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스트레스는 불가피 풀 수 없으면 관리하라”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 채정호 회장 “스트레스 해결 기업주 인식 변화가 최우선”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심리상담센터나 명상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심리상담이나 명상을 통한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는 기업과 직원 모두에게 이득이라고 조언한다.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직장인의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주의 인식 변화가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2009년 발표된 OECD 보고서를 보면 한국 직장인이 느끼는 직무 스트레스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직무 만족도도 최저 수준이다. 한국 직장인의 스트레스가 유독 높은 이유는 뭔가.
“한국은 급격한 산업화·서구화를 거치면서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이로 인해 가치관의 부재와 성공 및 물질주의에 대한 집착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 증가율 1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진 것은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특히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위험수위다. 직장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직장 자체가 직장인에게 삶이고 네트워크인 셈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적성과 관계없는 직장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을 구할 때부터, 직장을 구한 후에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다. 남들이 좋은 직장이라고 말하는 곳은 경쟁이나 압력이 많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높다. 반대로 나쁜 직장은 복지나 월급, 근무여건 등이 좋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래저래 직장인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국 직장인들은 한국인에 비해 스트레스가 낮지 않나.
“물론 외국인들도 스트레스는 받는다. 하지만 한국 직장인에 비해 스트레스가 낮은 이유는 기업에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직장이라는 문화 자체가 외국이 훨씬 길다. 외국 기업은 직원이 스트레스 때문에 결근이나 조퇴, 이직 등을 하면 결국 기업 손해라는 것을 일찍 알아차렸다.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기업 스스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기업은 비용 대비 효과가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구글 같은 일하기 좋은 회사가 왜 명상프로그램까지 도입을 했겠나.”

직장인이 스트레스를 피하기 어렵다면,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나.
“스트레스를 풀자, 없애자고 하는 것부터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직장인은 당연하게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문제는 스트레스 때문에 몸과 마음, 행동이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술이나 담배, 도박 등에 빠지면 문제가 생긴다. 스트레스 때문에 사사건건 분노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위험하다.스트레스를 받은 나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몸을 관리하기 위해 운동하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명상을 하는 이유다. 또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중요하다. 가정보다는 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과 가정생활이 균형을 이뤄야 행복하다.”

기업 입장에서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가 왜 중요한 것인가.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쌓이면 회사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원들은 두 가지 형태의 모습을 보인다. 조퇴나 결근을 자주 하는 앱센티즘(Absenteeism)이 많아지거나, 회사에 출근을 해도 일을 하지 않는 프레젠티즘(Presenteeism)이 생기게 된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들은 프레젠티즘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기업도 심리상담센터 설치나 명상프로그램 도입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요 근래 기업들 사이에서 직무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심리상담센터나 명상프로그램 등은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mployment Assitance Program·EAP)의 일환인데, EAP 도입이 기업의 생산성에도 좋은 효과를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EAP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밖에 안 됐다.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도 만들어진 지 10년이 채 안 된다. 한국 사회가 직장인 스트레스 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한 기간이 일천하다는 얘기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국 기업문화를 바꿔야 EPA가 대중화된다는 이야기가 많다.
“아직까지 심리상담센터를 만들고 명상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기업이 원하는 것은 고위험군 관리다. 회사에 문제를 일으킬 직원을 찾아내라는 것인데, 정작 그런 직원은 심리상담센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심리상담센터를 이용해라’ ‘명상프로그램을 이용해라’고 말만 하면 안 된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원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 이용 문턱을 낮춰야만 한다. 기업 오너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기업 오너의 생각에 따라 심리상담센터나 명상프로그램 운영이 달라지는 것인가.
“기업 대표의 마인드에 따라 성과가 좌우된다. 기업 대표가 직원을 부려먹거나 돈을 벌어오는 기계로 생각한다면 심리상담센터를 만들어도 실패할 것이다.

어떤 직원이 심리상담센터에 가서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하지만 기업주가 직원의 스트레스 관리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경우 심리상담센터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일과 중에 직원이 상담을 받는 것도 허용될 것이고, 직원의 프라이버시도 잘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다.

좋은 예가 있다. 모 기업은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회사 내 컴퓨터를 모두 꺼버리고 직원들이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점심을 먹기 전 간단한 스트레칭만으로도 업무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말로만 ‘점심 먹기 전에 스트레칭 해라’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직원들이 스트레칭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상담센터나 명상프로그램 도입을 한 곳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대부분이다. 정작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더 필요하지 않나.
“맞다. 직원의 복지가 부족하거나 근무환경이 좋지 않은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심리상담센터 운영이 더 절실하다.

하지만 비용문제 때문에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직원의 만족도가 그나마 높은 대기업은 EPA를 도입하고, 직원 만족도가 떨어지는 작은 기업은 EPA를 도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한쪽은 선순환이 되고, 다른 한쪽은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우선 공공자원을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2005년 설립된 한국EPA협회는 2007년 고용노동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사회적기업 형태로 서울, 부산, 인천, 대전 등 11개 지역 센터와 지부를 두고 공공분야 EPA를 시행하고 있다.

아직 홍보가 부족하지만 EPA협회에서 공익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온라인 상담은 무료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는 이런 프로그램 이용이 회사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회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좋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