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법조계 ‘체리피커’가 ‘소비자 주권’에 눈뜨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가 ‘고문경찰’ 차동영 경감에게 외친다. “국가가 뭔지 아느냐”는 차 경감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은 사유화된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대든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하지만 계란은 살아 있고, 바위는 죽었다.

상고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변호사가 있다. 학벌에 밀려 일찌감치 법복을 벗는다. 고향 부산에서 돈 버는 데 전념하기로 한다. 처음엔 부동산 등기 대행을 하고, 이어 ‘속물 세법변호사’로 변신한다. 상고 출신으로서는 딱이다.

단골 식당 아줌마의 아들이 사라진다. 알고보니 공안사건에 휘말려 영장도 없이 체포돼 고문을 당했다. 대형건설사의 세무변호사가 될 것이냐, 국가보안법 사건을 담당할 것이냐. 사무장은 말한다. “송변, 니는 니 앞길을 찬 기다. 후회하지 마라.”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티브다. 부산 8학군 아파트에 살고, 요트를 즐기던 변호사가 부림사건에 휘말리면서 인권변호사로 탈바꿈한다. 부림사건이란 1981년 9월 발생한 부산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容共)조작사건이다.

사회과학 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을 불온서적을 읽고 학습했다며 빨갱이로 몰았다. 기소됐던 사람 모두가 1983년 12월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공안사건에 휘말리기 전 변호사 송우석은 사회의 ‘체리피커’(Cherry picker)였다. 체리피커란 ‘맛있는 체리만 골라먹는 사람’을 뜻하는 경제용어다. 이벤트나 할인행사만 꼬박꼬박 챙기는 소비자를 말한다. 업체 입장에서는 얄미울 테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우 스마트하다.

송우석은 ‘법조인’이라는 특권을 이용해 돈이라는 체리만 뽑아먹는 세법변호사였다. 사회가 ‘법조인’이라는 감투를 줬을 때는 돈과 명예만을 보장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에 상응해 법조인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한 것이 있다. 하지만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나면 상당수의 법조인들은 자신의 영달을 우선 추구한다.

사회가 준 권력은 ‘나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주어진 권력을 이용해 돈을 벌거나 정계로 나갈 꿈을 꿔도 부끄럽지 않다. 체리피커가 이벤트에 참여해 상품을 쏙 빼먹는 것을 ‘정보를 빨리 습득한 자신의 정당한 노력’으로 합리화하는 것과 같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체리피커’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 행위다. 하지만 기업에는 골칫덩어리다. 어쩌면 정당한 소비자에게 돌아갈 이익을 가로채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체리피커는 상품에 대한 충성도보다 가격에 따라 움직인다.

체리를 먹고나면 그만이다. 마케터가 이벤트 상품을 내놓은 이유는 마중물 효과(Pump effect)를 기대해서다. 처음에 약간의 물(마중물)을 먼저 펌프에 부은 뒤 펌프질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물이 잘 나오는데, 이런 것을 마중물효과라고 한다. 마케팅에서 ‘미끼상품’을 이용해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것도 비슷한 행위다.

법조계의 체리피커이던 송우석 변호사는 단골 국밥집 아들이 국가권력에 폭력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잊고 있던 ‘소비자 주권’과 ‘소비자 권리’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소비자 주권이란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비자가 시장에서 판매되는 생산물의 종류와 수량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 권리란 소비자로서의 알 권리, 안전할 권리, 선택할 권리, 의견을 말할 권리 등 4개 권리를 말한다. 1962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발표한 소비자 보호 특별교서에 담긴 내용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들에게 알 권리와 안전할 권리, 권력을 선택할 권리,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줬다. 하지만 그대로 이행이 되고 있는가. 송우석은 그것을 묻고 있다.

영화 속 경제

사회가 ‘법조인’이라는 감투를 줬을 때는 돈과 명예만을 보장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