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해적정신’이 때론 ‘혁신’의 아이콘

빙하시대, 동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사라졌을까. 태고적 상상력을 자극해온 크리스 웨지 감독의 <아이스 에이지>는 지난 10년간 사랑을 받아온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2002년 첫 작품을 시작으로 2006년에는 해빙기를 헤쳐나간 <아이스 에이지2>가, 2008년에는 공룡과 상대한 <아이스 에이지3;공룡시대>가 나왔다. <아이스 에이지4;대륙이동설>(2012)은 지구가 하나의 대륙에서 여러 대륙으로 갈라지는 지각변동기의 동물들을 그린다.

매머드 매니는 아내 엘리, 딸 피치스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땅이 쩍쩍 갈라지면서 가족들과 떨어진다. 다람쥐 스크랫이 도토리로 땅을 한 번 찍은 것이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절친’인 검치호랑이 디에고, 나무늘보 시드와 함께 빙하조각을 타고 망망대해를 떠돈다.

매니는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를 갈망하지만 현실은 난관의 연속이다. 땅과 바다가 요동친다. 천신만고 끝에 태풍을 넘어서니 오랑우탄 거트 선장이 이끄는 해적들이 기다리고 있다. 매니와 친구들은 해적을 무찌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할리우드 작품에는 고대 그리스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 많다. 전 세계를 떠돌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구상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닮았다. 항해에서 만나는 해적도 ‘오디세이아’의 흔적이다.

해적은 세계 경제를 얘기할 때도 빠뜨릴 수 없는 주제다.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덜란드가 장악하던 해상질서를 뒤흔든 것은 영국의 해적 존 호킨스와 플랜시스 드레이크였다. 이들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지지를 등에 업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선박을 약탈했다.

중국 CC-TV팀이 제작·방영했던 <무역전쟁>을 보면, 해상권이 약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적들을 영국의 부를 증대하고 해외영토를 확장하는 애국자로 봤다. 이들은 외교적으로도 유용했다.

주변국들의 항의가 들어오면 ‘정부 정책에 반하는 해적의 소행’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었다. 드레이크는 1580년 처음으로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드레이크에게 투자해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녀는 드레이크의 배에 올라 직접 기사 작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화가 난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이끌고 1588년 영국을 침공했다. 하지만 열흘간의 치열한 해전 끝에 스페인은 참패를 했다. 드레이크 등이 고안한 화공전에 당했던 거다. 이후 급속히 힘이 커진 영국 해군은 네덜란드까지 제압하고 해상권을 완전 장악한다.

고대 그리스 무역의 중심지였던 동지중해와 에게해에는 상인들을 약탈하는 해적들이 많았다. 소아시아의 킬리키아와 그리스는 해적의 거점이 됐다. 역사가 헤로도투스도 해적질을 비난하지 않았다. 해적 행위를 비열하다고 보기보다 전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한 형식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로마가 쇠퇴할 때마다 해적은 번성했다.

이런 정서가 반영돼 18세기에는 해적문학이 꽃을 피운다.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이 대표적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 풍뎅이’도 있다. 20세기 들어서는 제임스 매튜 배리가 쓴 ‘피터팬’에서 후크선장이 등장한다. 이후 해골기와 황금, 애꾸눈은 해적의 대명사처럼 됐다.

해적은 경제·경영분야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도 쓰인다. 스티브 잡스는 “해군이 되느니 해적이 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애플의 혁신적 창의성은 시키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해군이 아니라 게릴라 정신을 가진 반항적인 해적들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해적이 되자’(Let’s be pirates!)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영화 속 경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영국에 필요한 것은 해적정신(buccaneering spirit)”이라고 밝혔다. ‘버커니어’(buccaneer)란 17세기 후반 카리브해와 라틴아메리카 연안에서 스페인을 괴롭혔던 해적들이다. 캐머런 총리가 언급한 ‘해적정신’은 결국 ‘기업가적 모험정신’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