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열한시 - 얼마나 더 살 수 있나? 연령별 추정 ‘기대여명’

오늘 저녁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그런데 다음날 그가 귀가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오늘 모 기업의 회사채 1000만원어치를 샀다. 그런데 다음날 이 기업이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길지도 않다. 단 24시간만 뒤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아주 많은 것들이 바뀌었을 터다. 김현석 감독의 <열한시>는 24시간 앞의 미래를 경험하는 타임머신 이야기다. 사람들은 미래로 가기를 열망해 왔다. 결과를 안다면 불행이나 비극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 투더 퓨처>나 <터미네이터>는 결과를 바꾸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가는 영화다.

시간이동 프로젝트 연구원들은 3년째 타임머신을 개발하고 있다. 러시아 본사는 프로젝트 중단을 통보한다. 연구원 팀장 우석(정재영 분)은 프로젝트를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자신들의 성과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영은(김옥빈 분)과 함께 타임머신 ‘트로츠키’를 타고 24시간 앞 미래를 갔다오기로 한다.

[영화 속 경제]열한시 - 얼마나 더 살 수 있나? 연령별 추정 ‘기대여명’

12월 25일 11시. 하루 앞으로 시간이동을 하고 보니 연구소가 쑥대밭이 됐다. 우석은 지난 24시간 동안 연구소에서 일어난 일을 담은 CCTV 데이터를 메모리에 저장해 돌아온다. 우석이 갖고온 CCTV에는 연구원들의 미래가 담겨 있다. 이들은 내일 11시를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을 운명이다. 혹자는 불에 타 죽고, 혹자는 복도에서 쇠몽둥이를 맞고 죽는다. 자신의 마지막을 보는 모습은 괴롭다.

나는 언제 죽을까? 나의 죽음을 예측해볼 수 있는 자료가 생명표다. 이 중 특정 나잇대로부터 몇 년을 더 살 것인가를 추정한 자료가 ‘기대여명’이다. 0세부터 100세 이상까지 총 101개 연령층별로 자료를 제공한다. 한 살 간격으로 작성된 생명표를 ‘완전생명표’라고 부른다. 매 5살 기준으로도 작성하는데 이는 ‘간이생명표’다. .

최근 발표된 2012년 자료를 보면 20세는 61.9년, 40세는 42.4년, 60세는 24.2년을 더 살 것으로 추정된다. 신생아(0세)는 81.4년 살 것으로 기대됐다. 신생아의 기대여명은 기대수명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쓰는 ‘평균수명’이 이 데이터다. 연령별 사망률도 추정한다. 특히 1세 미만 아기의 사망률을 ‘영아사망률’이라고 부른다. 또 ‘50세 이상 사망자수/전체 사망자수×100’은 ‘비례사망지수’라 부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세 가지 지표를 건강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한다.

생명표를 처음 만든 사람은 영국의 그런트다. 그는 1662년 ‘사망보고서에 관한 자연 및 정치적 관찰’이란 저서에서 인구의 사망과 출생에 규칙성이 있다고 밝혔다. 계량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발전시킨 사람이 천문학자 핼리다. 핼리혜성을 발견한 그는 연령에 따른 사망자수와 생존자수를 계산했다.

1766년 스웨덴의 천문학자 바르겐틴이 정부 자료를 이용해 정확도가 높은 생명표 작성에 성공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교수 미즈시마와 조선인 강사 최희영이 조선인과 일본인의 간이생명표(5세 간격)를 만들었다. 공식적인 최초의 생명표는 1978년에 작성됐다. 외국에 비해 200년 가량 늦었다.

생명표는 2년 늦게 작성된다. 즉 2013년에는 2011년 생명표가 작성된다. 2011년 태어난 아이의 영아사망률을 알려면 2012년 12월 31일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표가 발전하면서 새 산업도 탄생했다. 생명보험이다. 생명표는 보건·의료정책 수립, 보험료율·인명피해 보상비 산정 등에 활용된다. 또 장래인구추계 작성에도 중요하다.

영화 속 경제

알고 보니 연구원들의 기대여명은 하루였다. 사망확률은 100%다. 현실로 돌아온 우석과 영은은 24시간 뒤에 일어날 일을 막을 수 있을까. 사망확률을 무력화시키면서 그들의 기대여명을 하루보다 더 길어지게 할 수 있을까. 영화 속에 답이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