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월드컵 우표 속 태극전사처럼

우표는 본래 우편요금의 선납을 증명하는 ‘우표딱지’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그 안에 정치·경제·문화·역사가 담기면서 한 나라의 디자인 수준과 미적 감각을 드러내는 ‘3㎝의 예술’로 위상이 달라졌다.

스포츠의 역동성은 작은 이미지로 형상화하기에 알맞다. 그래서 각 나라의 우표에는 스포츠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최초의 스포츠 우표는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올림픽대회를 기념해 그리스가 발행한 12종의 우표세트다. 우리나라 스포츠 우표 1호도 올림픽 우표다.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에 첫 출전한 감격을 5원권(월계수와 태극기 디자인)과 10원권(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성화를 든 선수 그림)에 담았다. 대한민국 국호가 확정되기 이전이라 ‘조선우표’라고 표기한 것이 이채롭다. 그 이후 한국전쟁 중에 열린 제15회 헬싱키대회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해 서방국가들이 불참한 제22회 모스크바대회만 빼고 모든 올림픽 때마다 기념우표가 나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 스포츠 우표가 질적·양적으로 성장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81년에 발행한 대회유치 기념우표를 시작으로 열한 차례에 걸친 시리즈우표, 대회성공 기념우표 등 총 43종 2억3300만장의 기념우표가 쏟아졌다.

2002년 월드컵 기념우표에선 4강 기적의 감동과 열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1996년 5월 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되자 2종의 대회유치 기념우표가 나왔다. 그리고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염원하는 우표가 개막 직전까지 줄을 이었다. 축국도(蹴鞠圖·제기차기와 비슷한 동양의 고대축구 모습), 다양한 축구기술과 슛 장면, 개최도시 10곳의 경기장, 각 대륙의 열광하는 팬들 사진으로 축구선수를 형상화한 모습 등 다채로운 우표가 봇물을 이뤘다. 붉은 함성이 온 나라를 뒤덮고 꿈이 이루어졌다. 대회가 끝나도 흥분과 감동은 식을 줄 몰랐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리모니와 스물세명 대표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디자인한 우표는 지금 봐도 뭉클하다. 대회 유치에서 4강 신화까지의 과정이 56종 9530만장의 기념우표에 담겼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기념우표 전지. 우본은 6월 3일 두 종류의 월드컵 기념우표 110만장을 발행한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우표도 오래 기억될 듯 싶다. 숨 막히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은반여왕에 오른 김연아, 불모지인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을 일궈낸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쇼트트랙 강국의 자존심을 지킨 이정수, 성시백, 이효석, 곽윤기, 김성일, 이은별, 박승희 선수 등 11명이 우표의 주인공이 되었다. 생존 인물이 우표에 등장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선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수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황영조 선수, 월드컵 4강 주역들이 전부였다. 고인 중에는 프로야구 장효조 선수와 최동원 선수가 지난해 3월 추억의 인물 시리즈우표에 실렸다.

스포츠 기금을 모금한 우표도 있다. 1973년 4월 10일 새벽,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선수가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세계탁구선수권 낭보를 전해왔다. ‘탁구체육관건립기금첨가’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새겨진 기념우표의 액면가는 10+5원. 5원이 탁구전용체육관을 짓기 위한 기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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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 가운데 브라질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 우본은 6월 3일 월드컵대표팀을 응원하는 우표를 발행한다. 구릿빛 건각, 청색 팬츠에 빨간 상의와 스타킹을 신은 선수가 거침없이 드리블하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월드컵이 가까워질수록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과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겹친다. 우표 속 태극전사처럼 질풍 같은 드리블로 이 상심의 계절을 뚫고 지나가야겠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