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세월호를 결코 잊을 수 없어요

전국 각지서 ‘기억의 움직임’ 확산… 자발적 시민모임으로 발전도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12월 13일 저녁, 경기도 파주시 교하도서관 소극장에서 김민기의 ‘상록수’가 울려퍼졌다. 군사독재 시절 금지곡이었던 ‘상록수’는 1980년대 민주화 세력이 애창했던 노래다.

이날 이곳에서는 ‘세월호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가 열렸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파주 주민모임이 주최한 행사다. 120명 정도 들어설 수 있는 소극장에는 통로까지 의자를 놓고 앉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지난 9월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음악회의 사회를 맡은 최석진 성공회 신부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기억’에 초점을 맞춘 음악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주제에 맞게 참여해준 음악가들도 상록수뿐만 아니라 그리스에서 저항가요로 널리 불린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망각) 등을 연주했다. 세월호 유가족 한 분이 직접 참석해 세월호 특별법의 의미를 설명하는 등 뜻 깊은 시간이었다.”

유민 아빠의 단식이 ‘불씨’ 지펴
11월 7일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특별법 통과 이후 세월호 유가족들은 한동안 주변인들로부터 “요새는 활동이 뜸하시네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법 통과 이후 세월호와 관련한 뉴스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있다. 12월 13일 대전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워크숍이 열렸다. 이튿날에는 제주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침묵행진이 열렸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도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70여명이 조를 짜서 시민들이 기다리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간다. 하루에 적게는 2~3곳, 많게는 10곳 이상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측은 “우리를 위해 울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세월호 진상규명의 의의에 대해 정확히 설명을 들은 바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간담회가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세월호 가족대책위 홈페이지에는 2014년 연말까지 진행되는 갖가지 행사를 확인할 수 있다.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하던 올해 7월부터 일부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세월호 이야기 좀 그만하자’는 목소리가 강해졌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대중운동도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외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목숨을 건 45일간의 단식이 다시 한 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약한 불씨로 전락했다고 생각한 세월호 추모운동도 다시 살아났다.

김영오씨의 단식이 보름을 넘어서면서부터 전국 각지에서 동조단식이 늘어났다. 세월호 국민대책위에 따르면 8월 23일까지 전국적으로 2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조단식에 참여했다고 한다.

대구 북구에 사는 구완모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구씨는 김영오씨가 단식을 중단하기 직전인 8월 26일부터 다른 대구시민 3명과 함께 대구백화점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12월 13일 경기도 파주시 교하도서관에서 열린 세월호 음악회에서 향기로운이웃 합창단이 노래를 하고 있다. | 파주주민모임

구씨는 단식농성 이후 자발적인 시민들의 발걸음이 다시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동조단식을 하기 전에도 꾸준히 지역 시민단체들과 촛불을 들었고, ‘별들과의 동행’이란 이름으로 팽목항 도보순례도 진행했다. 그런데 동조단식을 하고 난 이후에는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분들이 집회에 많이 참석을 해주셨다. 그분들이 지금도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구씨는 “세월호 참사를 보며 돈과 아이들의 생명을 바꾼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많이 와주셨다. 진상규명 과정도 시민들과 함께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 나눔교회의 김창규 목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틈나는 대로 서울 광화문을 찾았다. 김영오씨가 단식 도중 병원으로 이송된 이후인 8월 25일에는 동료 개신교 목회자들과 함께 10여일간 동조단식에 나섰다. 9월 15일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304명의 개신교 목회자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철야기도회를 열었다.

“특별법 제정됐다고 끝난 것 아니다”
김 목사는 “그동안 한국 개신교가 여러 가지 사회적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세월호 동조단식 농성장에서 성결교회, 순복음 등 소위 말하는 보수적인 개신교도들도 여러 분 만났다.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개신교도가 생명을 위해 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뜻깊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김 목사는 주말 예배시간에 세월호 문제와 한국 사회의 안전을 자주 이야기했다. 특히 김 목사는 구약성경의 아모스서를 많이 인용했다고 말했다.

구약성경 속의 아모스는 이스라엘 지배층의 타락과 형식적 예배에 물든 교회를 통렬히 비판한 예언자였다. 아모스서 5장 24절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구절은 군사독재 시절부터 김 목사와 같은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에도 이 대목이 차용됐다.

김 목사는 “정의가 바로서려면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다고 해서 세월호 참사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부적절한 조사위원 논란도 일고 있는데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잊지 않고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파주 주민모임은 세월호 추모운동을 넘어 자발적인 시민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다. 5월 초 세월호 참사에 슬픔을 느낀 몇몇 파주 시민들이 네이버 밴드에 ‘파주 촛불 추모’ 밴드를 만든 게 시작이다. 이후 최석진 신부 등 파주 각지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시민들이 하나둘씩 가입했다.

8월 4일부터 10월 2일까지는 모임 회원 2명을 시작으로 하루 최대 5명씩 릴레이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이 기간 중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12월 19일 현재 가입자가 300명이 넘는 사실상의 시민단체로 발전했다.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파주 주민모임 가입을 권유해왔다는 박미순씨(가명)는 “세월호 침몰이 게으른 아줌마 한 사람을 움직였다. 작은 변화의 씨앗 하나가 우리 마을에 뿌려진다면 세월호로 희생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파주 주민모임 회원들은 매주 총회를 열어 비리교사 문제, 지역 농민의 어려움 등 현안을 공유하고 행동방향을 토의하고 있다. 지역언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독자적인 협동조합 언론 ‘파주에서’를 창간했다.

최석진 신부는 “세월호 관련 도보행진이나 단식농성에 참여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느꼈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모임을 시작했지만 이제 우리 동네에서부터 민주주의 실험을 해보자는 취지로 모임을 발전시키려 한다”고 설명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