워준 동부제철과 동부메탈을 버렸다. 동부메탈을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노동자들과 동해시민들도 버렸다. 2015년 새해가 밝아온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이 재벌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지 않고, 노동자의 앞길에서 훤히 밝히는 날은 언제쯤 밝아올까?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