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시간제 일자리의 함정]그럴싸한 시간제 일자리 교사·공무원에겐 ‘아뿔싸’

여교사ㆍ여성 공무원들 임신ㆍ육아 이유로 그만두는 경우 거의 없어 ‘경력단절 여성 위한 제도’ 취지 무색…

임금ㆍ연금 등에서 차별이 일상화 되는 청년층의 나쁜 일자리가 될 가능성 높아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방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공무원과 교사 등 공공부문에서는 시간제 일자리 도입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민간부문에선 시간제 일자리 구직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지만, 지속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권 때 도입됐다가 계륵으로 전락하고 있는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를 통해 시간제 일자리가 가져올 수 있는 그늘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요즘 교직사회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제도가 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영전강) 제도’다. 이명박 정부는 영어 몰입교육의 일환으로 2009년 9월부터 1기 526명의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초·중·고에 배치했다.

2013년 11월 현재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총 6100명에 달한다.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학교 현장에 들어오면서 정규직 교사와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생기고 있다. 담임제 중심으로 학생들 생활이 이뤄지는 초등학교에서 특히 그렇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수업 외에 학교 행정업무에 참여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21~22시간의 수업만 하면 된다. 담임을 맡는 정규교사는 수업 외에도 수많은 공문을 처리하고, 학부모 상담이나 학생 상담 때문에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소풍을 갈 때도 교사들은 현장에 가지만,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학교에 남게 된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연봉 250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규교사의 입장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은 ‘놀면서 월급받는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고, 이 때문에 정규교사와 시간제 강사 사이에 미묘한 갈등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회화 전문강사’처럼 갈등 핵 우려
한 초등학교 교사 박모씨는 “교사들은 잡무가 많아서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강사들은 수업만 하고 바로 집에 간다”면서 “영어를 잘 한다고 나이 어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사들은 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지금 일하고 있는 강사들이다. 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지금 일하고 있는 교사들까지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도 할 말이 많다. 비정규직의 설움과 소외를 느낀다는 것. 정규교사와 강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매일 실감하는 것이 힘들다. 담임을 맡지 못할 뿐, 수업과 평가, 시험출제, 성적 입력 등 교과 전담 교사와 똑같은 일을 하지만, 학교에서 투명인간 대우를 받는다.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일하는 김모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우리는 딴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 같다”면서 “정년 보장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이라는 설움도 많이 받는다. 시간이 갈수록 정부는 이 제도를 없애려고 하는 것 같다. 처음 약속했던 것과 너무 달라져서 화가 날 정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명박 정부가 끝난 후 영전강 제도는 폐지냐 유지냐를 놓고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우선 1기 강사 526명이 4년 계약이 끝나면서 해고를 당했다. 정작 해당 부처인 교육부는 손을 놓고 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는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4년 계약기간이 끝나는 2기 강사들은 1000여명에 달한다. 영전강 제도를 도입할 당시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만 62세 정년 보장 약속을 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오히려 인권위가 나서고 있다. 9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6100여명의 영어회화 전문강사에 대한 고용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교육부에 권고했다.

교사들은 영전강 제도가 학교 현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이 해고되는 것을 찬성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영전강 제도를 ‘엠비가 싼 X’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전교조 서울지부 김성보 실장은 “올 여름에 1기 영어회화 전문강사 해고 문제로 학교가 시끄러웠다. 강사들은 나중에 정규직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날벼락을 맞은 것”이라며 “영전강 제도를 빨리 없애야 한다. 문제는 지금 영어회화 강사로 일하는 분들을 어떻게 하느냐다. 이것 때문에 학교 현장이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전일제와 차별 없어야 ‘진짜 시간제’
교사와 공무원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 중인 시간제 일자리가 제2의 영전강 제도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애초 시간제 일자리를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제도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여교사와 여성공무원이 임신과 아이 양육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산전휴가, 산후휴가, 육아휴직 등의 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시간제 일자리를 이용해서라도 교사나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계층은 경력단절 여성이 아닌 청년층이 될 가능성이 크다.

CJ리턴십 1기 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 모습. | CJ 제공

시민경제사회연구소 홍헌호 소장은 “원래 시간제 일자리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제도다. 하지만 정부 발표에서는 경력단절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면서 “우선 교사와 공무원 중에는 임신이나 육아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청년층이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교사나 공무원이 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임금과 연금, 승진에 있어서 시간제 일자리는 차별대우를 받게 된다. 전문가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알바’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의 임금을 전일제 일자리의 50%로 정했다. 새로 일을 시작하는 이들의 경우 매월 100만원 이내의 월급을 받게 되는 것. 월급만으로 생활하거나 결혼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겸직 허용범위 확대’를 내놓았다. 교사와 공무원들은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이라고 비판한다.

공무원노조 윤선문 정책실장은 “공무원 겸직이 원칙적으로 금지된 이유가 있다. 공무원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영리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주차단속 업무를 하는 시간제 일자리 공무원이 퇴근 후에 견인 관련 업체에서 일을 하면 어떻게 되나. 학교에서 퇴근한 교사가 학원에서 강사를 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나. 공무원 겸직 금지가 한 번 해제되면 부작용 또한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무원은 9급에서 7급으로 승진하는 데 보통 7~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들어온 이가 승진하려면 14~2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시간제 일자리 공무원의 경우 관리자급으로 올라가는 것이 구조적으로 힘들고, 결국 허드렛일만 맡을 공산이 크다.

공무원 연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공무원이 20년 경력을 쌓아야만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시간제 일자리는 산술적으로 40년을 일해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 공무원이나 교사가 연금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정부는 2014년까지 공무원연금이 적용되도록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들도 어떤 형태로 도입할지 고민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우려하는 것은 시간제 일자리가 폐기됐을 때 이미 들어온 이들은 어떻게 하느냐다. 영어회화 전문강사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6월 27일 ‘공공부문 시간제 일자리 증언대회’가 민주노총과 은수미 민주당 의원 공동 주최로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연합뉴스

민간부문의 시간제 일자리는 공공부문에서보다 출발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시간제 일자리와 전일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과 전일제 직원과 시간제 직원 사이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제 일자리를 시행 중인 곳은 CJ와 스타벅스 등이다. 두 기업은 모두 경력단절 여성을 위해서 ‘CJ리턴십’, ‘리턴맘 바리스타’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지난 7월 1기 지원을 받은 CJ리턴십 프로그램에는 157명 모집에 총 2530명이 지원해 호응이 높았다. 이 중 116명이 최종 입사를 했다. 1기 CJ리턴십으로 CJ E&M 영화기획팀에 입사한 김경나씨는 “영화 프로듀서로 일하다 육아 때문에 7년 전 일을 그만뒀다.

아이 키우는 것에 만족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러다 일을 못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 행운”이라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는데,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돌보는 데 별 무리가 없다. 일을 하다 보니 전일제로 하고 싶다는 욕심도 든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10월 1일부터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리턴맘 바리스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1기로 총 18명이 뽑혔는데, 이들은 하루 4시간 주5일 근무를 하고 있다. 전일제를 선택할 수도 있고, 복지혜택도 정규직과 똑같다.

리턴맘 바리스타를 통해 분당서울대병원 스타벅스 지점에서 일하고 있는 박수지씨는 “점장으로 일하다 아이 때문에 그만뒀다. 집에만 있다 보니 너무 무력해서 커피숍 아르바이트도 알아봤다”면서 “함께 일했던 분이 이 프로그램을 소개해줘서 일하기 시작했다. 재취업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무척 좋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경력단절 여성에게 취업의 기회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J와 스타벅스 외에 삼성그룹과 LG, 롯데, SK, 한진그룹 등도 시간제 일자리 선발계획을 밝혔다.

정부 정책에 기업들이 화답하는 모양새지만 문제는 지속성 여부다. 기업들이 지금처럼 정규직과 차이를 두지 않고, 전일제와 시간제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계속 유지할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홍헌호 소장은 “민간에서 시간제 일자리가 의미가 있으려면 전일제 일자리와 시간제 일자리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에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면서 “기업들이 언제까지 이 제도를 지속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