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비긴어게인-거대 음반사의 불공정한 ‘매절계약’

“이거 진짜 모험 아니에요?” “뭐든 저질러야 마법이 일어나지.”

망설이는 그레타(키아나 나이틀리 분)에게 음반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 분)이 제안을 한다. 네 노래 정말 좋다고, 그래서 너를 스타로 키울 자신이 있다고. 하긴 두 사람은 더 잃어버릴 것도 없다. 남자친구를 위해 곡을 써주던 그레타는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면서 혼자가 됐다. 발굴한 유망주마다 실패했던 댄은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잘렸다.

존 카니 감독의 <비긴 어게인>은 인생 최악의 날에 만난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음반을 만드는 이야기다. 허름한 카페에서 무너져 내리던 댄의 귀에 그레타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어 스텝 유 캔트 테이크 백>(A Step You Can‘t Take Back). 그레타가 친구 때문에 억지로 무대에 불려 나가 마지못해 부르는 노래다. 댄의 눈이 번쩍 뜨인다. 진짜로 부르고 싶은 노래, 진짜로 만들고 싶은 노래를 위해 두 사람은 다시 시작한다. 녹음 스튜디오를 마련하지 못한 댄은 현장 녹음에 도전한다. 뉴욕의 뒷골목,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옥상, 지하철 승강장, 차이나타운 등 어디든 즉석 스튜디오가 된다.

댄과 그레타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꼽고는 뉴욕의 밤거리를 활보한다. 이어폰을 통해 두 사람은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댄은 말한다. “음악이란 건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만나게 해주는 마법 같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댄과 그레타가 만든 데모앨범은 거대 음반사도 사로잡는다.

음반사가 제안하는 계약은 그레타 1, 제작사 9다. 그레타는 불만스럽다. “음반사는 데모테이프 만드는 데도 단 한푼도 안 썼는데 왜 9를 가져가나요?” 제작사 사장은 말한다. “최고의 스태프들이 당신 음반 판매를 도울 겁니다. 원래 음반계는 다 그래요.”

그레타의 선택은 아이튠즈였다. 그레타는 제작사와 계약을 맺지 않고 1달러에 음원을 아이튠즈에 올린다. 전 세계의 네티즌들을 상대로 직접 자신의 곡을 팔겠다는 것이다. 아이튠즈는 애플이 2007년 선보인 음원유통 플랫폼이다. CD나 LP를 발매하면 제작비와 유통비, 인건비가 든다. 하지만 아이튠즈는 별도의 유통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싼 가격에 음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레타가 거대 음반제작사가 아닌 아이튠즈를 택한 것은 1대 9로 맺는 계약이 불합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레타가 받는 1달러는 작곡가로 봐서는 손해보는 게 아니다. 앨범을 10달러에 파는 것과 같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최근 국내 출판계에서 ‘매절계약’이 논란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절계약을 불공정계약이라며 국내 주요 출판사들에 불공정약관을 시정하도록 요구하면서다. 매절계약이란 출판사가 저작자에게 일정 금액만 지급하고 나면 향후 저작물을 이용해 얻는 수익 전부를 독점하는 계약이다. 예컨대 저자에게 200만원을 인세로 준 뒤 모든 저작권을 출판사가 가져가는 형태다. 매절계약은 출판업계의 오랜 관행이었다. 출판사들이 저작자에게 일반적인 시세를 훨씬 뛰어넘는 돈을 주는 게 아니어서 관련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둘 경우는 ‘노예계약’이 돼버렸다. ‘구름빵’ 저작자인 백희나 작가는 구름빵이 TV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면서 44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지만 고작 1850만원을 손에 쥐는 데 그쳤다. 영국의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로 1조원 이상 벌어들이면서 영국 여왕보다 더 부자가 된 것과 대조됐다.

영화 속 경제

<비긴 어게인>은 음악적 동지가 된 그레타와 댄의 키스장면이 없어 심장을 더 쫄깃쫄깃하게 하는 영화라는 평이 적지 않다. 하지만 원래 영화의 끝부분에 그레타와 댄의 키스장면이 있었다고 한다. 감정의 여운을 위해 편집했다. 만약 키스장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