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실종된 정치를 찾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악화되는데도 보이지 않는 야당, 밀양ㆍ쌍용차 등 국민들의 삶에서 유체이탈한 지 오래된 정치, 지금도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엔 ‘시늉’뿐이고 표만 계산하고 있다.

정상적인 야당이라면, 그랬어야 한다. 팽목항에 천막 하나를 치고, 실종자 가족들 곁에서 상주했어야 한다. 실종자 가족들이 법률상담이 필요하다고 하면 법률상담을 지원해주고, 의료지원이 필요하다면 전국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의료지원을 진행해야 했다. 민간 자원봉사자들에게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야당이 그 역할을 했어야 했다.

정부의 눈치를 보는 언론이 현장에서 잘못된 보도를 하면, 야당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이 나서 유족과 희생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했다. 정보가 제대로 돌 수 있도록 정보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정보의 통로가 됐어야 한다. 127명의 국회의원들 중 일부는 팽목항에서 유족과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일부는 서울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자료를 발굴하고, 또 일부는 거리의 집회 현장을 찾아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개별 의원 차원이 아니라, 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됐어야 할 일들이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 뒤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복경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세월호 참사에서 야당이 보이지 않았다며 이와 같이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했다. 승무원, 선박회사가 1차 가해자지만 생존자 구조와 사건 대처가정에서 정부도 분명한 가해자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정부에 맞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으며, 이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는 정치집단이 필요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일차적 피해자, 2차적 피해자, 그리고 이 사건으로 고통받는 전체 국민들에게 정치가 나와 무관한 게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어야 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악화되는 과정에서 그 역할을 해야 할 제1야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와 청와대가 대치할 때도 안 보여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를 바꿔야 한다, 바꾸고 싶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의 시선은 반사적으로 야당으로 향한다. 정부·여당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대안으로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시선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은 오래 묵은 국가권력의 부패와 자본의 폭력이 제 무게를 주체못해 무너지면서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다. 야당은 국민들이 국가권력 및 자본과 대치하는 곳, 그 양자 사이에 위치해야 한다. 사고가 난 지 나흘이 지난 4월 20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유족들은 직접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청와대로 향했다. 유족들이 ‘직접 대통령을 만나야겠다’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야당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진도대교에서 유족들의 앞을 경찰의 방패가 막아섰고, 이들이 직접적인 대치를 벌이는 상황에서도 야당은 없었다.

이러한 장면은 한국 정치에서 매번 반복돼 왔다. 7년간의 싸움을 이어가는 밀양 송전탑 현장에서도 야당은 없었다. 이계삼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은 정치란 주민과 국가를 매개하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국을 맞지 않기 위해서 중재를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고, 야당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몇몇 개별 의원들의 선의 외에는 당 차원에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밀양 송전탑 문제를 해결하고자 관심을 가지는 일은 없었다. 그저 형식적인 시늉에 불과했다. 이 사무국장은 “정보, 인맥, 자금, 모든 것들에서 밀양 주민들은 한전과 정부에 비해 열세에 있다. 이러한 비대칭 상황을 공론화를 통해서 힘의 관계가 아니라 논리의 관계로 전환시켜주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고, 야당은 일종의 보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싸움에서 야당은 보정자도 아니고 판관도 아닌, 그저 비대칭적인 힘의 관계를 그대로 추인해주는 일만 했다”고 말했다.

지난 7년의 싸움에서 ‘보정자’로서의 야당을 더는 기대하지 않는 이 사무국장은 세월호 참사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그저 관성대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깊다. 이 사무국장은 “일반인들의 삶에서 유체이탈하는 것이 오늘날의 정치다. 정치가 실종된 것이 세월호 사건의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사실은 정치가 대수술되어야 하는 것이고, 스스로 새 판을 짜야 하는 일인데, 그저 세월호 선장이나 희생양으로 만들고 안전파시즘을 강화하는 등 통제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야당이 ‘중재자’로서 정치력을 발휘한 적도 있다. 파업 종료의 극적 타결로 ‘이것이 정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철도노조의 파업 중단이다. 그러나 그 타협물로 내놓은 철도소위는 아무런 성과도 발휘하지 못하고 끝났다. 박흥수 공공운수노조 객원연구위원은 이를 ‘정치의 실족사’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철도소위를 만들었으면 이를 뒷받침해주는 정책적 대안을 수혈해주고 국정에 책임을 지는 대안정당으로서 정책 능력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야당은 그 당시 안철수 의원과의 단일화에만 매몰돼 있었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적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지만 제도정치권에서 이를 받아낼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철도소위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야당은 자료와 돈, 관료시스템을 장악한 여당에 비해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에 맞서는 치열한 정책적 고민과 대안으로 돌파하는 끈질김이 필요한데, 그런 것들이 없다는 것이다.

보정ㆍ중재 역할은커녕 추인 역할만
국가권력과 자본의 논리 앞에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린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에 야당이 이처럼 ‘시늉’만 하는 것은 ‘표 되는 것’에 줄타기만 해왔기 때문이다. 표가 될 것 같으면 야당은 기억했고, 표가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야당은 잊어버렸다. 25명을 죽음으로 내몬 쌍용차 사태에서도 야당의 적극적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창근 쌍용차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정치권은 제도와 법으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야당이 그러한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야당에 대한 몇 번의 기대와 실망 끝에 이창근 실장이 내린 결론은 야당이 ‘(정리해고 문제가) 표가 안 된다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저 정국 자체를 일정하게 지분을 가지고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쌍용차 국정조사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야당은 대선에서 패배하자, 내부평가를 통해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좌클릭을 지목했다.

여객선침몰 진도 찾은 안철수공동대표 | 연합뉴스

이 실장은 표의 득실을 따지며 대선 전과 후 표변해버린 이 정당에 쓴웃음을 지었다. 반면 쌍용차 문제와는 달리 을지로위원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수많은 중소 사업장들을 표로 이해한 것이고, 쌍용차에서 제기한 정리해고 문제는 표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도 부정과 비리, 부패 관행을 뿌리뽑아야 하고, 이건 제도로서 바꿔야 하는 것들이다. 쌍용차의 경우로 미뤄봤을 때 정리해고 문제라든지, 노동자들의 죽음의 문제 등을 야당이 제도로 손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야당의 대응 또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2일 유경근 세월호 유가족 실종자가족대책위 대변인은 “가장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잊혀지고, 우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잊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유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2학년이었던 딸을 잃었다.
유가족들의 이러한 두려움에는 야당의 몫도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에 한국 사회가 슬픔에 빠져 있는 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분 나누기식 광주 전략공천으로 내홍을 빚었고, 대통령의 담화에 유족들은 “우리가 버려졌다”는 비탄에 빠졌음에도, 김한길 대표는 “대통령의 사과가 국민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변화 길잡이 될지 장애물 될지 기로에
세월호 참사 이후에 대한 한국 사회의 고민은 깊어졌고, 무엇이라도 해보고자 하는 개별적 걸음들은 분주해졌다. 자원봉사, 개인적 발언, 주말마다 열리는 촛불집회 등이 그것이다. 서복경 연구위원은 “이런 에너지들이 올바른 대안을 중심으로 결집될 수만 있다면, 정치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고민과 걸음들은 구심점이 되어야 할 야당으로 좀처럼 모아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정치가 건강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 연구위원은 “정상적인 정치체제라면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제2당, 제3당의 지지율이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정치 에너지가 정당체제 안에서 환류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여파로 여당이 악재를 맞이했음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20%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세월호 참사 이후 30%대로 하락한 뒤 5월 둘째 주에 다시 40%대를 회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갤럽이 5월 둘째 주에 현재 지지하는 정당을 물은 결과 새누리당 40%, 새정치민주연합 24%, 통합진보당 2%, 정의당 1%, 기타 정당 1%, 없음/의견유보 32%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잔뜩 움츠린 가운데에서도 경제적 상황에 따라 국면은 조금씩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조심스런 자신감을 내비치도 했다. 한 관계자는 “연말에 갈수록 경제적인 상황이 나빠질 텐데, 그때까지 세월호 이야기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가장 빠른 길은 정치를 통하는 것이다. 좋은 의회를 구성하고 좋은 공직자를 선별해 앉히는 일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가시적 대안이 없으면 유권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없다. 쌍용차 노조는 다가올 7·30 재·보선에서 평택지역에 직접 후보를 선출해 내보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실세였던 임태희 전 의원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어차피 정부·여당과 쌍용차 사이에 야당이 나서는 경우는 없었다. 대안이 없어 스스로 후보를 내겠다고 한 쌍용차 노조의 모습이 현재 야당의 현주소다. 야당 후보를 선택하기보다 직접 자신들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대안이 없어 다른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경우는 차라리 나은 편이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치로부터 철수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변해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외침에 야당은 스스로 길이 되어줄 것인지, 길을 막아설 것인지 시험대에 올라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