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이건 아니지’ 40대 뿔났다

여야 후보에 비교적 고른 지지 보냈던 중년층 ‘세월호’ 전과 후 분위기 급변…

“최종 책임자 박근혜 대통령 무능한 구조에 실망” 한 달 새 긍정평가 22%p 급락

김성희씨(가명·45)는 중1과 고1 학생을 둔 평범한 주부다. 김씨는 지난 5월 17일 서울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내년에 우리 자식들도 수학여행을 가는데 집에서 앉아만 있으면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만 같아서 나왔다”며 “작은 힘이지만 정부에 반성을 촉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안산 단원고 학생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는 김씨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동질감도 있었지만 어느 정치인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고를 기점으로 40대 민심이 출렁이고 있다. 여야 어느 쪽에 일방적으로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 40대가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에 싸늘해졌다.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2010년 6월 2일 서울 상계동 노원초등학교에 마련된 한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길게 줄지어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직무수행 부정적 평가 52%에 달해
2012년 대선 결과를 보면 젊은 층인 20대와 30대는 문재인 후보에게 67.6%와 69.1%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31.8%(20대), 30.1%(30대)에 그쳤다. 반면 50대의 64.5%와 60대 이상의 76.8%가 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으며, 문 후보는 34.3%(50대)와 23.0%(60대 이상)를 얻는 데 그쳤다. 40대에서는 반반으로 갈렸다. 40대의 46.1%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고, 53.3%가 문재인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여야 후보에 비교적 균형잡힌 지지를 보냈던 40대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 철회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사고에 대응하는 정부를 보고 40대가 단단히 뿔난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의 5월 19∼22일 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본 40대는 39%밖에 되지 않았다. 부정적인 평가는 52%에 달했다. 부정평가 이유로는 ‘세월호 사고 수습 미흡’(31%)이 가장 많았고, 리더십 부족·책임 회피(12%), 소통 미흡(10%) 등이었다. 참사 이전 조사인 4월 둘째 주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는 40대의 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가 61%였으며, 부정평가는 28%였다. 불과 한 달여 사이에 긍정평가는 22%포인트 급락했고, 부정평가는 24%포인트 급등한 것이다.

“대형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사후 구조의 책임은 국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에게 있는 것 아닌가. 구조과정에서 무능력을 보인 점은 당연히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회사원 김상원씨(가명·42)의 말은 40대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지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지만 40대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했다. 같은 기간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40대의 46%가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사과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만족한다’는 답은 36%뿐이었다. 한국갤럽의 허진재 이사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30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계속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고, 50대 이상은 세월호 사고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강하다”며 “유독 40대에서만 세월호 사고 전과 후의 조사 결과 편차가 심하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012년 9월 11일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국민안전본부 출범식에서 ‘안전’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40대의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은 여당의 텃밭인 영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제신문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월과 5월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부산지역 40대 유권자의 18.3%가 세월호 참사 이후 여당에서 야당(무소속 포함)으로 지지후보를 바꿨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40대는 다른 세대가 정부·여당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과 달리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세대”라며 “이번 세월호 참사에 따른 여파가 여당 강세지역이라고 비켜갈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40대 여성들이 정부에 더욱 까칠해졌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어머니가 바로 40대다. 이들 어머니가 겪는 고통을 누구보다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중·고등학생 자녀들을 둔 ‘40대 맘’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이전(4월 1∼2주)에 40대 여성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율이 62%였던 반면 사고 이후(5월 1∼2주)에는 43%로 떨어졌다.

‘40대 맘’ 더 냉담… 표심에 촉각
사실 40대 여성은 같은 연령층의 남성과 달리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가 높은 편이었다. 2012년 대선 당일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40대 여성 지지율은 40대 남성에 비해 7.3%포인트 높았다. 당시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실제 득표율이 남성은 백중세였지만, 40대 여성에서는 박 대통령이 문 후보보다 8∼10%포인트 더 얻은 것으로 자체 분석한 바 있다. 40대 여성들은 자녀들이 커가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안정 희구세력으로 변모하기 때문에 보수색채가 대체로 더 강한 편이다.

앞으로 주목되는 것은 ‘40대 민심’이 ‘40대 표심’으로 나타날 것이냐다. 최근 중앙선관위의 여론조사 결과, 40대 유권자 54.3%가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40대의 적극 투표층은 4년 전보다 3.9%포인트 높아졌다. 이번 선거에서 40대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21.7%(897만여명)로 각 세대 중 비중이 가장 높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40대가 정부·여당의 심판에 앞장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40대에서 10%포인트 이상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럴 경우 유권자 고령화에 따라 야당에 불리했던 요소들을 일부 만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 관계자는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 여론조사 결과가 반드시 투표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며 “실제로 40대가 투표장에 가서 야당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줄지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안다”고 말했다.

40대는 가정에서는 가장이자 직장에서는 중견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40대는 각종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세대다. 한마디로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가장 영향력이 큰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정치컨설팅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40대는 직장에서 팀장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팀장’”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