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옳지 아니하지 않은 게…” 헷갈리는 민주당 문법

사제단의 대통령비판엔 동의하면서 ‘대통령 퇴진’ 요구엔 선뜻 동의 못하는 딜레마

… 다른 핵심 사안도 여권 ‘종북 덫’ 우려해 양비론이나 어정쩡한 대응

“신부님 말씀이 옳지 아니하지 아니하지 않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시국미사를 둘러싼 민주당의 엉거주춤한 입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제단이 제기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는 동의하지만, ‘연평도 사건’에 대한 언급이나 ‘대통령 퇴진’을 전면적으로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선뜻 손을 들어 환영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자칫 여기에 적극적인 동의를 표명한 것으로 비쳐지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사제단이 이야기한 대통령 퇴진에 다수 국민들이 동의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정치권에서는 잘 알고 있다. 종교계에서 상징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지금 청와대가 다시 ‘종북몰이’를 해 역풍을 맞고 있다.

그렇게 돼 특검에 더 힘이 실리는 정도가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효과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정치적 효과를 가장 먼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긴급 의원총회에서 얘기 나누는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 김기남 기자

11월 24일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이러한 민주당의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 원내대표는 ‘대통령 사퇴를 요구한 사제단 시국미사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자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여당이 어느 측면에서는 자초한 일이기도 하고, 불행한 사태”라고 비판하면서도 “연평도 포격과 NLL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과도한 주장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등의 말을 덧붙이며 비판에 전제조건을 달았다.

대선불복 비칠까 말끝마다 ‘전제’ 달아
전 원내대표의 발언을 비롯, 최근 들어 민주당 지도부의 메시지는 양비론에 머물거나 정확한 조준의 대상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보여왔다.

청와대가 쳐놓은 프레임 그물에 걸려들까봐 조심하고 있는 모양새다. ‘종북’이나 ‘대선불복’ 이미지로 비쳐질까 이리 저리 선을 긋고 전제와 조건을 덧붙이다 보니 야당의 선명한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고 있다.

당내 강경파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전제조건을 달아 희석된 메시지를 전하는 당 지도부에 불만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당 지도부가 이런 사안들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만 명료하게 전달하면 되지, 거기다가 자꾸 이런 저런 조건을 붙이다보니까 오히려 메시지 전달이 잘 안 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안 처리와 관련해서도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메시지는 양비론에 가깝게 전달됐다. 11월 6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이 사안과 관련해 정부와 통합진보당을 모두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미리 준비됐던 것 같은 일이 진행됐다. 불행한 일로 유감스럽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고 국제적으로도 사례가 드문 일이니만큼 신중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통합진보당을 향해서도 “이번 기회에 당의 목적과 활동에 대해 국민 앞에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북한식 사회주의 정권을 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위헌정당해산 청구가 정당정치의 근간을 위협하고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주된 주장과는 거리가 있는 지적이다.

강경파 비판 속 전문가들 “불가피한 면”
민주당 메시지가 자꾸 희석돼 전달되는 이유는 현재 민주당에 부여돼 있는 두 가지 역할 사이의 딜레마 때문이다. 민주당은 야권의 최대 그룹이다. 청와대의 ‘종북’ ‘공안’ 공세에 대응해 ‘민주주의의 해석자’가 되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민주주의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는 역할이다. 동시에 민주당은 여당과 싸우면서도 여당의 정치적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여당의 공격무기는 ‘종북’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특히 종편 등 보수진영에 우호적인 언론환경 속에서 ‘종북’ 프레임에 걸리지 않는 것이 민주당으로서는 일종의 강박증이 돼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민주당에 부여된 민주주의 해석자로서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위헌정당해산청구안을 결정한 것은 비판해야 한다.하지만 또 정부가 쳐놓은 ‘종북 프레임’의 덫을 피하기 위해서는 통합진보당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정부의 위헌정당해산청구안은 통합진보당을 겨누고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연대를 했던 민주당을 겨냥한 포석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내 강경파나 시민사회에서는 야권의 맏형인 민주당의 온건한 메시지를 비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으로선 민주당 지도부의 메시지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나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평가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민주당 입장에서는 사제단이 이야기한 ‘대통령 퇴진’ 문제에 관한 한 더 이상 나가지 않는 게 맞다.

민간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도 민주당이 최소한 합리적 틀 안에서 움직이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에 문제가 있다는 쪽에 포커스가 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민주당뿐만이 아니라 야권 전체가 처해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황승현 평론가는 “이 사안을 놓고 볼 때 민주당의 한계는 야권 전체의 한계로, 어쩔 수 없는 구석이 있다”며 “민주당에서 지난 대선의 공정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한다면 그때부터 여당은 물론 보수언론의 엄격한 폭격이 시작될 텐데 이러한 상황에서 야권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